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오줌이 터질 것 같다. 60대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러나 점잖아 보이는 회색 정장 바지 차림의 해식은 2호선 선릉역에서 급하게 지하철을 탔다.
오래된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빈자리가 있나 휘리릭 둘러보고는 경로석으로 향한다. 급하게 타느라 화장실을 들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요즘 들어 전립선이 문제다. 소변조절이 안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자꾸 실수를 한다. 등 아래쪽에서 쿡쿡 찌르듯이 통증이 온다. 경로석에 앉는 순간 소변을 지렸다. 헉, 당황스럽다. 이런 일이 가끔 있는 터였는데 이번에는 지하철 안이라 더 민망하다.
침착하자,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 알아차리면 얼마나 쪽팔리는 일인가. 짙은 회색바지를 입으라는 아내의 말을 들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얼른 집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싶은 생각뿐이다. 해식은 짐짓 괜찮은 미소를 지었지만 실은 온 신경이 그곳에 가 있다. 이미 조금 쌌으니 집까지 가는 몇 정거장은 괜찮을 것 같았다. 내일은 꼭 비뇨기과에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야지. 급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었더니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이다.
'이번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This stop is Gang nam, Gang nam. The doors're on your right.'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꺄르륵 웃으며 젊은 커플과 대학생인 듯 보이는 친구들이 한 무리 내렸다. 강남역 문 앞에 한 줄로 서 있던 승객들이 또 급하게 밀려들어온다. 요즘 크롭인지 뭔지 유행이라더니, 배탈이라도 날 듯 배꼽이 보일락 말락 하고 목이 훅 파인 니트를 입은 아가씨가 맞은편 좌석에 앉았다.
‘경로석인데 꽤나 피곤했나, 하필 내 앞에 저 자릴 앉네.’
맞은편에 앉은 아가씨가 바로 앞 해식을 아래. 위로 훑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다.
‘뭘 보는 건데?’
아가씨의 눈빛이 도전적이다. 해식은 순간 민망하다. 바지에 지린 소변을 혹여나 들킬까 해식의 신경이 온통 거기에 가 있었다. 순간 다리를 오므렸다. 뻘쭘해하며 옆을 두리번거리다 눈도 피했다. 목이 훅 파인 니트는 그녀의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몇 정거장을 지나니 지린 소변이 말랐는지 갑작스럽게 전립선이 가렵다. 참아야 되는데 주책맞게 너무 가려워 살짝 긁어주고 싶다. 당황스럽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참을 수 없어 본능적으로 하지만 최대한 다른 사람들이 눈치 안 채게 손을 쓱 넣어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다. 순간 후련하게 시원하다. 공공장소에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해식은 본인도 불쾌해졌다. 늙어가는 자신의 몸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주변을 경계하느라 여기저기 눈알을 돌리던 해식은 순간 또 아까 그 앞 좌석 아가씨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까부터 지켜본 것이다.
‘미친놈, 손이 어디 들어가 있는 거야,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딱 이런 눈빛이다.
그 순간 또 가려워 마지막 한 번만 더 기어이 긁고서 손을 빼낸다.
아가씨는 긴 생머리를 고개를 조아리며 뒤로 휙 보낸다. 가슴이 삐질삐질 보이려는 민망한 크롭티의 어깨끈을 양손으로 올려 고정한다. 해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우연히 그 장면을 보았다.
‘헐, 저 변태 같은 새끼가 내 가슴을 훔쳐보고 있네.’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아가씨가 해식을 성범죄자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악, 저 아저씨가 나를 보면서 자꾸 이상한 짓을 해요.’
‘제 가슴을 보고, 자기 거기를 계속 만지면서 저를 자꾸 쳐다봤다구욧.’
이미 좋은 구경이라도 난 듯 주변 아주머니들과, 회사원들의 시선이 해식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해식은 당황스럽다.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우물쭈물한다.
머릿속은 이미 혼란과 소란 속에서 하얗게 백지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변 승객들은 이미 여자의 주장에 휩싸여 해식을 격렬히 비난 중이었다. 오해의 소용돌이가 지하철에 일파만파 퍼지고 있었다. 수백 개의 눈알들이 해식에게 레이저를 쏘고 있었다.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가 미친놈이네, 요새 이상한 놈들이 너무 많아.’
무언의 말들을 그들의 눈빛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해식은 순간 어떻게 변명해도 우스운 사람이 될 것임을 알았다.
침묵하는 해식을 보자 아가씨는 더욱 기세가 등등하더니, 결국은 사당역 지하철 수사대 경찰까지 호출되었다. 이젠 문제가 일파만파 커졌다. 해식으로선 어떻게든 이 오해받은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신이시여, 지혜를 주소서.’
최근 몇 년간 겪어보지 못한 힘든 상황이다. 이 쪽팔림, 이 오해, 저 미친 여자의 이상한 상상에 의해 한순간 범죄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전립선이 야속할 뿐이었다.
경찰은 표정도 없이 침착했다. 그러나 해식을 보는 눈빛에는
‘거 점잖은 신사분이 할 일이 없어 여자를 보며 자기 물건을 만지시나,’
하는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신고가 접수되어 서까지 가서 잠시 조사받으셔야 합니다.’
여태껏 죄 한번 안 짓고 모범적으로 살아왔는데, 아니 법 없이도 살 친구라는 주변의 평판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변태 성범죄자가 되어버렸다.
해식은 짧은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어느새 사당역 4번 출구로 전력질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 어떤 나르시시스트 이상한 여자 때문에 개 망신 당하고, 오늘 하루 완전 x 됐다.’
그날 저녁 8시 뉴스,
오늘 2호선 지하철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CCTV영상을 확인한 결과, 성추행범이 아니라 전립선 간질증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전문가의 소견이 있었습니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 민주시민으로서 우리 모두는 상황을 판단하기 전에 상대방의 의도와 동기를 잘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은 사과하고자 하였으나 전립선 간질증 시민은 이미 도주하고 난 이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