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8 그럼에도 퇴사를 할 수 없었던 이유

광고인 6년 차의 방황기 <불안했던 날들의 기록>

by 예시






#08 그럼에도 퇴사를 할 수 없었던 이유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서른 살이 되었다. 앞자리 숫자만 2에서 3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마음은 조급해졌다.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다닐 것이냐, 퇴사를 하고 뭔지 모를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 것이냐. 이제 정말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불안했던 시기를 오랜 시간 곁에서 봐준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며 "그럴 거면 이제 제발 퇴사 좀 하세요" 라며 되려 날 독촉했다.


이런 강박증에도 내게 결단을 내린다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 무렵,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너도나도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2018년은 낮은 퇴사율을 자랑하던 우리 회사에서 퇴사자가 가장 많았던 해였다. 그들에겐 지금 스톱을 외치고 퇴사가 절실한 이유들이 분명했다. 수년간 마음 달랠 시간 없이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던 자신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서, 상사와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예 다른 시작을 해보고 싶어서. 너도 그만큼 마음에 곰팡이 피워가며 고생했으면 퇴사할 명분이 충분하지 않겠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모르겠다. 그냥 힘들어서, 못하겠어서,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이런 이유들로 퇴사를 한다는 게 나는 어쩐지 스스로 납득이 안 갔다.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남들 다 하는데 왜 나라고 못하겠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팀장님, 제안 준비하는 거 너무 힘들어요.... 바닥을 쳤어요 이제 정말..."

"힘들지~ 근데 그거 주말 지나면 다 잊어버릴걸?"


팀장님은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소릴 하시는 거야, 이렇게 힘든데 이걸 어떻게 잊어!!

속으로 생각했지만 팀장님의 얘기처럼 난 정말 빠른 시간 내에 그 모든 고통을 다 잊을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며 동료들과 그 얘기를 나눈 뒤에도 줄곧 고통의 순간이 올 때마다 고통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뿐만 아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삶의 의미를 잃을 만큼 야근을 밥 먹듯이 해가며 힘들게 제안서를 준비하거나 리포트를 준비한 뒤에 클라이언트로부터 "너무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이런 피드백을 받을 때면 힘들었던 기억들은 모두 잊고 성취감만 살아남았다. 그럴 때마다 그래, 모든 일에 안 힘든 일이 어딨어! 지난 번에 겪어봤던 것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부담감은 똑같이 겪게 되는 것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무조건 좋은 것만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싫어하는 일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해보자,라고 자꾸 내 안의 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비전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과 AE업무 사이를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고통과 성장이 모두 공존하는 이 틈에서 나는 희로애락을 느끼며 AE가 싫었다 좋았다 했다. 나는 계속 도돌이표로 돌아왔지만, 나만의 속도가 있을 거라 믿기로 했다. 서른 살이라는 나이에 조급해하지 말자고, 어떤 일이든 결정을 할 때면 정말 아닐 때가 찾아왔을 때 결정을 하는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조금 더 버텨보자는 마음은 계속 리셋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