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TV에서 노래 경연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적도 없을 것이다.
노래와 춤은 그만큼 우리 생활에 활력과 위로를 준다. 거기에 경쟁이 더해지니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팬덤이 형성되면서 프로그램은 인기를 더해 간다.
힙합을 좋아하는 어린 세대들을 위해서는 고등 래퍼, 예비 아이돌들에게는 K팝 스타라는 프로그램이, 전국을 트로트의 열풍으로 몰고 간 미스터트롯과 미스트롯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프로그램과는 달리 한때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였지만 실패와 좌절을 맛본 이들을 위해 다시 한번 무대라는 것을 제공해 준 기회의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싱어게인’이다.
‘어게인’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 제목인지.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3호 가수, 71호 가수처럼 숫자로 부른다. 그야말로 무명(無名) 가수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노래를 부르기 전
"나는 _______한 가수이다."
라는 자신을 소개하는 한 문장을 띄운다. 한 라운드를 통과하면 계속 출전자격이 주어지지만 떨어지게 되면 자신의 번호를 떼고,
"나는 가수 *** 입니다."
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무대를 떠나게 된다.
이름 없던 가수들의 이름을 되찾아주는 제작자들의 의도가 시청자의 관심에 불을 지폈고 우리는 그들의 노래와 무대에 큰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그 번호 뒤에 숨겨진 가수들의 이름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그들의 노래와 삶에 주목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대중적이지 않지만 그저 헤비메탈이 좋아서 자신의 청춘을 바쳐 노래한 어느 무명가수가 마음에 와닿았다. 나이가 꽤 되어 보였으니,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숱하게 음악을 포기하고 싶은, 어쩌면 포기하라는 주위의 압력에 시달려 왔을 것이다.
초기에는 자신의 길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겠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달라졌을 터인데 노래하는 무명가수의 눈은 소년처럼 맑기 그지없었다. 프로그램의 회차가 늘어갈수록 그들의 음악 세계에 빠져들었고 고집스럽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걸어온 그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10대, 20대까지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꿈을 좇아 살아간다. 30대가 되면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되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가정이 생기면 문제는 또 달라진다. 내 이름보다는 가정을 지켜야 되는 책임감이 앞서는 인생의 한 고개를 맞게 된다. 자신의 번호를 달고 나온 무명가수들은 하고 싶은 것과 현실의 문제 사이에서 고민에 빠지고, 이제는 다른 일을 해볼까 하는 갈등을 겪어 봤다가, 그래도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을 것이다. 자기의 자리를 지켜온 것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지인의 아들이 잘 다니던 좋은 대학을 자퇴하고 다시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고 했다. 모임에서 그 이야길 하는 엄마는 거의 울상이었다. 마치 인생이 끝나버린 것 같이 이야길 했다.
잘 다니는 대학을 두고 '굳이 왜 다시'라는 생각이 들어 깊이 고민하고 얘기한 아들의 의견을 무시했다고 했다. 본인이 행복한 일은 이게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아들의 눈빛은 안 된다고 포기시키기에는 너무 진지해 보였고 반대에 부딪혀 결국은 집을 나갔다고 했다.
아이의 행복보다는 리스크가 없는 안전한 길을 걸어가게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남들이 알아주는 좋은 대학 가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성적에 연연하고 정작 고민해 주어야 할 아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부모와의 관계는 틀어졌지만 스스로의 인생에 고집을 피워준 아들이 고맙다고 지인은 얘기했다. 적어도 본인이 선택한 삶이고 다시 해 볼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으니 허투루 살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아무것도 안 하려는 마음, 못하게 만드는 상황이 문제인 거지 다시 하려는 모습은 언제나 박수받아 마땅하다. 무대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자신만의 색깔로 노래하는 무명가수들을 보면서 ‘그래, 남들이 알아주는 화려한 삶이 아닐지라도 내 이름과 색깔은 있어야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살 수 있어야지’ 가슴에 몽글몽글 나에게도 ‘어게인’이라는 말이 따뜻하게 와 닿는다.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은 편안함과 용기를 주며 참으로 위로가 된다.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모든 인생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