평온한 아침이다. 전쟁터 같은 출근길에서 얼굴 찌푸릴 일도 없고, 지각이라며 제대로 깨어나지도 못한 영혼을 닦달하며 질주하지 않아도 되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동료와 어색한 공기를 나누고 있지 않아도 된다.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이후, 나는 원하는 시간에 몸을 일으켜 샤워를 마치고 따뜻한 모닝커피 한 잔을 마신다. 커피를 마시며 내 무의식을 거침없이 써 내려갈 수 있는 모닝페이퍼를 적는다. 여유를 가지고 몽롱했던 정신을 깨운 뒤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이렇게 평온해 마지않는 아침이지만 이젠 출퇴근길이 아닌 내 머릿속이 전쟁터가 되었다.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사라졌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이 언제까지 연장될 수 있을지 알 길이 없으며, 모두가 치열하게 뛰고 있는 마라톤 경기장에서 이탈한 기분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2022년 2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무 계획 없이. 계획 없이 회사를 그만둔 것은 내 인생에서 상상할 수 없는 큰 사건이었다. 커리어를 쌓아오면서 멈춘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벌지 못하는 것도 두려운 이유 중 하나였겠지만 멈추고 나면 다시는 달릴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축구 경기에서 빨간딱지를 받으면 퇴장을 해야 하는 것처럼 내가 멈추면 영원히 이 경로에서 쫓겨나게 될까 봐.
그렇지만 8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몸 담았던 회사에서 크게 맘먹고 이직한 스타트업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스타트업은 체계가 없어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여러 번의 스타트업을 경험한 동료도 이곳은 최악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강한 압력 앞에서는 무쇠덩어리인 철봉도 구부러지고 마는 것처럼 버티고 버텨보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도 퇴사를 하기까지 매일 불안에 떨었다. 퇴사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보거나, 퇴사 유튜브를 보며 내 결정이 맞는 것일지 내 미래는 괜찮은 것일지를 점쳐보곤 했다. 다행히 회사를 그만두어도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우연한 기회로 프리랜서를 시작하게 되었고, 지금은 조금씩 새로운 길을 걸어보고 있다. 지난 10년 간은 땅에 발을 딛고 누군가 만들어둔 길을 걸어왔다면, 당분간은 아주 작은 배를 타고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항해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걷던 삶에서도, 그리고 지금 항해를 하는 삶에서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불편한 마음이지만 이제는 이 배에 탄 동료로서 여정을 함께하는 것을 환대하기로 했다.
불안해서 멈추지 못했다면 내 몸은 망가졌을 것이고,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앞으로는 새로운 선택지 앞에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세상은 A라는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다양한 답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