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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Nov 27. 2023

엄마와 우물

2023 전국여성환경백일장 차상


  우물은 깊고, 어둡고, 축축하다.

  그 깊은 동굴을 따라 내려가면 어두운 우물 바닥에 맑은 물처럼 고요한 엄마를 만난다.

  동네 대부분 집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우리 집 우물은 지붕도 덮개도 없는 개방형이었다. 어느 집은 우물물을 손으로 퍼 올리는 수동식 펌프가 있었고, 우리집 우물에는 네모난 두레박이 있었다. 가끔 힘자랑하느라 우리 형제들은 이 두레박을 서로 긷고자 하였다. 다섯 형제 중에 넷째면서 유독 키가 작았던 나에게 그 순서는 올리 없었다.

  엄마는 우리를 키우시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수도가 없던 시절이라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우물가에서 빨래하셨다. 우물 옆에는 큰 감나무가 제 키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물 옆 큰 벽에는 흰 페인트 작은 글씨로 ‘1975년 7월’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버지가 새집을 장만하면서 이사 온 해를 기념하여 적어 두신 것 같다. 봄에는 수선화며 철쭉이 화단을 환하게 메우고, 여름이면 우물 옆 벽을 따라 장미 넝쿨이 흐드러졌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시는 엄마 덕분에 우리 형제는 꽃밭에서 늘 먼저 계절을 만나곤 하였다.

   엄마의 하루는 우물에서 시작되었다. 가족의 아침 식사와 다섯 아이의 도시락을 위해 몇 인분인지 가늠도 안 되는 쌀을 씻으면 해가 금방 떠올랐다. 시금치를 씻어 우물 옆에 놓여있던 곤로 불에 금빛 나던 양푼 냄비로 데쳐내시고, 큼지막한 대파를 슥슥 씻어내시던 엄마의 모습이 우물가에 서려 있다. 세수가 서툰 막내를 깨끗이 씻기는 것까지 우물가에서 엄마의 손으로 마무리되었다.

  어느 해는 정안수를 떠 놓고 큰오빠 좋은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우물가에서 몇 날 며칠을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엄마를 따라 손을 모았다. 열 살도 훌쩍 넘게 차이 나는 큰 오빠가 엄마가 바라시는 명문대학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일 년에 두어 번 집안 제사를 지내기 위한 여러 가지 음식도 우물가에서 준비하셨다. 그런 날은 마치 잔칫날 같아서 우물가에 적당히 서 있다가 심부름하고 부침개와 시루떡 같은 맛있는 음식을 많이도 주워 먹었다.

   가끔은 우물가에서 빨랫방망이로 빨래를 힘껏 내리치시던 엄마의 모습도 선하다. 다섯 아이의 빨래가 오죽 많았을까만은 불평 없이 엄마는 할 일을 해내셨다. 온 가족이 식사를 마치고 나면 달그락거리며 그 많은 그릇을 설거지하는 엄마의 모습도 우물가에 한 풍경으로 남아있다.

  우물가에서 엄마가 뒤돌아 앉아 우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엄마의 쓸쓸한 등을 보며 어린 나는 슬펐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 등에 가만히 얼굴을 대고는 우물 벽을 보았다. ‘엄마, 울지 마’ 속으로 눌렀던 이 말은 우물이 삼켜 버렸다. 우물가는 엄마가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씻을 수 있는 유일한 쉼터 같은 곳이었을까.

   여름날에는 퇴근하고 오신 아버지에게 엄마가 등목시켜 드리는 시원한 물소리도 우물가에서 예사로 들었다. 하루의 피곤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아우 시원하다, 아우 시원해’ 연발하시며 두 분의 사이좋던 모습도 아련하다.

  별자리를 많이 알고 계시던 엄마는 여름밤이면 우물 옆에 평상을 펴고 동생이랑 나를 불러 밤하늘을 보고 눕게 했다. 도란도란 누워 견우직녀의 오작교 얘기를 들려주시고 함께 북두칠성과 북극성 별자리를 함께 찾곤 했다.

  엄마에게 큰 의미였던 이런 우물이 우물 벽을 없애고 덮어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언니가 새벽부터 소풍 간다고 들떠있었다. 어린 동생들을 두고 엄마는 언니의 소풍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설이나 추석이나 돼야 사주시던 새 옷과 새 신발을 언니에게 사주셨다.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장을 보는 엄마 옆에서 그날 나는 고집을 피웠다. 소풍 따라가고 싶다고, 언니처럼 예쁜 옷이랑 신발 갖고 싶다고 징징대었다. 안쓰러워 보였던지 엄마는 내가 태어나고는 처음으로 빨간 새 구두를 사 주셨다. 시골 동네에 빨간 구두를 신은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가방에 과자와 사이다를 챙기고 언니는 눈이 벌게져서 엄마 없이 소풍 갔다. 어릴 때는 내 마음만 중요해서 혼자 소풍 간 언니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 못 해봤다. 엄마가 되어보니 고작 아홉 살이었던 작은 여자아이가 동생들에게 참 많이 양보하였다.

