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 세상 단 한 조각이라도

by 어제의 오늘

내가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아니 우리가 함께 살게 된 것은

부모님의 사정으로 나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졌을

1-2살 무렵의 일이었다.


아들만 세명이었던 집안에 등장한 손녀딸의 존재는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그다지 반가웠으리라 여겨지지 않는다.


힘든 일생을 살아내고 이제 허리 좀 펴 볼 무렵

은퇴 후 내려온 시골집에서 다시 시작되는 육아라니,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 삶이다.


유독 잔병치레가 많았던 아이,

손수 유아식을 만들어 피부병을 치료하고

열이 오른 밤에는 곁을 지키며 함께 밤을 새우고.

사랑은 자꾸 어디서 솟아나는 것인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자꾸만 그녀에게서 뿜어 나왔다.


60이 넘은 나이에 은퇴 후 내려온 시골마을에서

밭일하랴 아기 키우랴 무리를 했던 탓인지

그녀는 결국 허리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지 뭔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나의 탓인 것 같은데

할머니의 입에서는 나에 대한 불평을 단 한 번도 들은 기억이 없다.


나의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할머니는 나의 엄마요, 친구가 되어주고

때로는 언니처럼, 때로는 무한한 사랑을 주는

신의 존재처럼 나를 굽어 살폈다.


곱게만 자랐다더니, 생활력은 왜 이렇게 강한가?

부족한 살림에도 모자람 없이 키운 손녀딸은

부모님의 손길은 없었어도

어디서나 예쁨 받는 아이로 성장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할머니는 나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는데

어른이 되어보니 정말 배울 점이 무성한 사람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모두가 어른이 아님을 느끼게 되는 세상에서,

배울 것 많은 사람을 나의 가족으로 만났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목적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해내는 추진력과

그 오랜 세월 간 변하지 않은 성실함,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도 늘 사랑과 걱정으로

가정을 살피는 따듯함까지

나의 인생의 8할을 이루는 모든 것은

모두 그녀에게로부터 온 것이다.

둥근 얼굴에 웃는 모습이 선한 나의 할머니는

이름에도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여

본인은 고통에 살았을지라도 언제나 내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견뎌내는 시간들은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아.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도 코끝이 시큰해져

눈에 눈물이 고여요.

나는 아직 당신과의 이별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시간은 인생의 속도와 함께 그저 달리기만 하고

내게는 마음의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네요.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세상 곳곳에 그녀를 남겨두고 싶다.

언젠가 다가올 이별에도

우리가 완전히 헤어지지 않도록,

작은 조각조각들이 세상에 남아 그녀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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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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