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인 게 틀림없어. 하지만 낭만적인 바보군

[독서일기]

by Yeslobster

"그녀는 치과 의사야. 나는 여기가 아프다, 저기 땜질한 게 불편하다,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줄곧 그녀를 만나러 갔어. 당연한 거지만 결국은 에밀리가 눈치를 챘어. 에밀리가 이렇게 말하더군. '당신이 그렇게 많은 치실을 사용한 적은 결코 없었어!'"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잖아. 치아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자네가 그 치과 의사를 만나러 갈 이유가 없어지는 거 아냐?"

"말이 되고 안 되고 가 뭐가 중요해? 나는 그저 그 여자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는 거야!"

"이것 봐 찰리. 자네는 그 여자와 데이트도 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뭐가 문제야?"

"문제는 내가 그렇게도 누군가를 원했다는 거야. 이 다른 나를, 내 안에 갇혀 있는 그 사람을 끌어내 줄 누군가를 말이야......"

(...)

이봐요, 스티브. 내 말 잘 들어요. 난 당신 아내가 돌아오기를 바라요. 정말로 그러면 좋겠어요.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그렇다 해도 당신에게는 균형감이 생길 거예요. 당신 아내는 멋진 사람이겠지요. 하지만 삶이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크답니다.

(...)

"그럼 빌리 포겔은? 지독히 못생겼지만 잘하고 있잖아."

"빌리가 못 생긴 거야 사실이지. 하지만 빌리는 섹시한 '악당형 추남'이잖아. 반면 자네는 말이야. 스티브, 자네는...... 그러니까 따분한 실패형 추남이야. 못생긴 종류가 다르단 말이지."

(...)

하늘은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테라스 담 너머로 이웃집 뒤뜰과 수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창문들이 보였다. 많은 창문들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멀리 있는 창문들은 마치 별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했다. 그 테라스는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감출 수 없는 낭만이 깃들어 있었다. 바쁜 도시의 삶에서 어느 따뜻한 날 저녁에 사랑하는 두 사람이 그곳에 나와 병에 담긴 음료를 마시면서 서로의 품에 안겨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

"저 친구 좀 봐. 먹고 살 게 없는 음악도야. 그런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광장에서 커피를 마시는 데 돈을 낭비하고 있잖아.

"바보인 게 틀림없어. 하지만 낭만적인 바보군. 오후 내내 이 광장에 앉아 있을 수만 있다면 굶어도 좋다는 거지."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집 '녹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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