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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Oct 25. 2023

장미꽃이 피었습니다.

'어머 어머, 겨드랑이에 문신을 했네, 아이고 망측해라.'


  피트니스센터에서 그녀를 본 70대 할머니가 참으로 기괴하다는 듯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하긴 나도 팔이나 등 말고, 겨드랑이에 장미꽃 문신을 한 여자는 처음 보았다.


그녀는 내가 운동하러 다니는 체육관에서 글램핏 수업을 하는 미스코리아 출신 선생님이다. 미인대회 출신이니 예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운동하러 온 센터의 모든 사람이 힐끗힐끗 보게 되는 멋진 몸매의 소유자이다.


  내가 자라온 세대에는 문신했다는 것은 남자이면 조폭 출신이거나 여자일 경우에도 좀 놀아본 경우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요즘에야 연인들끼리, 또는 개인의 취향으로 많이들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이 많다.


운동하면서 동작을 따라하다보면 팔은 당연히 들어올리게 된다. 그녀의 겨드랑이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민망해서 먼저 고개를 돌렸었다. 장미꽃이 피었다. 그것도 겨드랑이에. 그녀는 가까이하기에는 나와는 너무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운동을 하면 당연히 땀이 나니까 보통은 화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생님은 쌍꺼풀이 큰 눈에 엷은 보라색을 펴 바르고 땀이 흐를 것을 알면서도 볼에 적당한 홍조의 색조 화장을 한다. 다리에 딱 붙는 쨍쨍한 컬러의 레깅스는 기본이고, 하의 색에 깔 맞춤한 브라탑까지 장착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성을 다해 가꾼 티가 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녀의 노력은 정말 칭찬하고 싶다.


 아이 둘을 낳은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여성의 몸은 처절하게 달라진다. 살을 빼도 예쁘게 빠지지 않는다.  뱃살은 또 왜 그리 접히는지 자전거 타이어에서부터 자동차 타이어까지 뱃살을 비하하는 그런 말들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그래서인지 아줌마들의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라도 절실하다. 처녀 적 몸매까지는 아니더라도 울퉁불퉁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장미꽃 문신을 한 선생님의 수업은 인기 절정이었다. 단순히 선생님이 예뻐서였을까? 아줌마들의 운동복 패션은 날이 갈수록 선생님을 닮아 과감해져 갔다. 몸매가 딱 드러나는 분홍 레깅스부터 하늘하늘한 브라탑까지 그들의 살들을 꾸역꾸역 집어넣어 가며 구슬방울 같은 땀을 흘린다. 힘든 동작들을 잊게 할 요량인 듯 스피커를 뚫고 나오며 빵빵거리는 음악은 아줌마들의 삶을 치유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데로 가면 돼~.’


  흥겨운 음악 속에 그녀들의 시댁 고민도 육아 문제도 모두 묻힌다. 이 순간만큼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며 그 무대에서 주인공은 당연 그녀들이다. 살아오면서 그녀들이 만난 삶의 고비와 같은 인생의 주름도 다리미로 다려 쫙쫙 펼 수 있을 것만 같다.


외모가 잘생기거나 호감형의 남자를 보면 보통 멋있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고 여자에게는 예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또는 남성에게 적용하는 미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장미꽃 문신의 선생님을 보았을 때는 ‘예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녀의 외모뿐만이 아니라 무언가 끌리는 다른 매력으로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당당함이었다. 수업 시작 전에 일찍 와서 회원들을 위해 기구를 소독하고 매트를 깔아 두는 배려심 또한 그녀를 더욱 프로답게 만들어 주었다. 한 시간을 꽉 채워 아줌마들의 니즈를 채워주는 열정적인 그녀. 지각과 결석은 당연히 없었고, 대충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그녀의 프로다운 태도 덕분에 수업은 회원들로 늘 북적였다.


언젠가 TV프로에서 좋아하는 가수가 팔에 2002년 *월 *일이라는 날짜를 문신한 것을 보았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첫 만남을 잊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지켜가겠다는 뜻으로 새겼다고 한다.


'자기야, 나도 문신할까?'


'헉, 방금 뭐라고 했어? 갑자기 웬 문신?'


남편은 내가 몸에 뭐라도 새길까 봐 잔뜩 겁먹고 쫄은 표정이다.


'멋있잖아. 용이나 호랑이 이런 거 말고, 깔끔한 레터링 같은 건 기념도 되고 좋잖아.'


'아니 아니, 그거 엄청 아파, 절대 하지 마, 갑자기 몸에 뭘 새긴다고 그래.'


'흥, 걱정 마, 자기 이름 같은 건 안새길테니.'


호기심 많은 아내를 자제시키느라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져서는 나를 말린다.

 농담을 다큐로 받아들인다.


'꼰대같으니라고.'


나는 그녀의 겨드랑이에 핀 '장미꽃 문신' 보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멋있다. 요즘 같은 외모지상주의시대에 시각적으로 보이는 ‘예쁘다’ 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멋지게 설계하는 일은 중요하다. 게다가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 최선을 다하며 배려하는 모습은 그 사람을 빛나보이게 한다.


이제 장미꽃 문신의 그녀는 먼 나라의 여자가 아니라 어리지만 닮고 싶은 멋진 여자이다. 출산과 육아로 지친 아줌마들에게


‘당신은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에요, 자신을 가꾸고 사랑하며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라고 말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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