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일생 동안 살면서 100 개의 경험을 한다면 나는 몇 개쯤 했을까. 아마 내 나이만큼 했겠지. 10대에는 10대의 생각이 있고, 20대는 20대에 걸맞은 생각을 할 것이고, 다른 연령대도 각각 비슷할 것이다.
10대는 무슨 생각을 주로 할까. 아마도 공부 생각일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예상 문제집을 보는 사람들은 주로 중고등학생들이다. 성인들도 그런 경우가 있겠지만 보기 쉽지 않다. 20대는 이성교제가 주 관심사다. 성호르몬이 가장 왕성한 나이라 이성만 보면 껄떡(?) 거릴 나이다. 30대는 취업과 결혼, 40대는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할 나이다. 50대는 등산, 낚시, 골프 등 취미 활동에 빠지는 나이다. 60대의 주 관심사는 뭘까. 자식이나 손주 얘기다. 이 나이쯤 되면 대부분 손주가 태어나 자신의 일에서 은퇴하고 손주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도 이 분야다. 오죽하면 손주 자랑하려는 사람에게 미리 돈을 내고 하라는 우스갯말도 있을까. 70대는 단연코 건강이다. 이 나이 때 사람들은 만나면 어디가 아프고 무슨 약을 먹고 어느 병원을 다니는지가 대화의 주제다.
내가 지금까지 짧지 않은 인생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들을 정리해 보았더니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기쁘고 즐거운 경험도 있고, 슬프고 힘든 경험도 있었다. 역시 첫 경험이 가장 강렬했고 기억에도 많이 남았다.
1. 엄마 뱃속을 나와 세상을 처음 경험할 때의 어리둥절함 (사실은 기억 못 함) 2. 엄마 젖을 먹을 때의 행복감 3.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의 포근함 4. 처음 말을 하고, 몸을 뒤집거나 기기 시작했을 때 들은 부모의 탄성 5.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울 때의 두려움 6. 수영장에서 처음으로 물에 떠오를 때의 기쁨 7. 초등학교 입학식 때의 두려움 8. 처음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의 가슴 쿵쾅거림 9. 입영 영장을 받고 훈련소 연병장에 도착했을 때의 두려움 10. 첫 키스의 달콤함 11. 첫 섹스의 황홀경 12.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의 떨림 13.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경이로움 14. 첫 직장에 출근할 때의 뿌듯함 15.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했을 때의 감격 16. 내 이름으로 된 운전면허증을 처음 받았을 때 17. 내 이름으로 된 여권을 처음 받았을 때 18. 첫 해외여행에서 내린 외국 공항의 모습 19. 파리 에펠탑을 처음 보았을 때의 놀라움 20.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처음 보았을 때의 흥분 21. 스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보았을 때의 경탄과 분노(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건축물이 없나 해서) 22.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았을 때의 경외감 23. 그랜드 캐니언의 협곡을 보았을 때의 감탄 24. 첫 차를 장만했을 때의 뿌듯함 25. 첫 월급을 탔을 때의 대견함 26. 승진을 했을 때의 자랑스러움 27. 기업체에서 임원 승진 발령을 받았을 때의 기쁨 (군대에서 별을 단 느낌과 비슷하다고 함) 28. 자녀의 결혼식을 처음 개최할 때의 뿌듯함 (진짜 어른된 기분) 29. 처음으로 노안을 경험할 때의 충격 30. 첫 책을 출간했을 때의 기쁨 (나는 책을 두 권 출간한 작가다) 31. 손주가 태어나는 기쁨 (자식과는 또 다른 기쁨이다) 32. 손주의 재롱이 나날이 늘어나는 기쁨 33. 손주가 처음으로 할아버지(엄밀하게 말하면 ‘하부지’였다)라고 불렀을 때의 기쁨 34. 부모 중 한 분이 처음 돌아가실 때의 슬픔 35. 환갑이 되었을 때의 상실감 36. 5개월의 지옥 훈련을 통해 78kg의 복부비만형 몸매가 69kg의 근육질 몸짱으로 변했을 때의 뿌듯함 37. 내 손으로 처음 된장찌개를 끓였을 때 (나는 요리를 정말 못 한다)
38. IMF로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 경영을 맡았을 때의 두려움
39. 그 회사를 8년만에 기사회생시켰을 때의 뿌듯함
40. 그 회사를 오너가 매각했을 때의 분노 . . .
* 여러분은 어떤 추억이 있으신가요? 여기에 없는 당신만의 추억을 댓글로 적어주세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다 때가 있다. 때가 되면 때에 맞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때를 놓치면 경험하지 못한다. 10대는 공부를 해야 하고 20대는 연애를 하며 30대는 취업과 결혼을 하고 40대는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성인이 되어 공부할 수도 있지만 그때는 이미 늦다. 결혼과 출산도 적당한 때가 돼서 해야 한다. 돈도 젊어서 벌어야 한다. 나이 들어서는 있는 재산 안 까먹고 잘 지키는 게 버는 거다. 50대 이후에는 건강관리에 집중해야 100세 시대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다.
나는 여섯 살 된 손자가 있다. 손자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참 희한한 경험을 했다. 주말에 놀러 온 손자의 고사리 손을 잡고 놀이터를 나갈 때의 기쁨, 솜털처럼 보드라운 살결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아이 손이 아프지 않을 만큼 살짝 힘도 줘보고 손가락으로 아이의 손바닥을 간지럽힐 때의 촉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손자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진짜 사람이 되었음을 느꼈다. 진정한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말한다 “손자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제대로 산 것이 아니다”라고. 그만큼 경이롭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이다. 비혼주의자들이나 손자를 아직 갖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이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한 유명 작가는 손녀가 태어난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천사가 왔다!”라고.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어쩌다 보니 손자 자랑이 돼 버렸네. "자, 여기 있소, 만원!"
손자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이 경이로움을 모르고 세상 떠났을 거다. 100개의 경험! 그 경험을 다 못하고 죽으면 얼마나 후회될까. 다 경험해보고 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