  요란한 소풍날 아침이 지나고, 우물가에서 고단한 얼굴로 빨래하시는 엄마 옆에서 동생과 놀고 있었다. 빨간 새 구두를 신었다. 굽이 3센티 정도 되었을까 적당히 키가 돋보이는 높이였다. 시골 아이가 금방 마법에 걸린 공주가 된 것 같았다. 세 살 아래 남동생이 그날따라 유독 더 작아 보였다.

  “와, 우물 안이 다 보이네.”

  “거짓말, 우물 안이 어떻게 보여? 작은누나 키가 그렇게 크냐, 한참 멀었거든.”

  “이것 봐라, 이것 봐, 내 키가 우물 담벼락 넘어가잖아.”

  “아니거든, 한참 모자라거든.”

   자꾸만 약을 올렸다. 이 녀석에게 무언가 보여주리라. 3센티 굽에도 불구하고 더 커 보이게 하려고 까치발을 하고 우물 담벼락에 위험하게 기대섰다. 동그란 우물 벽에 고개를 밀어 넣는 것까지만 보여주려고 했다. 적어도 그렇게 하면 우물 담벼락보다는 내 키가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되니까. 하지만 순식간에 우물 바닥 깊은 곳까지 어두운 터널을 지나 떨어지고 말았다.

  ‘첨벙’,

   동생은 무섭고 놀라 큰 소리로 울고만 서 있었다. 태어나 그렇게 많은 물을 마셔본 적이 있었을까.

  “아이고 우짜꼬, 아이고 내 새끼.”

   옆에서 빨래하시다 날벼락을 맞은 엄마가 흐느끼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우물 밖 저 끝에서 들려왔다. 우물 바닥으로 떨어지며 나는 머리부터 처박힌 후, 한 바퀴 구르기를 했다. 다행히 한 바퀴를 돌아 유턴하며 머리가 우물물 위로 떠 올랐다. 물을 마시고 다시 바닥으로 짧은 발이 닿았다 멀어졌다 한다. 겁에 질려 물을 마시지 않으려고 어푸거리다가 버둥거리고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발에 닿는 것은 없었고 나는 깊고 차가운 우물 속에서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있었다. 7살의 나이에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허우적대다가 힘이 빠져갈 때쯤에 내 머리 옆에 철벅하는 소리가 났다. 허공을 가르던 내 손에 잡히는 뭉텅한 게 있었다. 우물 위에서 엄마가 던져준 두레박이었다.

  “두 손으로 꼭 잡아.”

   절박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힘이 있었던지 나는 두레박줄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엄마와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아저씨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우물 밖으로 들려 나왔다. 그제야 엄마는 딸을 건졌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곧 장난도 정도껏 해야지 하는 괘씸한 마음이 드셨는지 일곱 살 난 딸아이 속옷을 벗기고 큰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우셨다.

  “우짠다꼬 어이 우짠따꼬 우물에 빠지노, 이 녀석아. 엉엉.”

   엄마를 다시 만난 기쁨도 잠시, 우물 바닥으로 떨어질 때 벗겨진 내 빨간 새 구두가 생각이 나서 나도 함께 울었다.

  “엄마, 엉엉 내 구두, 내 빨간 구두도 건져 줘, ….”

   아끼느라 얼마 신지도 못한 내 구두가 우물 안에 덩그러니 빠져있는 생각을 하니 자꾸만 눈물이 났다.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또래 남자아이가 이런 내 모습을 보았을까 정신이 들고 나서야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우리 집에는 대대적인 수도공사가 시작되었다. 우물 벽은 없어졌고 시멘트를 발라버렸다. 볼록한 낮은 뚜껑만 덮인 우물 자국만 남게 되었다.  

   내 유년의 기억과 함께 우물은 사라졌다. 더는 꽃밭 옆, 우물가에서 제사를 준비하던 엄마의 분주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빨랫방망이 두드리시며 오 남매 옷을 빠시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가끔 눈물 훔치시며 세수하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은 이제는 내 가슴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우물 안에 주인을 잃은 내 빨간 구두는 어찌 되었을까.’

  주인을 잘못 만나 제 역할도 못 하고 우물에 고이 남겨진 내 어린 시절의 빨간 구두가 그립다.


  철없던 딸로 인해 삶의 한 공간을 잃어버리신 엄마도 한 번씩은 그 우물이 그리우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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