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떠오르는 해인데 새해의 일출을 굳이 멀리까지 가서 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작년, 재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유명한 일출지를 찾은 방문객들의 이야기가 이슈가 되고 뉴스에서 심심찮게 이야기되었다. 그런 사람들을 막고자 해안에는 노란 통제선이 쳐지고 일부 유명 일출 지역은 출입이 봉쇄된 적도 있었다. 코로나도 잠잠해졌으니 올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새해 일출을 보고자 떠났으리라.
내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일출은 스무 살 시절 호주 울룰루에서이다. 호주 중앙사막 지역 울룰루. 이름에서 느껴지는 경쾌함과는 달리 호주 원주민의 성지를 뜻한다. 울룰루에 에어즈락은 오스트레일리아 중부지역 앨리스 스프링스에 있는 바위산이다. 울룰루는 해발고도가 867m이며, 바닥에서의 높이가 330m, 둘레가 8.8km이다. 남반구의 중앙에 있어 지구의 배꼽 또는 ‘에어즈락’이라고도 불린다. 사막이라는 것도 신비로운데 바위산이라고 하니 더욱 설레는 여행이었다. 친구들과 넉넉지 않은 호주머니 사정으로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짜고 공부하면서 바위산에서의 일출을 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호주의 원주민들은 애보리지니라고 불린다. 울룰루로 가는 길, 사막에서 실제로 그들을 보았다. 역사책에서 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처럼 큰 머리, 검은 구릿빛 피부, 그리고 구부정한 어깨를 지니고 있었다. 텁수룩한 머리는 찌는 더위에 쩔어 있었고 더위에 날아다니는 수많은 체체파리들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그런 파리를 피하기 위해 모기장 같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관광객을 보고서야 필수품을 챙기지 못한 것을 후회했었다. 신비감에 쌓여있던 일출 여행의 한 꺼풀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에어즈락 여행에서 만난 원주민들은 신비스러움보다는 버려진 노숙자 같았다. 백인들이 호주에 정착하면서 몇 푼 안 되는 보조금과 함께 원주민들을 살기 좋은 해안가에서 중부 사막으로 쫓아낸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백인 정복자들에게 땅을 빼앗긴 힘없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앨리스프링스로 가는 길 중에 간간히 그들이 불어대는 ‘디저리두’라는 긴 피리 소리만이 잃어버린 땅에 대한 서러움을 노래하는 듯하였다.
원주민들과 함께 우직하게 그 세월을 지켜왔을 큰 바위산.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울룰루 주변은 분주했다. 성지에서의 일출과 일몰을 보기 위해 캠핑카와 텐트가 여기저기 널리기 시작했다. 도시의 일출과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는 멜버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오후 늦게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도 아주 잠시 와인 한잔을 하며 지는 해를 볼 수 있었다. 태양이 지자, 태양빛의 위치에 따라 바위산은 조용히 자신의 몸의 색깔을 바꾸고 있었다. 신비로웠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으니 원주민들이 에어즈락을 신성시하는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주황빛에서 빨간빛으로 또 보랏빛으로 조금씩 변해가던 바위산이 금세 어둠에 묻혔다.
사막의 밤에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불빛하나 없는 캄캄한 세상. 야영장에서 바라본 바위산 위에 쏟아지던 별무더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끊임없는 질문들. 이십 대의 청년들이 나눌 수 있는 그런 고민들을 우리는 밤새워 이야기하다 일출에 대한 희망을 품고 늦게 잠이 들었다. 사막에서의 하루 밤 야영은 그렇게 원주민들의 구역에서 큰 바위산을 곁에 두고 깊어갔다.
다음 날, 일출을 보기 위해 뜨이지 않는 눈을 비비며 새벽녘에 일어나 바위산을 올랐다. 일정한 간격으로 바위에 박아놓은 쇠못을 밟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가파르진 않지만 발을 헛디디면 구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등산이 익숙지 않았던 내게는 힘든 코스였다.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박힌 쇠못의 모습이 왠지 상처가 난 듯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높진 않지만 발에 밟히는 바위의 촉감이 딱딱해서인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바위산 꼭대기에 다다르니 눈에 확 띄는 한글들. 흔적 남기기를 좋아하는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이름들이 보였다.
'부산에서 온 누구누구 그리고 하트', '우리 사랑 영원히',
그리고 다녀간 날짜를 기억시키기라도 하듯 희미한 숫자, '1990년 4월' 등등.
여행의 흔적은 남기고 싶었겠지만 원주민들이 신처럼 숭배하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한다면 내지 말아야 할 스크래치를 낸 셈이다. 숙소에서 가져온 작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각자가 편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새벽녘 어스름하던 사막 땅 저 끝 지평선에서 뜨거운 무언가 꿈틀거리고 오르기 시작하며 발그스름해지기 시작했다.
공부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막막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이 많았던 이십 대 초반. 사막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내 생활과의 막연한 동질감. 끝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 사막의 저 끝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다. 해는 바다 건너 수평선으로만 둥실 떠오르는 줄 알았는데 끝없이 넓은 지평선 위로 떠오르던 구형체는 이전의 '해'와는 달랐다. 좀 더 묵직했고 강렬했다.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겼다.
태양을 보며 소원을 빈다기보다 나 자신에게 어떻게 살아야지 하고 약속을 하는 언약식 같은 시간이었다. 이십 대의 우리들은 일출을 보며 무엇을 배우고 싶었던 것일까? 모두들 각자의 생각 속에서 한참을 말없이 사막 그 너머를 보고 있었다. 해돋이를 보며 자연의 울룰루처럼 그 자리를 지키며 우직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가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 떠오르는 해에게서, 뒷산 산책길에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소나무에게서 삶의 자세를 배우는 게 아닐까.
올해도 어김없이 일출을 보기 위해 떠났던 많은 이들도 가슴에 작은 소망 하나씩 품고, 어쩌며 스스로에게 다짐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