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사람

이 세상 단 한 조각이라도

by 어제의 오늘

할머니를 소개하는 말을 찾아본다면

부지런함, 성실함’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나이대 어른이라면 다 그렇지.’ 할 수 있겠으나,

열심을 내어 살아온 시간이 버릇이 되어

은퇴 후에도 늘 바삐 움직였던 삶을 보면

여전히 나는 그 부지런함을 경이롭게 볼 수밖에 없다.


세대가 달라서일까? 성격 때문일까?

나에게 ‘은퇴‘라는 말은 ‘쉼’과 같은 뜻인데,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은퇴 후 내려온 시골집에서도

하루의 계획을 매일 빼곡히 채워나갔다.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그 시골집에는

집을 지키는 강아지와 ‘개조심!’ 푯말이

투박한 글씨로 적혀 대문을 장식하고,

집 뒤 작은 언덕을 타고 올라가면

닭장과 토끼장이 자리하고 있어 매일 아침

그곳을 방문하는 것은 할머니의 중요한 일과였다.


게다가 그 밑의 공간에는 다양한 제철 채소와 딸기,

마당 한편을 채우는 포도 덩굴까지

365일이 모자란 삶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부지런한 두 분 덕분에

내 어린 시절은 꽤나 따뜻하고 풍족했는데


매일 아침 토끼장을 지나

옆에 자리한 앵두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던 것,

여름에는 포도를 모두 따서 큰 가마솥에 넣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포도잼을 구경했던 것,

또, 놀거리가 없는 시골에서 대나무를 깎아

활과 화살을 만들어주신 할아버지와 함께

밭에다 화살을 쏘았던 것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다.


여름이면 바람이 많이 부는

동네 마을어귀의 정자에 앉아

할아버지가 장기 두는 것을 구경하곤 했는데,

말에 적힌 한자는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위로 드리운 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널찍한 그늘을 만들어냈던 것은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마을 어귀까지 마중 나온 할머니와 함께

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참으로 즐거웠더랬다.

두 분은 늘 내 교육문제를 걱정하며

이윽고 도시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만끽한 자연과 추억은

어른이 된 나를 더욱 단단히 만드는 양분이 되었다.


할머니의 부지런함을 논하다 보니

역시 그 동반자였던 할아버지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렇게 성실한 두 분 덕분에

내 어린 시절은 빈틈없이 사랑으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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