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동물 복지 실현을 준수하였음을 보증합니다.

RDS 인증 패딩의 실상

by 여유

12월의 어느 날, 롱패딩을 사려고 백화점에 갔다. 원래는 계속 학교 돕바를 입고 다녔는데, 학교 마크가 있어서 여기저기 아무 데나 입고 다니기 불편했고 충전재가 두껍지 않은 패딩이라 작년부터 하나 새로 사자고 벼르고 별렀다. 그러다가 겨울이 가버렸는데 올해는 살을 에는 극한의 추위에 더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어서 사러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백화점에 들어서자마자 괜찮아 보이는 롱패딩이 마네킹에 입혀져 있었다. 그 브랜드가 있는 층으로 올라가니 어렵지 않게 진열해놓은 것을 찾았다. 그런데 역시나 구스다운이었다. 상품태그에는 프리미엄 구스다운인 것을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었다. 그 뒤의 택에는 RDS 인증 마크와 함께 "본 제품에 사용된 DOWN은 생산 과정의 안전성과 동물 학대 여부 및 동물 복지 실현을 준수하였음을 보증합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어찌 됐건 털을 뽑아내는 건데 동물 ‘복지’라니. 복지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행복한 삶’이라고 나온다. 정말 동물들이 행복하게 잘 살다가 우리를 추위로부터 감싸주기 위해 털을 내놓은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믿고 그냥 사면 얼마나 편할까.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쉽사리 구입할 수가 없었다. 다른 브랜드 매장들도 둘러봤지만 롱패딩은 죄다 텍을 들춰보면 RDS 인증을 받았다며 ‘그러니까 사도 돼’라며 속삭였다. RDS 인증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RDS (Responsible Down Standard)
깃털 채취를 목적으로 동물에게 가학 행위를 하지 않으며, 식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육·도축되는 오리와 거위의 부산물인 털을 버리지 않고 이를 재활용해 세척, 분류, 가공 과정을 거쳐 충전재에 적합한 깃털을 생산한다. 농장, 도축·수집장, 세척·가공 공장, 다음 공급자, 봉제 공장, 물류 창고, 최종 판매처까지 모든 단계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인증을 완료해야 최종 완제품에 RDS로고를 사용할 수 있다.



RDS 인증은 농장부터 다운 의류 생산 공장까지 각각 RDS 인증을 받아야 하고 각각의 인증처가 기준 충족시켜야 한다. 이렇게 보면 RDS 인증이 다운이 윤리적인지 굉장히 까다롭게 잘 판가름해 줄 것 같다. 네이버에 검색해 봐도 RDS가 과연 윤리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담은 글은 찾을 수 없고 이제 ‘착한 패딩’인 RDS 인증 패딩을 사자고 말한다. 정말 괜찮은 걸까?



RDS 인증 거위 털의 실상

RDS 인증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는 그 인증 기준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들이 잘 지켜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죽임을 당하는데 동물복지라는 이름으로 실제를 눈가림한다는 것이다.


위 사진은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가 2022월 11월 22일 공개한 사진이다. PETA는 RDS 인증 다운 생산 업체인 프라우덴에 납품하는 베트남의 오리 농장 도축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가학 행위를 폭로했다. 게시한 영상은 끔찍해서 두 눈을 온전히 뜨고 보기 어려운 정도였다. 도축업자가 전기충격에도 완전히 기절하지 않은 오리의 목을 칼로 찔렀다. 오리들은 목이 찔린 후에도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흘리며 1분 이상 살아 움직였다고 한다. RDS 인증 기준대로라면 전기 충격으로 기절시킨 뒤에 도축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인도적인’ 방식으로도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PETA는 문제의 농장과 도축시설에서 생산된 깃털이 프라우덴의 베트남 공장 ‘비나 프라우덴’에 공급됐고 일부가 최종적으로 ‘RDS 인증(Responsible Down Standard certification)’을 받아 판매됐다고 주장했다.


