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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Apr 03. 2024

상처

4.3, 알뜨르비행장, 다크투어리즘

우리 모두에게는 상처가 있습니다.

어떤 상처는 끄집어내서 보기도 힘들 만큼 치유가 안된 것도 있지요.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고통스럽습니다.

상처가 어디 사람에게만 남을까요.

우리 민족에게도 전쟁과 식민시대를 살아오면서 위안부와 분단과 같은 큰 상처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용서와 화해는 진행 중인 듯합니다.


제주에서 쉼을 가지면서 처음엔 설렘과 기대감으로 여기저기를 다녔답니다.

그다음엔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에 경이로움과 친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익숙해진 곳에서 제주의 상처를 보고 나니 안타까움이 들기 시작합니다.

마치 괜찮은 상대를 만나 설레었다가, 정이 드는 것만 같은. 그러다가 그 사람의 내면의 아픔까지 알게 되면서 갖게 되는 그런 마음말입니다.




봄은 따뜻하고, 새로운 생명이 움트며 무채색이었던 겨울의 색들이 파스텔의 따듯한 색들로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마을 아래에 있는 너른 벌판을 뜻하는  알뜨르비행장, 이 곳에는 제주의 상처가 여전히 아픈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주에도 봄은 왔지만 알뜨르에서 맞이하는  봄은 그 상처로 인해 따뜻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봄이 너무 찬란해서 슬프고, 지금은 너무 평화로워 아린 상처로 4월을 맞이합니다.


서귀포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알뜨르 비행장은 중일전쟁 당시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제주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진 비행장이라고 하네요.

이곳에서 일본의 카미카제를 위한 조종훈련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4.3 사건의 학살 터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모슬포 지역 주민들의 강제징용으로 만들어 졌다고 하니 무고한 제주도민들의 희생이 남은 장소입니다.


제주의 평범한 사람들이 겪지 않아도 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비극의 삶을 살게 된 것이죠.

섯알오름에 오르니 학살터가 보이고 4.3 사건 희생자를 추모할 수 있습니다.

제단 위의 고무신의 의미는 수감자들을 이송해 가는 도중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고무신을 띄엄띄엄 던져놓아 자신들의 최후의 장소라는 것을 알린 것이라고 합니다.


알뜨르에서 보니 아름다운 산방산 앞으로 격납고가 보입니다.

주변은 온통 밭입니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에 끔찍한 전투를 위해 콘크리트로 격납고를 만들었네요.

저 밭에서 일을 하며 모슬포 주민들은 그들의 상처를 껴안고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겠지요.

눈이 나쁜 저는 격납고의 펄럭이는 것들을 보고 작은 언덕에 누군가 반갑다고 노란 손수건 같은 것을 걸었네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알뜨르는 상처를 뒤로하고 무성히 자란 풀들과 야생화의 터전이 되어 버린 곳, 가끔 날아다니는 새들의 쉼터가 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이 제주 곳곳에 해안 동굴진지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송악산 해안 절벽을 따라 17개의 동굴진지가 있었습니다.

이것도 제주 도민의 강제노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무기를 보관하기 위해 해안절벽 열 군데도 넘는 곳에 구멍을 낸 흔적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아프게 남아있는 제주의 상처인 셈입니다.


전쟁이나 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다크 투어리즘'이라 합니다.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관광지는 폴란드 아우슈비츠수용소가 있겠네요.

원자력 참사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과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은 나가사키.히로시마 평화공원, 9.11 비행기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같은 곳도 포함됩니다.(나무위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었으니 이러한 항쟁의 역사가 남겨진 곳이 되겠지요.

이 곳 제주에도 다크투어리즘 장소가 많습니다.

그만큼 상처가 깊은 섬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상처는 평생을 두고 트라우마로 남아 그 사람을 괴롭힙니다.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안아주어도 어떤 상처는 치유되기 어려울 때도 있고요.


오늘도 제주를 걷습니다.

이 상처를 보면서,

부는 바람이,

파도치는 제주의 바다가,

우뚝 서 있는 한라산이 그렇게 제주를 감싸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상처를 깊이 다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절대 잊지 않고 오래 오래 기억하겠다고 따스한 제주의 봄에게 건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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