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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Nov 13. 2023

이별

함께한 제네시스를 보내다

오래된 가난한 남자친구 버리듯 무심하게


그리고 새 고무신 갈아 신듯이 쿨하게

너를 보낼 때가 된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만 슬픈 게 아니구나.

 

십 년을 함께 하면서 어디든 나와 함께 해준 너를 떠나보낸다.


너의 이름도 우리 아이들 이니셜을 따라 MJKIM 번호판을 붙여줬는데.


국산차인데 미국에서 샀다. 역수입해온 이다.

뒷바퀴를 굴리는 구동방식을 도입한 후륜구동이라 겨울이면 잘 미끄러지는 게 단점이었는데

그래도 낯설었던 미국에서 어디든 너와 함께 여서 든든했었다.


너와 함께 아이들과 지구반바퀴정도를 여행한 것 같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다녔고,

플로리다의 세븐마일스 다리를 지나 디즈니랜드에서의 추억도

광활한 옐로우스톤에서 했던 몇 박 동안의 캠핑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캠핑중에 옐로우스톤의 밤은 왜 그리 칠흙같던지,

숲에서 내려온 곰이 차 옆을 어슬렁거릴때  

그 두근거림도 함께 해준 고마운 너였었다.




밤늦은 시각 여행 중,

샌프란에서 숙소를 향해 달리고 있었는데,


경찰차가 정확히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정말 영화에서 볼법한 장면이었다.  


'Pull over onto the shoulder.'


총을 소지한 경찰이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이 중국인처럼 보이긴 해도 아주 순한 인상인데 뭔가 오해가 생겼나 싶었다.

 

처음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깨라는 단어만 들려 왓 왓 거리다가 갓길이란 표현으로 shoulder이 쓰일 수도 있구나 알게 되었다.


해가 길어지던 여름이라 라이트 켜는 것을 깜박했나 보다. 친절하게 알려주시려고 갓길로 우리를 인도했던 미국 백인 경찰.  


지금 생각해도 땡큐인데 미국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선입견이 가득했던지 엄청 쫄았던 기억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데려온 제네시스는 이후에도 우리의 역사와 함께 했다.


 가끔은 연로하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어머니 산소를 갈 때도, 해운대 바닷가에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과 놀러 다닐 때도 큰 몫을 해냈다.


남편과 사소한 일로 다투고 갈 데가 없어 주차장에 있는 제네시스로 가출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안정적인 피난처역할을 해주었고, 안방 내 침대보다도, 거실의 폭신한 소파보다도 내게 편안함을 준 따뜻했던 차였다.


물건에 무슨 온도가 있겠냐만은 나는 오래된 물건들에 그리고 그 물건에 사연들이 더해지면 따스함을 느끼게 된다.


따스함이 더해져 정까지 들어버린다. 


이 제네시스가 나에게 그런 물건이 되어버렸다.


곧 보험갱신이라 요참에 팔아버리자고 남편이 얘기했을 때,


드디어 보낼 때가 된 건가 하면서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너를 보내는구나 싶어 미안함까지 든다.

 

그러나 새로운 주인은 너를 더 예뻐해 줄 것이며 더 유용하게 사랑해 주겠지.


잘 가라 나의 사랑~제네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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