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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Sep 30. 2023

 화양연화 (花樣年華)

화양연화 (花樣年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인생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데 왜 아련하고 슬픈지. 이 세상의 딸들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사람은 엄마이다. 물론 나에게도 그러했다. 아주 어릴 때는 엄마는 신사임당의 이미지보다는 영화에 나오던 원더우먼이나 소머즈처럼 강하고 위대했다. 아니 때로는 억셌다. 70년대 새마을 운동 시절 ‘잘 살아보세’라는 국가적 슬로건이 얘기하듯 당시의 형편이 엄마를 그렇게 생활력 강한 여자로 만든 탓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씩씩했다.      


남해 대교 위를 지나면서 차 안의 스피커 볼륨을 올려본다. 라디오에서 60년대의 비틀즈를 능가한다는 세계적인 K pop 가수 방탄소년단의 흥겨운 노래가 들린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앨범에 실린 곡이라 한다.

    

 ‘I NEED YOU, I NEED YOU GIRL, I NEED YOU.’    

 

 방탄소년단은 그들의 아름답고 찬란한 젊은 시절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들의 노래 속에는 화양연화의 의미와는 반대로 방황하는 청춘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화려할 것만 같은 눈부신 젊음 뒤에 함께하는 청춘의 불안과 고뇌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름다움 뒤에는 언제나 그 무게를 견디는 ‘어떤 어려움, 끝없는 노력’이 공존하는 것 같다.  

   

“이 노래 제목이 뭔데? 시끄러운데 가수 목소리가 너무 좋네. 제목이 뭐고?”


“엄마, 이거 요즘 애들 부르는 노래래. 화양연화라고, 인생에서 제일 아름다운 시절을 이야기하는 거라는데, 가사가 너무 빠르지?”


“잘 못 알아 듣겄다, 근데 젊은 애들이 딱 저거들한테 맞는 노래를 부르네. 피가 끓는 청춘이 가장 아름답제. 하모, 젤 좋은 때지.”    

 

  잠시 생각에 잠기는 엄마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살이 안쓰럽다.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20년째 병상에 계신 엄마와의 외출은 늘 힘들다. 휠체어를 챙겨야 하고 추위를 잘 타셔서 무릎 담요와 목도리, 모자까지 짐이 많다. 이러다 보니 어쩌다 하는 엄마와의 외출은 힘이 들어 미루게 되고 안 하게 되어버렸다. 다섯 형제 자식 농사 다 지으시고 이제 효도받으시며 편해야 할 노년의 시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을 받아들이기까지 엄마도 우리 가족 모두에게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엄마는 살면서 언제가 젤 좋았어?”


“내는 스무 살에 너거 아빠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서 큰 오빠 낳았을 때가 젤로 좋았제.”     


1남 8녀의 딸 부잣집에 셋째 딸인 엄마는 결혼해서 보란 듯이 외할머니가 그리도 못 낳던 아들을 한 번에 낳았다. 외갓집 동네에선 잔치가 벌어지고 엄마는 나라라도 구한 듯 대접을 받았다. 그때의 기쁨이 지금껏 인생의 가장 큰 행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 후로도 엄마는 아들 둘, 딸 둘을 더 낳으셨고 점수로 치면 오백 점이라며 늘 우리를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시절을 지나 오 남매를 키우시며 인생의 고비고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셨다. IMF 시절 엄마의 자랑이던 큰 오빠가 사업에 고비를 맞이하셨을 때 엄마의 뇌출혈이 처음으로 찾아왔다. 오른팔과 다리에 마비가 왔고 말은 갈수록 어눌해지셨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해서 사위의 생일과 집안의 온갖 대소사를 다 기억하셨다. 그러니 엄마의 머릿속은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었을까. 다섯 아이를 키우던 그 어렵던 시절을 ‘당신의 화양연화’로 기억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엄마가 아픈 것에 분명 나도 한몫을 한 것이다.      


  꽃이 져도 계절이 돌아오면 다시 피는데 엄마의 인생도 삶의 어느 지점에서 그렇게 다시 피어나면 좋겠다. 잡을 수는 없지만 사라진 세월 속에 함께 하는 찬란한 엄마의 젊음. 그 안타까운 짧은 순간들. 다시는 오지 않을 엄마의 건강했던 시간들. 엄마의 인생에 다시 꽃이 필 수 있을까.      


  짧은 외출을 마치고 남해 바다가 보이는 산 중턱 요양원에 늙은 엄마를 모셔다 드렸다. 이 시간으로 어쩌면 못다 한 효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뿐이다. 다음 주에 또 보자고 하니 엄마는 힘없는 손을 흔드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해 대교를 지나는데 저 멀리 붉은 노을이 바다를 안고 있다. 청춘의 빛나는 모습은 그 색깔대로, 나이 듦은 하루를 열심히 일하고 조용히 가라앉는 바다의 노을처럼 아름다움이 깃들기를. 엄마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해가 지는 저 바다처럼 평안하기를. 엄마가 좋아했던 그 바다를 보며 방탄소년단이 부른 화양연화의 한 구절을 따라 부른다.    

  

I still need you,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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