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별

행복해라 유벤~

유년시절에 동물을 사랑하는 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에는 진돗개를 다섯 마리나 키웠다. 우리는 집 마당에서 엄마가 가꾸시던 계절꽃들을 보면서, 또 진돗개들과 뛰어다니고 놀면서 자랐다.

이후 진돗개들은 언니와 내 이름을 딴 진아와 진성이만 빼고는 모두 다른 곳으로 입양되어 갔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와서 진돗개를 데리고 갔는데 가족처럼 키울 것 같지 않았고,  잘 키워서 먹어버릴 것만 같았다. 시골에서는 그런 일들이 더러 있었다. 

어렸던 나에게는 큰 사건이었고, 몇 날 며칠을 강아지들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울었다. 이후 진아와 진성이만 나이 들어 죽을 때까지 나의 유년시절을 함께 했다.

그 당시에는 개를 키우는 게 특별히 어렵진 않았다. 요즘처럼 매일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것도 아니었고 마당에서 키웠기 때문일 게다. 진돗개라 영특했는데 요즘의 강형욱 씨처럼 작은오빠가 개를 잘 다루어서 개의 감정이나 행동들을 잘 읽어냈었다. 진아와 진성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내 인생에 반려견은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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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커 가면서 불독을 좋아라 했다. 그걸 기억한 남편이 불독 인터넷카페에 가입해서 이것저것 알아본 모양이다. 어느 날 남편이 초등학생이던 아들을 학교에 체험학습을 내고 같이 서울 어딘가에서 불독을 분양받아왔다.

온통 주름진 얼굴, 좋다고 웃는데도 찡그리고 있는 무언가 억울한 얼굴, 스모키화장을 한 것 같은 짙은 눈두덩이, 하지만 그 동그란 눈엔 무언가 감성 한 스푼이 있는 그게 어린 유벤이의 첫인상이었다. 작은 애기가 주름이 쭈글쭈글하고, 얼마나 활동성이 좋은지 아파트에서 불독은 도저히 키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유벤을 딱 3일 정도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해 주던 아이들은 이후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느라 가끔 유벤을 돌보았다. 유벤은 예상했던 대로 남편의 몫이었다. 유벤도 사회생활의 기본을 잘 알았는지,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할지를 아는 눈치였다.

남편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유벤과 함께 하게 되었다. 출근 전 같이 산책을 하고, 퇴근해서 돌아와 '유벤아'하고 부르면,  그 통통하고 짧은 다리로 남편에게 먼저 뛰어가곤 했다. 퇴근한 남편이 유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아파트 이웃들이,

'강아지가 아빠를 꼭 닮았네요.'하고 얘기하면 남편은 참 좋아했다.

식성이 너무 좋은 유벤이가 비만이 될까 녀석의 식사량을 조절하니, 이 녀석이 우리가 안 보는 사이 아무거나 주워 먹어서 부끄럽기도 했다. 힘만 무식하게 세서, 다른 견주들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귀여운 반려견들을 보면

'유벤, 넌 왜 이렇게 먹는 것만 밝히는 건데.'

 타박을 주곤 했었다.

아빠와 산책할 때는 얌전한 놈이 우리와 나가면 좀 달랐다. 특히 심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산책을 나가서 이 녀석이 예쁜 아가씨들만 보면 달려간다는 것이다. 힘이 너무 세니까 유벤의 산책줄에 내가 끌려다닐 정도였다. 산책 중에 '어, 죄송해요. 앗, 미안합니다.'를 남발했었다. 어려운 일이다. 생명을 돌본다는 일은, 그리고 사회화시킨다는 것은.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 우리 가족의 훌륭한 멤버가 되어가던 유벤이가 어느 날처럼 식욕을 못 참고, 뭔가를 잘못 먹었다. 시름시름 앓는 모습은 정말 안쓰러웠다. 아마 대화가 안 되니 더 그랬을 것이다.

남편은 유벤이가 너무 걱정되었던지 수의대 교수특진을 받게 했다. 그냥 동물병원 가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유벤이의 상태는 심각했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CT를 찍으니 장에 무언가 있었다. 유벤인 입원 했고, 우린 기도했다. 장을 절제하고 유벤인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사람도 강아지도, 아프니까 확 늙는다. 아직 개구쟁이 짓 더 할 나이인데 '유벤아 힘내, 정신 차려야지.' 했는데도, 자꾸만 구석에 가서 드러누웠다. 많이 아팠던 게다.

남편이 쉬던 어느 주말 오후에 산책을 다녀와서 유벤이는 설사를 더 하고, 또 엎드렸다. 남편이 안아주니, 남편의 큰 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고 했다. 유벤이가.

아이들은 차마 사랑하는 강아지의 마지막을 볼 수가 없어 거실에서 울기만 했고, 어린 시절 진아와 진성이가 그렇게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의 슬픔이 되살아났다. 유벤이는

그러고 나서 한참 있다가 그날 오후에, 남편의 품에 안겨서 편안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우리 집에 온 지 사 년 반만이었다.

함께 살던 유벤이를 하늘나라로 잘 보내는 일은 가족모두에게 고통이었다. 키우다가 반려동물이 죽으면 대충 쓰레기 봉투에 싸서 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해서 우리는 기겁을 했다. 우리는 유벤이의 화장터를 알아보고 장례절차에 따랐다. 유벤이의 싸늘한 몸을  염습하고 입관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유벤이를 쓰다듬으며, 함께 해준 시간 너무 고마웠다고, 더 많이 못 놀아줘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우리가족으로 함께 살아준 유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유벤이는 그렇게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로로 들어갔다. 5년 밖에 못살고 생을 마감한 유벤이가 얌전히 누워 멀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슬퍼 온 가족이 오열했다. 이별은 사람도 반려동물도 항상 힘들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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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에 나가면 예쁜 옷을 입은 반려견들이 견주와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유벤이 한테 저렇게 예쁜 옷도 못 사줬네, 남편이랑 유벤일 추억한다. 어릴 때, 아들은 우리에게 혼이 나면 유벤일 끌어안고 위로받곤 했다. 딸도 학교 다녀오면 미주알고주알 유벤이한테 수다를 떨었다.

남편의 출퇴근길에 유벤이는 늘 충성스러운 친구였다. 남편이 가끔은 나보다 유벤이가 낫다고 했다. 유벤이가 자기 맘을 젤 잘 알아준다나. 내가 하루를 마감하며 식탁에라도 앉아있으면 늘 내 곁을 얌전히 지키고 있어 준 것도 유벤이었다. 유벤인 우리 가족에게 훌륭한 반려견이었다. 우리도 유벤에게 좋은 가족이었기를.

이제 아이들이 다 자라서 조금 허전하다고 또다시 반려견을 키운다는 지인들이 꽤 있지만 나는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 진아, 진성이와, 그리고 내 아이들이 함께 한 유벤이와도, 그들과의 이별은 여느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처럼 너무 슬프다는 것을 경험했으므로.

 반려견들은 죽으면 천국 가는 길 바로 옆에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인 무지개다리에서 주인을 기다린다고 한다. 나는 우리 강아지들이 나를 기다리지 않길 바란다. 그곳에선 그냥 행복하게 온전히 가족과 친구들과, 행복했으면 좋겠다. 주인을 기다리는 삶 말고, 누군가의 반려견이 아닌 그냥 유벤이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