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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없으면 히스토리도 없다

No story, No history

     

인류 역사를 보라. 역사는 위기 극복의 과정이다. 인류 역사는 그런 위기를 이겨낸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모아놓은 거다. 역사(History)는 살아남은 자들의 스토리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역사는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자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끝까지 버티는 자가 이기는 자다. 이외수 선생도 '존버'(존나게 버틴다)하라고 했잖은가.    

 

만약 인류가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위기’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대신 ‘위험’, ‘실패’, ‘몰락’ 같은 단어만 존재했을 거다. 힘들지만 “이 또한 끝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끈기 있게 이겨내자. 그냥 버티는 게 아니라 버티면서 스토리를 만들어라.      


어느 교수의 고백이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껍데기였다. 남이 써놓은 책 읽고 앵무새처럼 전달만 하고 살았다. 정작 내 스토리가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교수의 고백이 이럴진대 하물며 우리 같은 범인들이야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그렇다. 자기 스토리가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 살아도 산 게 아니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 이렇게 죽기엔 좀 억울하지 않나?     

누군가 그랬다 ‘전문가’는 ‘문외한’이라고. 자기 전공 분야 밖에는 아는 게 없다고. 문외한(門外漢)의 원래 의미는 ‘어떤 일에 전문적(專門的) 지식(知識)이나 조예(造詣)가 없는 사람’을 말하지만 위에 말한 사람은 ‘자신의 전공분야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을 지칭한 것이다. 전문 지식과 인생 스토리와는 다르다. 전문지식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흑역사도 역사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이야말로 진솔한 스토리고 진정한 히스토리다. 고난은  나의 성장을 이끌고 그 체험이 다른 사람들이 성장하도록 돕는다. 송수용 작가는 말한다 ‘내 상처의 크기가 내 사명의 크기다’라고. 그렇다. 상처가 큰만큼 나는 더 단단해진다. 물렁물렁하고 이도 저도 아닌 내가 아니라  산전, 수전, 공중전, 지하전, 화학전까지 다 겪은 내가 아닌가.     

 

내가 아무리 많은 스토리가 있다 해도 그 스토리를 기록하지 않으면 히스토리가 되지 않는다. 스토리는 글로 쓰여야만 역사가 된다. 머릿속에만 있으면 과거의 추억일 뿐이다. 그것이 역사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려면 글로 쓰여야 한다.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가 창조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주의 역사관으로 유명한 미국 역사가 칼 베커(Carl Becker, 1876~1933)의 말이다.     

“역사란 역사가의 경험이다. 그것은 역사가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역사는 쓰는 것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영국 역사가 마이클 오크쇼트(Michael Oakeshott, 1901~1990)의 말이다.     


그렇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쓰이지만 내 역사는 나만 쓸 수 있다. 내가 기록하지 않으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추억일 뿐이며 꼰대의 푸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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