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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Jan 15. 2024

개구리와 두꺼비

사위 가족 선입견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두 살 터울 언니를 빼놓을 수가 없다.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아서 우리는 어릴 때 티격태격 많이도 싸웠다. 그 시절 이모들이 우리 집에 모이면 '나는 가수다' 판이 자주 벌어졌고 노래를 잘했던 언니는 주인공이었다. 이리저리 내빼다가 오백 원 지폐가 나오면 슬슬 시동이 걸렸었다. 우리들의 자존감은 그 시절 이모들의 잘한다 잘한다 소리에 다 키워진 것 같다.


진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언니는 음대 준비를 위해 재수를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둘 다 엄마 손이 필요한 나이였는데, 오빠들 뒷바라지하느라 딸들인 우리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고 엄마는 늘 바빴었다.

철이 들었었더라면 반장 같은 것을 안 했을 텐데, 무슨 욕심인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반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않은 일들을 맞이했다. 소풍을 가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선생님 소풍 도시락은 반장 엄마가 준비해 주는 게 관례였다. 내 도시락도 싸줄 사람이 없었는데, 선생님 도시락까지 싸 가야 한다니. 재수하던 언니가 김밥 재료를 싸서 정성껏 선생님 것 하나, 내 도시락 하나를 싸주었다. 그날 새벽 언니가 일어나 김밥 도시락을 싸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두 해 먼저 태어나 언니랍시고 동생의 담임선생님 도시락까지 그 나이에 챙겼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기특한 스무 살 처녀였다.


그런 언니는 성악을 전공했고 졸업하자마자 운명의 상대를 만나 결혼했다. 큰 딸이라 엄마의 서운함은 컸을 것이다. 언니 나이 만 23살. 학교 다닐 때는 잘생기고 멋진 오빠들이 줄을 섰었는데 나는 처음 예비 형부를 보았을 때, 이게 실화인가 했다. 아무리 보아도 언니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형부의 별명은 '두꺼비'라고 했다. 아마도 구강구조와 큰 두상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처음 상견례에서 형부를 만났는데 나도 모르게 큭 하고 웃는 실례를 범했다. 형부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당시 내 또래 친구들을 가르쳤으니 내가 진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았으면 내 국어 선생님이 될 뻔한 분이셨다.


자다가 눈을 떠서 가끔 옆에 자고 있는 남자를 보고 있으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큰 얼굴, 큰 눈, 큰 코, 그리고 큰 입이 훅하고 내 옆에서 느껴져서이다. 이십 대 마지막 봄에, 결혼하겠다고 남자 친구를 집에 데려갔었다. 예비 제부를 보러 온 언니는 내가 그랬듯, 내 남자 친구를 보자마자 큭 하고 웃는 실례를 범했다. 엄마가 내 결혼을 반대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전부 다 커서 싫다고 하셨다. 공부하다 말고 결혼한다고 했으니 누굴 데려갔어도 싫어하셨을 것이다. 후에 알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편의 별명은 눈이 커서 '개구리'라고 했다.

언니와 나는 운명처럼 비슷한 양서류 과의 남자들을 좋아했었나 보다.


양서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양서류는 물과 뭍 양쪽에서 서식하는 동물을 말한다. 이런 서식 습관 때문에 Amphibian은 수륙양용의 의미로도 쓰인다. (나무위키)


결혼하고 나니 언니와 나는 어릴 적의 앙숙 관계에서 이제 협업자가 되어 친정의 중요 인물들이 되었다. 형부와 남편도 동서지간으로 만나 같은 외모적인 친근감 때문인지 만나면 서로 재미있어한다. 정치 성향, 대화 수준, 축구마니아, 식성 등 비슷한 코드가 참 많다.

조카와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언젠가 수목원으로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아들이 소리쳤다.


'엄마, 이모부가 저기 있어요.'

두꺼비가 풀숲에 보였던 모양이다.

질세라 조카도 한마디 한다.

'이모, 저기 이숙이 있어요.'

개구리가 폴짝 뛰었나 보다.


엄마의 반대에도 우리는 결혼해서 아주 잘살고 있다. 그들은 양서류과의 남자들 답게 어디서건 놀라운 적응력을 보이며 때로 변덕스러운 우리 자매를 잘 구슬려주고, 잘 보듬어주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첫인상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닌가 보다. 개구리도 어느 날은 보면 잘생겨 보일 때가 있다. 이제는 우리 집에 막냇사위가 최고라고 엄마가 인정한다. 가끔은 아들들보다 더 살갑게 엄마에게 사위들이 하는 걸 보면 우리 집에 이 넉살 좋은 남자들이 장가 안 왔으면 어쩔 뻔했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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