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작가 <홀딩, 턴>
결혼을 할 수 있을까? 30년이 넘게 다른 지구에 살던 사람과 6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사는 게 과연 가능할까? 최근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생각하면 아찔했다. 남은 인생을 한 사람과 사는 것이 가능할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까닭이었다. <홀딩, 턴>은 사랑이라는 '환상'을 넘어 결혼 '생활'에 부딪힌 영진과 지원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결혼에 국한된 건 아니었다. 오랜 연애를 해본 남녀라면, 모두 공감할 법한 이야기였다.
책을 읽는 내내 수년 전 깨져버린 사랑의 조각들을 마주쳤다. 조심스레 시작되었던 만남, 하지만 연애기간이 길어질수록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강력하게 요구하게 됐다. 날 선 말들이 오고 갈 때의 공기, 내 화를 참지 못하고 나오는 대로 뱉어댔던 말들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그 당시엔, 그도 나와 같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나와 엄연히 다른 존재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의 본성은 바뀔 수 없는 부분인데 그 사람이 내가 되길 바랐다. 술을 마시지 않기를, 이성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치는 것을 멈춰주기를 바랐다. 이 책에서도 지원은 영진이 집에 들어오면 발부터 씻어달라고 애원한다. 발이라는 아주 사소한 마찰로부터 서로의 감정이 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여전히 어떤 사람을 만나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결혼을 한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는 몇 가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참으면서 사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어떤 것을 포기할 수 있는지, 포기할 수 없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보려 하지만 이 사람을 만날 때, 또 다른 사람을 만날 때 한 가지로 정의되지 못하고 내 마음은 자꾸 변덕을 부린다. 이렇게 자꾸 나는 결혼과 점점 멀어지는 것만 같다.
<홀딩, 턴> 속 띵구절
47p.
잘 지내는 것 같던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가 깨질 때 상대의 불륜이나 변심, 파산, 폭력, 중독은 선명한 파경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로 명명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자잘하게 집 여기저기에 곰팡이처럼 번져버린 경우도 있다. 볼 때마다 닦고 주기적으로 꺼내서 말리는데도 은밀하고 깊숙하게 번져나간 곰팡이를 목격할 때면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며 손을 놓고 싶어 진다.
151p.
우리는 스스로를 바꿀 자신이 없어서 헤어지는 데 합의하지만 후회하게 될까 봐 두려워할 정도로 연약하다. 제 마음을 알 수 없고 자신할 수 없어 상대에게 솔직하게 얘기해달라고 당부한다. 사소한 감정의 변화가 존재와 관계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결정이 일시적인 강정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책임의 끈을 나누어지려는 노력이 구차하게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