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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시 Aug 12. 2019

빨간 양파망 속 매미 두 마리




지난 금요일 저녁, 야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톡이 날아왔다. 가족 채팅방을 열어보니 내가 요즘 너무 예뻐하는 조카 아윤이 영상이 도착해 있었다. 저게 뭐지? 하며 유심히 들여다본 영상 안에는 빠알간 양파망이 마루 바닥에 놓여있었고, 아윤이는 망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가, 얼굴을 가까이 댔다가를 반복하며 하삐와 함께 "맴맴, 맴맴, 맴맴" 합창을 하고 있었다. 아니, 곤충 채집망이 없으니 매미 2마리를 양파망에 넣다니. 풉, 저게 뭐야. 너무 아빠 답잖아! 길거리에서 실성한 사람처럼 배실배실 웃었다. 분명 아빠는 퇴근길에 빼빼---- 열심히 우는 매미를 나무에서 덥썩 잡아다가 한 손에 고이 쥐고 왔을 것이다. 이제 고작 20개월 된 인생에 새로운 경험 하나를 더 선물해주고 싶어 신이 나서 현관문을 여셨겠지. 함께 있지 않아도 아빠의 신이 난 미소가 눈 앞에 가득 찬다.

우리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도, 퇴근길에 신기한 것들을 참 많이 잡아 오셨다. 집에서 메뚜기가 뛰어다니기도 하고, 장수풍뎅이? 같은 것이 기어다니기도 하고, 학의천에서 엄마 잃은 오리도 잠깐 왔다 가고, 토끼도 깡총 거리며 뛰어다녔다. 가족 여행을 갈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자리든, 방아깨비든 곤충들이 아빠 눈에 보이면 꼭 잡아다가 가까이서 보고, 만질 수 있게끔 해주셨다. 곤충뿐만 아니라, 아빠는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들에 늘 친근하게 다가갔다. 자세히 다가가 오래 보고, 먹어보고, 만져보고, 그렇게 느낀 것들을 늘 나눠주셨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벌레가 무섭지 않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아무튼, 아윤이와 아빠가 매미와 함께 놀고 있는 영상을 보자니 어렸을 적 아빠와 곤충들을 만지며 신기해하던 어린 시절, 아빠와의 추억이 생각나서 왠지 모르게 마음 한 켠이 조금 울컥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서. 그저껜가 티비에서 어떤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빠가 너무 그리워 사진을 찾아봤는데 함께 찍은 사진이 10장밖에 없었다며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럼 몇 장 찍으면 후회가 덜 될까요?"이라고 이영자가 묻자, "수천 장이요, 밤새 보다가 잠들 수 있을 만큼요" 가까운 가족들에게 잘한다는 게 늘 쉽지가 않다. 매번 툴툴거리고,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을 할 때가 많다. 후회할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행동들. 쉽지 않겠지만, 할 수 있을 때 잘하자. 그리고 가족들이랑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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