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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Apr 10. 2024

엄마와 아들

서귀포 향토 오일장

시장은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입니다.

저도 가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을 때면 시장에 갑니다.

서귀포 향토 오일장에 가면 들어가는 입구에서 과일을 파는 어머니와 아들이 있습니다.

부산에 계신 아버님과 남해에 부모님을 위해 제주 귤이라도 보내드릴까 해서 갔었습니다.

제주 장이라 그런지 귤과 제주 특산물들이 많이 있었답니다.

칸칸이 비교하며 살 수도 있었지만 왠지 입구에 딱 먼저 앉아 계신 그분들과 마주쳤고,

이것저것 맛 보여주시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이건 남해로 보내주시고요, 저건 부산으로요.'


제주귤들을 한 박스씩 주문합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한 상자씩 보냅니다.

오일마다 장에 들르니 이젠 어머니 사장님도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이거, 얼마전에 딴 귤인디 한 개 잡사 보게. 아주 달아.'

엄마와 아들 (흔쾌히 응해주셔서 찍었어요^^)

한 번은 남편이랑 갔더니, 옆에 서 있는 아들이 장가를 못 가 노총각이라고 하십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네요.

아들은 민망해합니다.

어머니의 넋두리가 싫을 법도 한데 하루이틀이 아닌 듯 체념한 얼굴입니다.


'얼마나 성실하고 잘생겼는데 동네에 좋다는 여자가 없어, 하이고.'

'그러게요, 정말 딱 맞는 짝이 곧 나타나겠죠.'


금방 깐 천혜향을 굳이 또 제 입에 넣어주십니다.


오일 뒤에 시장에 가니 어머니가 무릎을 보여주며 말씀하십니다.


'다음 주에 여그 나는 없을 거라. 제주 병원에서 다리 수술받는디, 무서버.'


류마티스관절염이라고 하십니다.

앉아서 농사를 짓다 보니 생긴 병 같다고 하십니다.

당분간 만나지 못할 거라고 미리 언질을 주십니다.

그다음 주에 가니 정말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드님만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머니 수술은 잘 되었고, 곧 퇴원하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웃처럼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고 위로와 사랑을 건넵니다.

얼마 뒤에 장날에 가보니, 반가운 어머니가 고운 얼굴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저를 보고 웃으시며 귤과 고구마, 감자등을 내미십니다.


또 저 맛 보이려고 벌써 맛있는 천혜향을 까고 계시네요.


'아유, 반가워요. 어머니, 수술은 잘 되신 거예요?'

'잘 되었는데 내가 잘 못 쉬고 바로 일을 시작해서 여거가 계속 아퍼.'


아들에게 맡겨 둔 장사가 걱정돼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신 게지요.

그래도 넉넉한 웃음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어머니를 뵈니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일주일 중에서 서귀포 오일장에서 4.9일, 제주시 오일장에서 2.7일 모슬포장에서 1.6일 이렇게 아들과 다니시며 과일과 작물들을 파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남는 이틀은 또 귤을 따고 농사를 짓는다고 하네요.

부지런하지 않으면 정말 농사를 짓는 일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에는 제주시내에서 지내볼까 한다고 했더니, 꼭 제주시 오일장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천혜향과 한라봉을 샀는데 가볍던 비닐 플라스틱 봉지가 그득해졌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시켜 몇 개씩 더 집어넣으신 게 분명합니다.

제가 산 천혜향은 그냥 과일이 아니네요.

오랫동안 서귀포 향토 오일장에서 장사를 해오신  제주어머니의 마음인 거죠. 

낯선 육지사람에게 따스한 정을 나누어주셨습니다.

귀한 인연을 만나 만원의 과일을 사도 덤으로 정을 더 쌓아주시는 어머니 꼭 건강하시길,

아드님도 올해에는 좋은 짝을 만나 더욱 하는 일 번창하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서귀포 오일장에 체험학습 나온 유치원생 병아리들은 돈을 주고 오이를 사고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 돈을 주고받으며 엄마 아빠가 하는 경제활동을 배우는 게지요.

조막만 한 손으로 바구니 들고 지갑 들고, 사람구경, 물건 구경하느라 바쁩니다.

오늘도 살아있음이 감사하고 내가 만난 정 많고 부지런한 시장 사람들의 호흡을 느끼며 성실히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배웁니다. 그렇게 오늘도 그들처럼 열심히 하루를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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