프라우덴은 다운 가공 공장만 보유하고 있고 앞 단계인 RDS 농장, 도축장은 하청에 맡기고 있다. 이 농장도 RDS 인증을 받았지만 제대로 감시하지 않음으로 동물 학대가 버젓이 발생한 것이다. 프라우덴에서 생산된 다운은 갭, H&M, 유니클로, 라코스테, 게스의 다운 제품에 사용된다. H&M 대변인은 “당사는 문제의 공급업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라며, “동물 복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며 제품 생산 과정에서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공급망과 섬유 산업에서 동물 복지를 개선하는 방법에 대해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다. 또한, 동물의 복지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동물성 소재 조달 방식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니클로 대변인은 “동물 복지의 다섯 가지 자유인 굶주림과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과 부상 또는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윤리적인 축산 관행에 따라 동물이 대우받고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신념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이들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고 동물 복지의 5가지 자유를 보장하도록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다운 생산 가치사슬의 첫 번째인 농장과 도축장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자신들의 신념만을 내세우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운 제품에서의 동물 가학 행위 문제가 제기된 것은 새로운 게 아니다. 2012년에 중국의 한 오리농장에서 다운 채취를 위해 산 채로 가슴털을 뽑는 잔인한 채취 과정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live-plucking 다운은 사람들이 사려 하지 않으려 하자 노스페이스가 국제인증협회 컨트롤 유니온과 국제섬유협회 Textile Exchange와 함께 만든 것이 RDS 인증이다. 이 두 협회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굉장히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이고 동물들의 복지를 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 달라진 게 그렇게 많이 있는가? 아직도 어떤 농장들에서는 살아 있는 오리와 거위들이 산 채로 자기 신체 부위가 잘려 나가고 고통을 받고 있는데, 단지 소비자들의 눈가림만을 하는 것이 아닌가? 기존의 방식은 많이 바꾸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판매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증을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동물복지라는 말의 함정

그리고 현재 동물복지 기준은 문제가 많다. 동물복지라고 하면은 초원에 뛰노는 젖소들과 돼지들을 상상하기 쉽지만 오히려 그 말이 동물 사육 환경에 대한 환상을 만드는 것 같다. 현재 동물 복지 제도 기준은 허술한 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면 치킨도 안 먹어요?> 책을 쓴 이현우 작가는 이에 대해 잘 지적하고 있다. 첫째, 동물복지 인증 농장의 기준을 보면 ‘자유 방목’ 조항이 있지만 축사와 방목장을 오가는 것은 자유 방목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단미 금지’ 조항이 있지만 사육사가 ‘꼬리 물기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다’고 판단하면 꼬리를 자를 수도 있다는 기준을 두고 있어 사실상 허용하고 있다. (돼지들이 꼬리를 무는 이유는 자유롭지 않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이다) 셋째, 돼지 입장에서가 아닌 사람 입장에서 정한 소음 기준이나 암모니아 농도 기준은 돼지들에게 전혀 해롭지 않다고 단정하기가 어렵다. 이것들은 사육 상의 기준이고 사실 동물복지는 사육-운송-도축 이 세 가지 과정을 다 따져봐야 하지만 현재는 사육에서의 기준만 충족하면 동물복지 인증 마크를 주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또한 동물복지 인증은 언제까지나 인간의 기준에서 보는 복지일 뿐이다. 아무리 RDS 인증 기준대로 농장에서 동물복지 기준을 잘 준수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동물의 털을 뽑는 것은 변함이 없고, 그전에 동물이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사육되고 도축되는데 어떻게 동물들이 어떠한 해도 입지 않을 수 있는가, 동물이라는 말의 뜻인 움직이는 생물의 본성대로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걸까. 동물을 먹고 입고 이용할 대상으로 보는 인간의 시각 안에서 동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가 없다. RDS 인증 기준 역시 아무리 잘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동물들이 여전히 죽고 고통을 받을 것이다. 동물 털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어떤 인증이 나오든지 그냥 동물 털로 만든 패딩을 아예 안 사는 게 답인 것 같다.



