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하면서 두 개의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여름의 끝에 문을 두드렸고, 가을에는 비록 글로 만난 인연이지만, 많은 작가님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겨울, 제가 사랑을 하네요.
브런치를 하면서 많은 작가님 글들을 접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그 글에 묻어난 작가님의 인성에 또 반하고, 논리에 반하고, 내면세계를 흠모하게 되더군요. 고등학생 작가님이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깊은 사고, 어린 싱글맘 작가님이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와 용기는 제가 더욱 겸손하게 배우고 세상을 살아가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암 투병 중인 작가님의 글을 꾸준히 읽으면서, 병마와 싸우면서도 놓치지 않던 가족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산골에 사는 작가님의 글에서는 외갓집에 가면 났던 고소한 냄새까지 글에서 맡을 정도였습니다.이렇게 글을 쓰고 또 다른 작가님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야를 넓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반쪽도 유학 중에 만나 자주 볼 수 없었으니 글로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남편은 감성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롱디였기에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커플이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떨어져 있으니 글로 연애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연애할 당시만큼은 신기하게도 많은 편지를 저에게 써주었습니다. 글로 연애할 때의 장점은 감정이 정돈된 상태로 서술해 나가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이 아주 차분하고 정돈된 사람이라고 저 스스로 어떤 이상형을 생각하며 만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착각을 한 거죠. 계속 편지를 주고받다 보니 싸울 일도 없었죠. 싸울 상황이라는 게 없으니까요. 우리를 이어준 것은 분명 편지글이었습니다.
그러다 두둥~. 이해되시죠, 상상도 되시죠. 결혼하고 처참하게 깨어진 서로의 이미지를요. 남편은 그렇게 정돈되고 차분한 이가 아니었답니다. 그렇게 실생활에서 깨어지고 보듬고 생채기 내면서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알아가게 된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남편은 저에게 편지를 쓰지 않습니다. 이십삼 년째 똑같은 문장의 메시지들만 해마다 조금 변형하여 카드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맙다, 앞으로도 행복하자.'
스토리를 원하는 저에게는 참으로 부족한 한 문장이지만 그의 진심은 이 한 줄에 모두 표현한 줄로 압니다.
브런치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글이 책으로 출판되면 꼭 사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권민정 작가님이 출판하신 '얼굴을 마주 보고'라는 책을 주문했었는데 오늘에야 도착했습니다.
예전에 남편과 연애할 때 받은 편지처럼 오늘 권민정 작가님의 책이 반갑기만 합니다. 핸드폰 너머로, 컴퓨터 스크린으로 매번 구독해서 보는 작가님의 글을 책으로 마주하니 반가움이 더했습니다. 첫 표지를 넘기는데 작가님의 얼굴을 마주 봅니다. 그동안 계속 작가님의 글을 읽어와서인지 낯설지가 않고 반갑기까지 합니다.
커피를 한잔 챙겨 들고 혼자의 방으로 들어가 조심조심 연애편지 읽듯 작가님 책을 읽어나갑니다.
언젠가 서울숲을 산책하며 저도 만난 적이 있는 맥문동에 관해 적은 글, '그늘에서 피는 꽃'이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늘에서 자라는 맥문동이 음지에서도 예쁜 연보라 꽃을 피워 냈듯, 어려운 형편에서 자란 친구들이 잘 자라 꽃길을 걷게 되길 바라는 작가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이러한 따스한 마음이 참 좋습니다. 글을 읽으며 내내 행복했습니다.
식물을 잘 모르는 저도 산책하면서 큰 은행나무 아래 무더기로 연보라 무더기가 있길래 라벤더꽃인 줄 알았거든요. 알고 보니 맥문동이었습니다. 이 맥문동은 꽃도 무리 지어 있을 때 예쁜데 그 뿌리 끝도 유용하게 쓰인다고 하네요. 뿌리를 파면 마치 땅콩처럼 생긴 것들이 나옵니다. 이것을 말려 우리 조상들은 약으로 썼다고 해요. 가래를 삭이거나, 기침 완화, 기관지염 같은데 좋다고 합니다. 성장환경은 이렇지만 맥문동은 뿌리까지 쓰임 받으니 아마 작가님이 만난 친구들도 잘 자라 그렇게 사회에 쓰임 받겠죠.
이번 한 주는 개인적인 일로 힘든 한 주였는데 권민정 작가님의 따스한 글로 이렇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브런치에서 만난 작가님들의 책을 활자로 만나는 것은 참으로 감동입니다. 예전에는 책을 많이 빌려봤는데, 별다방에서 친구와 만나 커피 마시는 값이면 책 사서 볼 수 있는데 책 한 권 사는 것에 너무 인색했다 싶습니다. 이젠 우리 작가님들 책 꼭 사서 보려고 합니다. 커피는 마시면 끝인데 책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도 남고, 또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도 있으니까요.
얼마 전에는 브런치에서 인연이 된 어떤 작가님이 이메일을 제게 보내 주셨어요. 작가님이 쓰신 글에 제가 좋아요 눌러 주고 구독을 해서 지분이 있다며 책이 출판되면 보내주시겠다고 하시네요. 마음에 와 닿아 좋아요로 표했던 것이 다인데 얼마나 감사한지요.
글쓰기의 기쁨은 참으로 많지만 '읽고 쓰고' 라는 작업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접하지 못한 세상을 보고, 그들의 순수한 용기를 배우고, 냉철한 지성을 공부하며, 무엇보다도 제 마음에 몽글몽글 사랑을 다시 느끼게 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소한, 대한도 끝나고 이제 곧 입춘이라고 합니다. 겨울이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있어요. 이렇게 또 한 계절이 멀어집니다. 화이트커피의 브런치를 찾아주시는 우리 작가님들, 그리고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이 겨울 속에서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