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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를 만나라

영화 '신세계'를 봤는가.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박성웅의 "오늘 죽기 딱 좋은 날씨네"였는데, 그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뭘까? 주인공 역할을 맡은 자성(이정재)은 경찰의 신분, 즉 선을 떠나 조직의 보스, 즉 악을 선택한다. 선과 악을 떠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낼 때 새로운 세상, 즉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그렇다고 악하게 살라는 말은 아니다.

      

독자 여러분이 신세계란 영화를 안 봤다면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충분히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배움도 얻을 수 없다. 두통, 치통, 생리통! 하면 뭐가 떠 오르는가? 게보린? 남성들이 여성의 생리통, 출산통을 경험할 수 있을까? 경험하지 않았는데 어찌 그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맨날 하던 행동만 계속하다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신세계를 만나지 못한다. 김우중 회장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명언이 떠 오른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는 정말 많은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신세계가 뭔가? 내가 이전까지 몰랐던 세상을 처음으로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70년대 말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당시 외국과의 주요 통신 수단은 국제우편이나 국제전화였다. 그것보다 간편한 게 텔렉스였는데, 외국 기업들이나 해외 지점과 교신을 하면서 텔렉스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을 들어야 했다. 그 흔한 팩스도 없었다. 노트북, 데스크톱은 물론 없었고 수동 타자기를 이용해 글을 썼다. 이후 전동 타자기가 나왔다. 그것도 80명이 일하는 부서에 한 대밖에 없었다. 여비서(내 비서가 아니라 부장님 비서였다)가 주로 이용했는데 내가 그걸 쓰려면 점심시간에 쓰거나 비서한테 아양을 떨어 짧은 시간 이용할 수 있었다. 인쇄기는 푸른색 글자가 인쇄되는 등사기를 썼다.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소리인가 싶을 거다. 

     

지금은 어떤가. 이메일로 소통을 하고 클라우드에 공유를 해 공동 작업을 하고 수천 명이 동시에 화상 회의를 할 수 있다. 지금 이 글은 구글 문서의 녹음 기능을 이용해 쓰고 있다.  조만간 자율주행차를 탈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 40여 년 동안 나는 참 많은 신세계를 경험했다.     


2009년 아들이 내게 스마트폰을 선물했다. 나는 그걸 들고  매주 수요일 새벽 강남역 스마트 워크 그룹에 나가기 시작했다. 6개월간 꾸준히 출석했다. 그곳은 정말 신세계였다. 2, 30대의 젊은이들이 펄펄 날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던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이후로 꾸준히 스마트폰에 관한 공부를 계속해 왔다. 지금은 나 혼자 스마트폰 하나로 글을 쓰고 사진과 영상을 찍고 편집해 유튜브에 올린다. 스마트폰은 일하는 사람에게 주는 신의 선물, 신세계다.     


나는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직장에서도 승승장구했고, 높은 연봉도 받아봤고, 베스트셀러 책도 출간했고, 방송에도 나가고 했지만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내 몸이었다. 20년 동안 몸무게가 75~80kg를 왔다 갔다 하는 거였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데, 만날 똑같은 지적을 받았다. “복부비만이니까 뱃살 빼세요”. 근데 이게 마음대로 안 됐다. 남들은 “뱃살은 인격이야”, “보기 좋네”라고 했지만 나는 불만이었다. 

     

그래서 환갑을 넘기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내 인생에 승부수를 한 번 띄우자.’ 그래서 시작한 게 '몸짱 프로젝트'였다. 유능한 젊은 트레이너와 함께 2016. 2. 12부터 7. 11까지 딱 5개월간 진행했다. 5개월 동안 정말 죽기 살기로 운동했다. 매주 3회 PT를 받았고 혼자 운동하는 날도 주 2~3회, 그러니까 결국 주 5~6회 운동한 셈이다.

      

食7運3이라고 식단 관리부터 시작했다.

아침에는 샐러드, 고구마, 연어구이

점심에는 샐러드, 고구마, 닭가슴살 

저녁에는 샐러드, 고구마, 쇠고기 구이였다.

5개월 동안 쌀밥 먹은 횟수는 열 끼도 채 안 된다. 당연히 술은 입에도 안 댔다.


