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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Oct 23. 2023

시골쥐와 서울쥐

시골쥐의 서울적응기


시골쥐가 서울쥐를 초대하였습니다. 서울쥐는 먹을 것이 초라한 시골쥐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시골쥐를 데리고 서울에 갔습니다. 서울에는 맛있는 음식은 너무 많은데 먹으려 할 때마다 사람이 들어와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숨느라 제대로 먹지 못한 시골쥐는 다시 맘 편한 시골로 돌아갔답니다.    


아들이 다섯 살 때 서울쥐와 시골쥐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는 질문을 한다.

  

  '엄마는 시골이 좋아? 도시가 좋아?'


  '음, 글쎄. 복잡한 도시보다는 맘 편한 시골이 낫지 않니?, 우리 아들은?'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잖아요. 도시에 안 가봐서 잘 모르겠는데?'


   어린 아들의 대답이 야무져서 별 생각 없이 시골이라고 말해버린 나는 무안했다. 아마도 내 무의식 속에 도시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도시는 각박하고 정신없고 시골은 푸근하고 순박할 것 같은. ‘시골쥐와 서울쥐’라는 동화에서도 어쩌면 도시는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만 바쁘고, 시골은 초라하지만 안정을 더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던지고 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남편은 내가 자신의 그늘에 사는 것이 미안했던지 지금도 안 늦었다며 하고 싶었던 일을 보라고 다.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대학을 진학하던지 직장을 얻게 되는 청춘의 나이에 도시 생활이 시작일 텐데, 꺾어진 반백 살의 나이에 나는 서울에 살게 되었다.    

       

< 시골쥐, 화이트커피의 서울 적응기>   

  

   어린 시절부터 시골쥐에게 도시는 먼 곳이었습니다. 시골쥐는 하동 섬진강 옆 광평리에서 태어났어요. 지금은 섬진 나루터가 옆에 있고 소나무 숲이 울창한 송림 공원이 있어 그나마 사람들 발길이 잦지만 시골쥐가 태어날 때만 해도 벽촌이었다고 해요. 그 이후 자라면서도 외가 옆에 사시려는 엄마의 뜻이 강해서 대도시에서 산 기억이 없어요.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은 늘 학기 초에 호구조사를 하셨답니다.

      

  '집에 컬러텔레비전 있는 친구 손 들어봐라.'


  '서울에 가본 적 있는 친구 손 들어봐라.'     


   그 시절에는 컬러텔레비전이 있거나 서울에 가 본 시골쥐들은 시골 학교에서는 한두 명이었대요. 서울에 가본 적이 있는 시골쥐들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자신 있게 들었답니다. 그 당시 이 질문이 왜 필요했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선생님의 그 질문은 시골에서는 ‘보자, 누가 누가 잘 사나’ 물어보는 척도였달까요. 자신 있게 손을 들었던 친구들이 무용담처럼 남대문이며 서울역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골쥐는 마음으로만 서울을 그려 보았죠.  


  그렇게 서울은 마음으로 먼 동경의 도시였는데, 젊음을 지나 은퇴를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귀농을 생각하는 두 번째 스물다섯의 나이에 서울에 오다니. 시골쥐는 놀라웠어요. 높은 건물들이 그랬고, 뭐든지 많은 가게들, 거리에 사람들이 그랬어요. 그리고 이제는 시골쥐가 살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은 의무에 충실했다면 이제라도 본능에 충실하고 싶달까요.

     

한양의 사대문에서 십 리 밖으로 나가 살지 마라.     

   

조선 시대의 실학자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이라고 해요. 아마 당시의 한양이 기회의 땅이고 출세할 길이 많아 아버지로서 그런 유언을 남겼던 것 같아요. 21세기 지금도 서울은 우리나라의 중심지이며 활동적인 곳이니까요. 시골쥐가 가는 곳마다 서울에는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를 즐길 수가 있고 넘치는 먹거리와 가 볼 만한 곳들이 많았어요. 어느새 시골쥐의 수첩에도 서울에서 하고 싶은 wish list가 자꾸 쌓여가고 있어요.


큰애가 어릴 때 읽어주었던 ‘시골쥐와 서울쥐’ 이야기에서는 먹는 게 입에 안 맞아 다시 시골로 돌아가지만 쉰 살의 시골쥐는 서울 생활이 너무너무 재미난 것 있죠. 먹고 싶은 것도 실컷 먹고, 연극, 뮤지컬도 마음껏 보고, 임금님이 살았다는 궁궐도 가보았답니다.


  무엇보다도 시골쥐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글도 쓰기 시작했어요. 시작이 반이잖아요. 


   시골에 사는 언니가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옆집 사는 창숙이네 작은아들이 이번에 서울대에 붙었다고 내심 부러워하며 주변 소식을 듣고 와서 괜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네요. 익숙한 시골의 한 장면이에요. 시골에는 옆집에 숟가락 젓가락 수까지 안다고 할 정도로 서로 간에 관심이 너무 많거든요. 하지만 서울에 살면서는 내가 먼저 말하지 않는 한 누구도 나의 삶에 관해 물어오지 않아요. 도시에 살면서 이러한 익명성에 대한 존중은 참으로 편리한 것 같아요. 작은 일에도 스스럼없이 물어오는 시골의 부담스러운 관심은 가끔 사생활이 있는가 묻고 싶을 정도니까요. 이러한 개인주의가 외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서울 생활이 주는 큰 기쁨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어요.  


   시골쥐가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곡 시장에 잠시 들렀어요.  족발 가게 사장님도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정리 중이시네요. 마지막 남은 한 팩의 족발이 눈에 들어와 밟힙니다.


   '족발 맛있나요?'

   '어휴, 말해 뭐 해. 아직도 우리 집 족발 안 먹어 보셨구나.'

   '한 팩 주세요.'

   '덕분에 오늘 일찍 퇴근해요. 이게 마지막 남은 거거든.'


   마늘, 고추와 족발 양념을 비닐에 챙겨 넣어주시는 사장님의 웃음에 시골쥐는 덩달아 기분 좋아집니다. 서울 생활하면서 무언가 각박할 것이라고만 생각한 선입견이 훅 달아나는 기분이네요. 마지막 족발을 팔아주어 그녀의 퇴근을 도왔다는 뿌듯함이 들었거든요.


오늘도 이 바쁜 도시 서울에서 ‘하루를 잘 살았다’ 생각하며 시골쥐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맛있는 족발을 편안하게 먹으려고요. 집에 와 족발을 먹고 있는데, 훌쩍 자란 아들이 옆에 앉으며 족발을 집어듭니다.


‘엄마, 서울생활 어떠세요? 너무 적응 잘하시는 것 같아요. 엄만, 서울이 좋아요? 시골이 좋아요?’


‘아, 엄마? 당연히 서울이지 이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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