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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광년 4시간전

60. 내 인생의 중요한 사람

예순번째 이야기 

       

 뉴스는 연일 <그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의문점들을 파헤치는 소식들로 시끄러웠다서점에서 제이의 책은 그간의 판매기록을 갈아치우며 무서울 정도로 팔려 나갔다물론그에 대한 세상의 관심도 만만치 않았다신인인 그가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의 숨은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고 파헤쳤다는 게 세간의 이목을 끈 가장 큰 이유였다.  

 

다시 말하자면제이는 과연 누구인가바로 이 점이다     


 벌써 몇 번째 전화인지 몰라요?”     


오전 11시밖에 안 된 시간이지만홍 양이 녹초가 다 된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 장난 아니다.”     


그러한 상태는 복자도 마찬가지였다     


 작가님심층 인터뷰 좀 할 수 없겠느냐는 전화만 오늘 칠십 통째예요.”     

 책이 잘 팔리는 건 좋은데요런 건 좀 피곤하다그쟈?”     


장 기자가 뜨거워진 전화기 위에 간이 선풍기를 올려놓고 말했다사무실 안의 전화란 전화가 하루 온 종일 울려대는 통에정상적인 출판사 업무가 불가능했다     


 그냥 그러면 안 되나?”     


뒤에 서 있던 새벽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며 말한다모두가 그를 쳐다본다     


 작가 인터뷰 하루 날 잡아서 딱 하면 어떨까작가 본인도 계속 숨으려고 했다면이런 책 어떻게 쓸 수 있었겠어자길 드러낼 각오하고 폭로한 거잖아.”     


새벽의 말이 맞다제이가 세상에 제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면 그 모든 문제들이 일시에 해결될 것이다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것은 이 소설 속 이야기의 진실과 바로 그 작가의 정체니깐숨길수록 더욱 의문만 커지게 될 것이다복자는 한 손을 이마에 올린 채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그렇게 모든 의문을 풀어버리고 나면 제이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누구 하나 새벽의 말에 선뜻 대답해 주지 못하는 상황에어디선가 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아요이 대리님 말씀이저 정식으로 인터뷰할게요.”     


언제부터 그가 있었던 것일까복자의 눈이 번쩍하고 떠진다   

  

 ... 언제 온 거야그리고 그게 무슨 말이야?”     


놀란 눈으로 자기 귀로 방금 들은 소리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되묻는다.     


 인터뷰 일정 잡아주세요더 이상 사양하거나 미루지 마시고요참석하겠다는 기자들 다 불러서 한 번에 할게요그렇게 하게 해주세요숨는다고 숨어지겠어요?”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고 목소리는 단호하고 선명했다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복자를 향해 제이가 살짝 한쪽 눈을 찡긋하고 웃어 보인다대체 무슨 속셈인 거야.... 오히려 밝아 보이려는 제이의 모습이 더 불안했다     







 텅 빈 회의실 안가운데 책상에 민재가 앉아 있고오른쪽 꺾은 방향에 우성이 말없이 앉아있다양옆으로 열 명씩 착석해야 하는 회의실 좌석이 텅 비어 있었다사전에 공지한 회의 시간에서 벌써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어머니.”     


공간이 주는 적막함 때문인지 우성의 목소리가 무겁게 짓눌렸다.     


 썩을 것들버러지만도 못한 노인네들그깟 말도 안 되는 것들 때문에 나를 무시해?”     

 어머니.”

 그래 좋아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어머니!!”     

 그러니까재림이랑 결혼했으면 오죽 좋아이럴 때 언론 선동하기도 쉽고, 5년짜리라고 해도 대통령 사돈 될 집안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겠어?”

 지금 도대체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어머니이제 인정하세요삼촌... 그렇게 만들어 놓곤아직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시는 거예요?”    


     


날카로운 소리였다민재는 우성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공중으로 올라간 민재의 손끝이 흔들리고 있었다아래로 고개를 돌린 우성의 뺨에 얇은 손톱자국이 긁혀있었다     


 “ .....”     


민재는 제 스스로 솟구치는 분노를 다스릴 수 없는지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     


때마침문이 열리고 최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     


민재는 놀란 눈으로 최 회장이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았다그럼오늘 이 회의에 오지 않은 임원들은 전부 최 회장 밑으로 들어갔단 말인가민재의 눈에 분노가 차 오르기 시작했다자신이 버려졌단 사실이무너지기 시작한 자신의 세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민재야.”      