신소재의 등장

신소재도 최근 많이 나왔다. 웰론, 신슐레이트, 이런 이름의 것들이다. 장점도 많다. 부드러운 Micro Fiber로 구성되어 빠져나오는 현상도 없다. 물세탁도 할 수 있고, 비를 맞았을 때 털 색깔이 누렇게 변하거나 냄새가 나지도 않는다. 보온력도 뒤지지 않는다. 가격도 더 싸다. 신소재 기술이 나온 지는 오래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는 게 문제이다. 백화점에 가면 보통 판매원들도 구스다운, 덕 다운이 고급이고 프리미엄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어서 가면은 “싼 거 찾으세요?”, “우리는 그런 거 안 팔아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웰론 등 인공 소재로 만든 거는 ‘싸고 질이 낮다’라는 인식이 있고, ‘진짜 털’이어야만 고급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그로 인해 아직도 내가 그날 백화점에 갔을 때 봤던 것처럼 죄다 구스다운, 덕다운으로 패딩을 판다. 시중에 잘 찾아보면 신소재 패딩도 살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애써 찾아봐야만 한다. 나도 사실 그때 구스다운 패딩을 사고야 말았다. 백화점을 배회하다가 내일까지 더 고민해 보자고 결정을 보류도 해봤지만 당장 필요한 패딩이었기에 다음 날 다시 가서 결제해버렸다.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인데 내 몸뚱어리 따뜻하기 위해서 죽은 동물에게 뽑은 털을 두른다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판매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다 동물 털 패딩들이니, 의식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의식 있는 사람들도 선택지가 없어서 결국 동물 털 패딩을 사게 된다는 게 암담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ESG 경영에서 보는 희망

현 상황이 바뀌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비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요즘에 ESG 경영이 트렌드가 되고 기업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비건 제품들과 업사이클링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움직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이슈가 본격적으로 화두가 오르면서 소비자들은 환경 파괴 제품들에 경각심을 갖고 조금 덜 유해한 제품들을 찾기 시작했다. 투자 기업들도 ESG 경영을 도입하지 않는 기업은 투자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ESG 종목을 지금의 2배로 늘리고, 화석연료와 관련한 매출이 25% 이상 발생한 기업은 아예 투자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투자 기업들도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윤리적인 방식을 택하는 기업들이 많은 수익을 낸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제 ESG 경영을 실천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소비자들의 눈치를 보고 ‘착한 패딩’, ‘착한 옷’, ‘착한 기업’으로 마케팅을한다. 3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사회 분위기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소비자들이 변화한다면 기업들도 변화할 거라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이 ESG 경영이 자칫 유행으로만 끝나지 않고 ESG의 E가 정말 ‘친환경’이 되려면, 지금의 소비자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인증들이 나와 ‘사도 된다’라고 기업들이 말할 때 그것이 기존의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은 채 정당화하고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수단만이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물론 진짜 ‘비건’이라고 해서 다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웰론과 신슐레이트 등 신소재도 석유에서 추출해 만든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에서 그리고 폐기되는 과정에서 지구 환경을 파괴한다. 그러나 보다 더 동물과 환경에 덜 해로운 것을 고르자면 대안이 될 것이다. 우리부터 겨울철 옷에 사용되는 동물들에 대한 잔인한 학대 행위를 알리고 목소리를 내어야 기업들도 신경을 쓸 것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우리가 애써 찾지 않아도 동물 털로 만들어지지 않은 패딩을 구입할 수 있고, 기업들이 정말 동물 털을 쓰지 않아서 동물 복지 실현을 준수하였다고 애써 변명하지 않는 세상이다.


글쓴이의 첨언: 이 글은 읽는 서강대 학생들을 예상 독자로 생각하고 동물 털로 된 패딩을 덜 소비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썼다. 그렇기에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나 자본주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역시 인식하고 있다. 패딩뿐만 아니라 먹거리, 화장품 등, 싸고 좋아 보이는 제품들 뒤에는 사람과 동물, 환경, 누군가의 희생이 있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구조 속 고도의 분업화로 생겨나는 단절은 사람들이 알지도 못한 채 누군가의 희생과 지배를 유지하도록 한다. 그러나 동물들을 착취하는 공장식 축산을 없애기 위해서 당장에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자본주의 구조를 철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우리의 일상 그 자체가 되었고 그 해악만큼이나 너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비거니즘 운동은 그 너머의 잘게 쪼개진 과정들을 연결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각자의 행동 변화를 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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