어느 정도로 독하게 했냐면 2월부터 6월까지 땀복을 입고 뛰었다. 운동을 시작하고 3개월쯤 됐을까? 내가 진행하는 행사에 지인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끝나고 뒤풀이를 하게 됐다. 저녁 10시에 내가 우걱우걱 안주를 먹고 있었다. 베이컨 숙주볶음이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한 번, 두 번, 세 번째 안주를 집어 먹으면서 나 스스로에게 '너 지금 뭐 하냐? 미친 거 아니냐? 그렇게 고생해서 몸 만들어 놓고 그걸 먹고 있어? 너 지금 그거 삼키면 계속 먹게 돼. 그러면 몸짱이고 뭐고 다 끝이야. 당장 뱉어'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라 그 자리에서 씹고 있던 안주를 뱉어버렸다. 그 이후 아무것도 안 먹었다. 만약 그때 내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고 계속 먹었더라면 몸짱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을 거다.

     

5개월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체중은 78kg에서 69 kg로

체지방은 24.4%에서 14.4%로

허리는 35인치에서 32인치로 줄었다.     


프로젝트 내내 체중 감량은 목표에도 없었다. 그냥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운동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 몸에서 쇠고기 600g짜리 15개가 빠져나간 거다. 허리가 3인치가 주니 그전에 입던 옷은 다 버렸고, 옷을 다 새로 사야 했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내가   오래 운동한 사람이 아니라서 울퉁불퉁한 몸짱은 아니지만 옷을 입으면 보기 좋을 정도의 예쁜 몸으로 변했다.  

   

내가 이걸 했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걸 했냐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과연 불가능한 걸까? 그건 불가능한 게 아니라 힘든 일일 뿐이다.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과 ‘힘든 일’을 구분할 줄 모른다. 불가능한 일은 누가 하던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이고, 힘든 일은 힘들어서 그렇지 누구나 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Impossible이 아니라  I'm possible이다.   

   

사실 몸짱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수십 년 동안 내 몸이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난 안 되는 몸인 줄 알았다. 몸짱은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해보니까 되더라. 이래서 또 하나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책 쓰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첫 책을 쓸 때의 일이다. 한창 바쁠 때인 직장 생활할 때부터 핵을 쓰기로 마음먹고 틈틈이 글을 썼다. 창업 이후에도 계속 썼는데 어느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래도 책 쓰기는 여전히 제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2011년 어느 날 코엑스에서 북포럼 작가들과 독자들의 만남이 있었다. 앞자리에는 50여 명의 작가들이, 뒷자리에는 400여 명의 독자들이 앉아 있었다. 내 자리는 물론 독자석이었다. 작가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니 새파란 20대도 보인다. 순간 내 안의 분노가 일었다. ‘저렇게 어린 친구들도 책을 쓰고 작가석에 앉아 있는데, 나는 뭔가? 쟤들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보였다. 이어서 든 생각. ‘내년에는 내가 반드시 저 자리에 앉아야지’ 첫 책 <이럴 거면 나랑 왜 결혼했어?>는 이렇게 탄생했다. 2012. 5월의 일이다.   

  

10년 동안 책을 쓰고 싶었지만 정작 집중해서 책을 쓴 기간은 5개월이었다. 원동력이 뭐였을까. 어떻게 10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책 쓰기가 5개월 만에 끝났을까. 그것은 ‘분노’였다. 분노하고 나니 뭘 해야 할지 분명해졌다. 그래야 변화가 있다. 나는 이걸 ‘긍정적 분노’라고 부른다.  출간 작가가 된다는 건 또 하나의 신세계다.

   

신세계는 머리로 안다고 경험하는 게 아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알고 몸으로 기억하는 건 다르다. 운동해야 하는 거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 참맛을 모르면 절대로 운동 안 하게 된다. 몸으로 직접 부딪치고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게 신세계다. 운동의 묘미를 모를 때는 참 귀찮고 하기 싫은 운동이지만 그 맛을 알고 나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프로젝트 끝난 지 4년이 넘었지만 나는 지금도 운동을 생활화하고 있다. 


당신은 어떤 신세계를 경험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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