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단 한 조각이라도
충청도에서 태어난 나의 할머니는
시집살이는 전라도에서,
이후 아들들을 키워낸 것은 경상도라
전국 팔도의 맛은 다 익혀버린 것인지
손을 대는 족족 맛깔난 음식을 내어오곤 하셨다.
손이 야무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성이 그득한 음식들은
언제나 깨끗한 그릇에,
깨 고명까지 뿌려 정갈히 식탁에 놓이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집의 자식들은
남의 집 음식을 잘 못 먹을 정도였다.
입맛만 까다로워져서는
나이 든 노모의 솜씨를 못 잊어, 80이 넘은 나이에도
언제나 요리는 할머니의 담당이었다.
화려하고 값비싼 요리는 아니어도,
김치하나, 밑반찬 하나도 사랑과 정성이 그득해
집에 친구들을 데려와 칭찬을 받을 때면
괜히 내 어깨도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봐, 우리 할머니 음식 잘하시지? 정말 맛있지?’
속으로만 생각하며 뿌듯해하고는,
친구가 돌아가면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할머니, 내 친구가 할머니가 해준 것 다 맛있대,
엄청 맛있대!‘ 하고 재잘대었다.
그때 어렴풋이 할머니의 웃는 모습을 봤던 것 같은데.
괜히 쑥스러우신지 ‘이런 게 뭐가 맛있어.‘ 하고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난다.
특히 내가 할머니의 음식 중에 잊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흔한 예상과는 달리, 바로 ‘주먹밥’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운동회,
소풍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도시락 아닐까?
할머니는 내가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날이면
안 그래도 부지런한 몸을 더 바삐 움직여
해도 뜨지 않은 새벽부터 주방으로 향했다.
다 뜨지도 못한 눈을 비비며,
고소한 냄새가 나는 곳을 따라가 보면
정성으로 잘게 다진 야채와
소시지에 참기름을 듬뿍 넣고 골고루 비빈밥을
그냥 주어도 될 텐데, 하나하나 한입거리로
정성스레 굴리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 갑자기 잠이 번쩍 깨며 배가 고파졌던 것 같다.
그 옆에 앉아 주먹밥을 하나 얻어먹고는
아침으로도 먹고, 점심으로 또 먹어도 너무 맛있어서,
친구들이 싸 온 도시락과 바꿔먹는 게 아쉬울 때도 많았다.
할머니는 늘 내게 더 챙겨주고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할머니가 준 것들이 가장 최선의 것이었다는 것을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늘 나를 행복하게 채워주었던지라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아셨으려나.
막장드라마 같은 내 인생에
남의 눈총을 받을까 더 챙겨주었던 할머니 덕분에
나는 친구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부모님이 그리웠어도
그저 잠깐씩 드는 감정이라 치부하며
또 웃으며 넘길 수 있을 정도로,
한 아이의 몸에 사랑이 가득 차 메워질 만큼
그렇게 때론 무식하게, 또 절절하게
할머니는 나를 사랑으로 채웠다.
그중에서도 매일 아침 꼭 챙겨 먹이며,
‘밥을 먹어야 든든해, 공부를 잘하지’
늘 말씀하셨던 아침식사와
‘과일은 배 안 불러~’ 하고
입에 꼭 넣어주시던 후식까지, 그 모든 음식이
그 손을 타고 내게 넘어오는 모든 것들이
사랑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