최 회장이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딸의 이름을 부른다그것은 어쩌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은 자의 항복과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민재의 귀에는 모든 게 무음 상태다지금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조롱하고 즐거워하는 이들의 얼굴만 눈앞에 떠오를 뿐이다아버지도 믿을 수 없는 사람 중의 한 명일 뿐이다     


 민재야이제 그만해라사법 처리까진 받지 않도록 내가 돕겠다그건 민수도 바랄 거야네가 이렇게 된 대는 내 책임도 크다아니 전부 다 내 책임이다.”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대체.... 마치 제가 모든 걸 내려놓길 예전부터 바란 것처럼.... 혹시 이거 아버지 작품이세요아버지가 그 아이 시켜서 그동안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준비하신 거예요그래서 아버지가 우성이를 확실히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은 거군요,  그 아이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 ..넌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최 회장이 한탄스러운 얼굴로 한 손으로 가슴을 치며 말한다그는 자신이 평생을 다해 일구었던 모든 것이 철저히 무너지고 있음을 예견하고 있었다가족이 무너지면서까지 일구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절망만 남았고모든 걸 인정하고 이젠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재는 뒷걸음을 치며 빠르게 도리질 쳤다그녀의 눈동자 주변이 벌겋게 물들면서 눈물이 차올랐다그러나 그건 후회와 회환의 눈물은 아니었다오히려 끓어오르는 분노와 원망에 가까웠다    

 

 아니라고!!! 내가 그랬다는 증거가 어디 있어증거 가지고 와!!! 증거를!!! 아버지나우성이나... 다 그 말도 안 되는 책 나부랭이는 믿으면서 난나는 못 믿겠다는 거야그런 거예욧???”     

 민재야이쯤에서 덮고 가야 돼이제 그만 하자나도 너무 지치는구나아들까지 잃었는데 딸까지 잃어야겠니우성이를 생각해어미가 돼서 이러면 안 되는 거다.”     

 아버지제가 우성이를 생각해서 이러는 거라고요우성아알겠니엄마가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평생 네 뒤에서 그림자처럼 살았으면 좋겠니?”     


그녀는 옅게 웃으며 우성과 최 회장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눈은 분노로 이글거리는데입꼬리만 올라간 그런 미소였다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느낌민재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뒤돌아서는 제이를 부르는 복자그들은 출입구로 내려가는 테라스 계단 쪽에서 마주섰다   

  

 그래도 돼인터뷰부담되지 않겠어?”     


사무실 안에선 그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없었다사실제이가 공식적인 인터뷰를 시원하게 해 주길 모두가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팔이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복자도 제 애인 챙기는 쪽에 마음이 가고 만다그 마음을 아는지제이는 한 칸 아래 계단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걱정 마책 냈으면 인터뷰하는 건 당연하지안 하면 바보 아닌가?”     

 아니그런 말 아닌 건 알면서책 광고하는 그런 인터뷰가 아니잖아이건.”     

 그래알아당신이 걱정하는 것보다 나 훨씬 단단해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나 이제 다르게 살고 싶어예전과 다르게.”     


제이는 한 손으로 복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이마 위에 짧게 입을 맞췄다그에 복자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근데나 부탁이 있는데들어줄 수 있어?”     

 부탁뭔데?”     

 누굴 만나러 가는데같이 가 줄 수 있어그 사람한테 사실 당신을 보여주고 싶어서.”          


무조건 그러겠다고 복자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그 모습이 고맙고 또 사랑스러워서 제이가 못 참겠다는 듯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껴안는다복자로 자유로워진 두 팔을 제이의 등에 갖다 대고 가만가만 두드린다.     


 당신은 모를 거야내가 얼마나 당신한테 고마워하는지고마워정말많이내 인생에 막 끼어들어 와줘서 정말... 고마워.”     


제이가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복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나도.”라고 사랑스럽게 답한다    

 

단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우리 각자의 인생을 지탱하고 이겨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은바로 그 단 한 사람이다그 하나를 찾기 위해 우리는 숱한 만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인연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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