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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Nov 20. 2023

각자도생

각개전투, 알빠노

'자기야 이거 봐라'


식탁 앞에서 검정양말을 신은 발가락을 남편이 들어 올립니다.


엄지발가락이 나 좀 봐달라고 부끄럽게 얼굴을 내밉니다.


구멍이 크게 뚫리기 직전인 양말을 혼자 보기 아까워서 나에게 공유합니다.


'마누라가 누구세요? 그런 양말을 신기게.'


큭큭 웃으며 농담을 던집니다.


'어, 저기 있어요  내 마누라.'


'근데 남편분한테 신경을 안 써주시나 봐요.

발꼬락이 나오려는데요?'


'아니요, 내가 알아서 신은 거예요, 우리 집은 각자도생이거든요.'




대학생 아들이 기숙사에서 돌아와 주말 실컷 늦잠을 잤지요.


해가 중천에 가니 어슬렁어슬렁 일어나

'엄~마,' 다정하게 부릅니다.


밥이 고픈 게지요.


그 모습이 얄미운지 남편이 한마디 합니다.


'아들, 식사시간 놓쳤으니 챙겨 먹어, 각자도생이야.'




'엄마, 내 교통카드 못 봤어요?'


1교시 수업에 늦은 딸이 급하게 묻습니다.


'글쎄, 못 봤는데?'

'분명 여기 놔뒀는데.'


발을 동동 구르는 딸아이 안쓰러워 같이 찾아주려는데,

남편이 다가와 귀에 속삭입니다.


'자기야, 가만히 냅둬. 각자도생이야.'




각자도생

직역하면 '각각 스스로 살기를 꾀한다'는 뜻. 비슷하면서 좀 더 극단적인 개념으로는 생존주의, 남이 어떻게 되든 '알빠노', '나만 아니면 돼' 같은 무관심과 이기주의가 있다.(나무위키)



언젠가 식탁에서 딸아이와 아들이 대화 중에 유명아이돌의 마약복용설이 주제가 된 적이 있답니다.


큰 아이가 '연예인들이 뭘 하든, 공부하고 취업준비도 바쁜데 알빠노.' 그러네요.


'알빠노?'  그건 내가 알바 아니다. 영어로 하면 'It's none of your business' 정도의 말인가 봅니다.


하지만 그 말이 주는 어감도 그렇고-알빠노가 뭐냐고요. 이태리어인 줄 알았다고요. 내포한 뜻도 젊은 세대의 이기주의처럼 들려서 교양 있는 엄마는 그냥 넘어가지 못하지요.


무엇보다 각자도생을 장난처럼 얘기하는 남편의 말에 안 그래도 예민해 있던 터였거든요.  


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뜻이라 정 없이 들리는 것도 한 몫했지요. 이건 그냥 못 넘기지 싶어서 한마디 거들었답니다.


'알빠노가 뭐냐, 너네는 누가 어떻게 되든 나만 잘되면 되는 거냐, 내 행복과 만족만 중요한 거니?'


점점 확대해석하는 엄마와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지 눈치챈 이 녀석들은 경험으로 아는지 슬슬 바쁘다며 둘 다 자리를 뜹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잘하기를 바라는 남편챙김과 협력을 통해 서로 돕는 사회생활을 배우기를 원하는 엄마, 이거 밸런스 게임 한번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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