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5. 2:53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옛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들이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리타분하고 소위 꼰대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 마저도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 하잖아요? 그분들의 경험치가 존경스럽기 그지없다고 느껴질 만큼, 물리적인 시간 앞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경험치가 쌓이는 순간들이 있지요. 그걸 처음 느꼈던 순간은 아무래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때 같은데요. 사실 저는 고등학교 때 별명이 구구콘이었습니다. 이유인즉슨 9등급이 많아서였지요. 공부와는 참으로 담을 쌓고 지냈던 학창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남들처럼 성적에 맞춰 어느 지방대에 입학은 했는데요. 수동적이고 재미없게 1학년을 보냈습니다. 매일매일 의미 없이 시간만 죽였어요. 그에 반해 서울로 대학을 간 친구들은 너무 즐거워 보였습니다. 막연히 저도 서울에 가고 싶단 생각에 휴학 후 다시 입시를 시작했습니다.
내가 한 선택으로 보내게 될 일 년이란 시간과 그에 따른 지출이 크다고 느껴져서 이전처럼 흐지부지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다행이죠. 그때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요.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저 매일 새벽까지 문제집을 풀었어요. 공부를 생전 하지 않다가 했더니 성적이 오르는 게 눈에 보이더군요.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수능 때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지만 원하던 서울에 올 수 있게 되었죠. 저의 첫 경험치가 쌓인 겁니다.
그 후로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생길 즈음 6개월간 해외 경험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에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요. 잠들기 직전까지 대화를 이해하기 위해 긴장하고 지냈어요.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내가 멍청해진 것 같고, 나만 멍청한 것 같고, 조리 있게 말도 못 하고요. 그런데요. 이 경험치라는 게 저를 견디게 하더라고요. 또다시 수능 치던 때로 돌아간 것처럼 밤마다 못 알아들었던 단어를 외우고, 목표를 정해서 매일 챌린지를 돌파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매일 낮아지는 경험을 하면서 6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오니 못할 게 없더군요. 말도 다 통하니까 정말 다 할 수 있겠더라고요. 저의 경험치가 쌓인 두 번째 순간이었습니다.
대학도 늦게 가고(와중에 휴학도 했고요.) 해외 나간다 어쩐다 하다 보니 속절없이 시간은 빠르게 흐르더군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직장에 들어가니 제가 또 바보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에 고난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전보다 거세면 거셌지 견딜만하게 오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그때마다 제가 쌓은 작은 경험치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눈물 날 만큼 힘든 순간들에도 과거의 내가 나에게 용기를 주더라고요. ‘그때도 이만큼 힘들었지만 결국 잘 지나갔잖아! 지금 이 시간도 회피하지 않고 잘 보내면 힘들었던 만큼 더 나은 경험치가 쌓일 거야’와 같은 생각들. 그런 생각이 드니까 힘들어도 기대가 되더라고요. 제 경험상 힘들면 무조건 얻는 게 있었어요.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적어도 저에겐 잘 적용되는 말인 거 같아요. 앞으로도 저에게 황량한 사막을 지나는 듯 고난이 찾아오겠지만,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단비처럼 느껴집니다.
언젠가 저도 경험치를 잘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많은 경험치가 쌓여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많이 품을 수 있는 어른이요. 아직 나보다 경험한 것이 적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의 경험치를 다른 이를 위해서도 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보람된 삶일 것 같습니다.
상생의 삶을 꿈꾸며 최선을 다해 살아보리라 다짐을 해봅니다. 그래도 꼰대는 되지 않도록 나를 계속 돌아보는 것도 중요할 듯합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