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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이트커피 Jan 22. 2024

화이트커피's Road,

고향 가는 길에 진교를 지날 때였습니다.

'정동원길'이라는 팻말이 보였습니다. 아, 미스터트롯으로 훅 떠버린 동원이를 기념하려고 만든 길이었어요. 진교 백련마을에서 동원이 본가까지 3.3 km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따라 만들었다고 해요.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평범한 길이 정동원 길이 되면서 새롭게 보입니다. 왠지 그 길을 따라가면 동원이 본가까지 이어져 있을 테고 노래 잘하는 동원 군을 운이 좋으면 볼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마저 생기네요.

키가 큰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쭉쭉 뻗어 지나치며 보는데도 시원스럽습니다. 하늘로 우둠지가 곧게 뻗어 있는 것이 내 마음조차 하늘에 가 닿는 것 같았어요. 어쩌면 동원이는 이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노래를 불렀으려나 상상도 해봅니다.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내 마음에도 남아 있는 '길'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몇 년 정도 지낼 때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들 녀석은 모든 것이 호기심 천국이었습니다. 아파트 뒷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오솔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잔디가 펼쳐진 나무가 많은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놀이터에는 그네며 시소며 아들이 좋아할 만한 천국 같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죠. 가끔 저녁 식사를 하고 그 오솔길을 따라 산책하면 반딧불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 오솔길에서 내내 아장아장 나름 줄달음치던 아기가 생각납니다. 이제는 내 키도 가 닿지 않을 만큼 청년이 되었지만 그 오솔길에서 총총거리며 기저귀를 차고 달려가던 작은 아이를 언제까지나 기억할 것 같습니다.  

담양으로 가족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도 메타세쿼이아 길이 참 예쁘게 정돈되어 있었죠. 연인들이 탄다는 2인용 자전거를 빌려 아이들을 싣고 쌩쌩 달려가던 삼십 대의 남편 뒷모습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이지만 그때만 해도 아빠의 양팔에 한 녀석씩 매달려도 너끈했으니까요. 그 추억으로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던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노래 중에 이문세 님의 '옛사랑'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거야

그대 생각 생각이 나면

생각 난대로 내버려두듯이


흰 눈 내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내가 좋아하던 이문세 님도 옛사랑 생각이 나면 찾아가는 길이 있었네요. 

그 길에는 아마 연인과 함께한 추억이 오롯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요즘은 카페가 예쁜 길들도 참 많이 생겼죠. 그 거리마다 연인들의 이야기들이 묻어있을 것 같습니다.


유학 중이었을 때 남편을 만났는데, 아마 그때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독신으로 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결혼하면서 낯설기만 한 도시, 대전에서 남편을 따라 잠시 살게 되었습니다. 서울같이 큰 도시는 아니지만 차분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외로웠을까요.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낯선 사람들뿐이었으니 외국이나 다름없는 도시였었죠.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직장도 다른 도시였기에 친구를 사귈 시간도, 또 어울릴 공동체도 없었던 시간이었어요.

이런 내가 안쓰러웠던지 남편은 주말이면 드라이브를 가주었습니다.

예전 엑스포공원에서 왼쪽으로 꺾어 대덕연구단지로 가다 보면 플라타너스가 양옆으로 드리운 예쁜 길이 나옵니다.


'아 너무 예쁘네. 저기 플라타너스 봐봐. 진짜 잎사귀 푸르고 크다 그지.'


이과형 남편은 어쩌면 그 잎사귀를 보며 식물의 광합성과 이 세상에서 잎이 제일 큰 나무는 뭘까 이런 생각을 했겠죠. 하지만 모처럼의 외출에 좋아 물개손뼉 치는 신혼의 아내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겠죠.


'그렇게 좋아? 그러면 이제부터 이 길을 화이트커피's Road라고 부르자.' 

하며 제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그렇게 우리는 친정이나 시댁을 가기 위해 북대전 톨게이트로 가다가, 화이트커피's Road를 지나칩니다.


'오빠, 저기 화이트커피's Road다. 가을이라 낙엽 진 플라타너스 이파리 봐봐 엄청나다. 저기 밟으면 어떤 소리가 날까?'


'저걸 밟긴 왜 밟아, 마른 낙엽쪼가리들이 바짓가랑이에 먼지로 다 묻는다. 양말에도 다 들러붙어. 그리고 저거 다 치우려면 청소부아저씨는 얼마나 힘들까 쯧쯧...'


이런 것을 보고 동상이몽이라고 하는 거죠. 그 길에 내 이름을 붙여준 거기까지 딱 감사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서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라고 하기엔 우린 너무 다른 사람들이니까요. 단지 가끔 서운할 뿐입니다.


일상에 빠져 잘 지내다가도 문득 대전에 플라타너스가 가득한 추억의 화이트커피's Road가 생각납니다. 한 여름이면 그 푸르름을 자랑하며 얼마나 당당하게 여름에 맞서 있을까, 올여름도 시원한 그늘숲을 만들었겠구나 싶기도 하고, 가을이면 또 엄청난 낙엽으로 쌓여있으려나 하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화이트커피's Road라도 다녀올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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