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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그리다 Jun 21. 2024

글을 쓰는 이유

나에게 기회를 주는 글

 남편은 굉장히 신중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그에 반해 나는 좀 즉흥적인 데다 적극적이어서 그로 인한 실수도 많고 허술한 편이다. 그렇게 반대인 성격을 가진 우리 부부는 다툼도 종종 있지만 서로 반대되는 모양이기에 꼭 맞는 퍼즐처럼 잘 맞춰가며 살아지기도 한다.

그런 남편과 내가 가장 다른 게 바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일인데 남편은 특유의 신중함 때문에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하나 살 때도 유통기한과 제품성분, 가격 등을 꼼꼼히 따져가며 사는 반면 나는 내가 필요한 제품이면 그냥 무조건 제일 싼 것으로 골라 카트에 던져 넣는 편이다.

 이번에 브런치스토리에 작가도전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작가 신청한 것도 나의 그런 추진력(?) 덕분에 단 2주 만에 결정이 되었고, 그렇게 글 몇 편을 쓴 후 작가 도전을 하고 운 좋게도 바로 합격메일을 받게 된 것이다.

 "여보, 나 브런치스토리 합격했어!!."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축하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에 대해 많이 아쉬워했다. 소파에 누워있던 남편이 부러움의 눈빛으로 말했다. 사실 남편은 벌써 몇 달 전부터 진화론과 창조론을 비교하는 글을 쓰고 있었는데 A4용지 한 면을 채우는 데 꼬박 3일이 걸리고 몇 달째 6장 정도밖에 쓰지 못했던 상황이다. 물론 남편이 쓰는 글 주제 자체가 굉장히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더 그럴 것이리라...

 "여보는 글 쓰는 게 어렵지 않아?"

 "어렵진 않아. 술술 써지는 편인데 잘 쓰지는 못 해서 그렇지."

 "그런데 왜 글 한 편 쓰는 데 1시간도 안 걸려?"

 "그건 내가 생각을 너무 깊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생각나면 일단 쓰고 보거든. 다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서 바로 조금씩 수정하고 다듬어 가면서 완성을 해서 그래. 당신은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쓰려고 하다 보니 오래 걸리는 게 아닐까?"

 딱히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물어보자 또 내 머릿속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대답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나는 생각이 바로 글로 나온다. 내가 교사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가르칠 내용이 내 머릿속에서 바로바로 말로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 같기도 하다. 하지만 때론 그런 필터 없이 나오는 말이 교사로서 지식만을 전달할 때는 괜찮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하거나 깊은 대화가 필요할 때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말이 씨가 된다. 침묵이 금이다.' 등등... 언어의 조심성에 대한 수많은 속담이 있는 것은 그만큼 '언어'라는 것은 곱씹고, 신중히 생각하면서 내뱉어야 좋은 것이라는 증거다. 몇 번의 필터를 거쳐서 나오는 정수물처럼 말에도 그런 필터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남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당신이 그렇게 신중한 사람이기에 내가 실수로 한 말도 한번 더 걸러서 생각해 주고, 때론 내 실수도 그렇게 당신이 대신 덮어주는 것 같아."

이 말 한마디에 남편은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벌떡 일어나 설거지를 하러 간다. 그 덕에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얼마 전 써 놓았던 이 글을 발행하기 전 한 브런치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자신이 멋모르고 한 말의 실수를 깨닫고 7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상대방에게 용기 내어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 글을 보며 나도 몇몇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그 중 남편이 중국분인데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평소 생각하고 있던 그대로 중국에 대한 안 좋은 말을 해 버렸던 혜@엄마. 낯선 지역에서 둘째 낳고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 함께 의지하며 지냈는데 이사 후 연락도 끊어버려 미안함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마음 한편에 걸려있었다.  나도 그 작가님처럼 용기 내어 사과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러한 연유로 글을 쓴다. 나처럼 즉흥적인 사람은 말보다 글이 더 어울리는 것은, 즉흥적으로 글을 썼을지라도 발행 전 다시 한번 읽어본 후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수정하고, 고치고, 다시 다듬을 기회가 주어지니까 말이다.

 나는 그래서 글이 참 고맙다. 내뱉은 말은 상대방에게 비수가 되어 생채기를 낸 다음엔 다시 아물게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부족한 용기로 몇 년 만에 연락하기도 부끄러운 나는 이렇게 글로나마 그 말이 내 진심이 아니었노라고, 필터 없이 흘러나온 오염된 물 같은 거라고, 한번 정화할 기회를 줄 수 있겠느냐고, 정말 미안했노라고 용기 내어 솔직하게 고백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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