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여섯번째 이야기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 곽효화 <그날>중에서
사람은 저마다 여러 이유로 병원에 간다. 병명도 가지가지다. 식중독, 불면증, 독감, 폐렴, 암, 출산, 난청, 교통사고, 등등. 그 심각성의 정도는 죽음과의 거리가 얼마인지에 따라 정해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 우리는 항상 그 사이에서 쉼 없이 뜀박질을 한다.
그렇다면 나의 병명은 무엇인가?
상사병.
그리움.
죄책감.
미안함.
복자는 하얗고 반듯한 직사각형의 타일들이 균일하게 박힌 천장을 바라본다. 하나의 타일엔 각각 6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천장은 위층의 바닥이다. 그렇다면 위층의 누군가도 복자처럼 침대에 누운 채로 또 다른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까? 참으로 쓸데없는 생각이다. 흐느낌 같은 웃음을 키득거렸다. 미친년처럼.
그가 떠나고, 한 달이 지났다.
“주사, 잘 들어가고 있네요. 조금만 더 누워 있어주세요.”
간호사가 복자의 왼쪽 팔에 꽂힌 주사 바늘을 기계적으로 확인하고 사라진다. 희멀건 액체가 들어있는 플라스틱 백에는 내용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
살겠다고, 또 병원에 왔구나.
위가 뚫렸다고 했다. 며칠 밤을 자지 못했고, 밥도 쉬었다 말았다, 머릿속 어느 부분이 고장 난 것처럼 멍한 상태로 지냈다. 머리와 팔, 다리, 몸통이 다 분리되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그러나 틈틈이 빈 공간에 술을 채우는 건 잊지 않고 열심히 했다.
출판사는 병가 상태로 얼마간 나가지 못했다. 고 팀장은 알아서 하겠노라고 답했다. 사실, 그녀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회사를 나가야 하는 상태인 것도 인지하지 못했을 거다. 몇 통의 안부 전화가 왔지만, 어느 것도 받지 않았다.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삶은 엉망진창, 오물에 빠진 쓰레기 같았다.
“이 가시내야. 이제 정신 차려. 죽을 거냐? 응? 죽을 거야? 이렇게!!!”
눈 밑이 거뭇해진 복자의 엄마가 침대맡에서 그녀를 다그친다. 핼쑥한 얼굴의 딸을 바라보니, 속에서 불이 난 모양이다. 복자는 별 대답 없이 눈만 감고 있다. 혀소리만 쯧쯧 차다가 엄마도 별 말을 더 붙이지 않았다. 어떤 말도 지금 딸의 귀엔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그녀도 안다. 싫은 소리해서 무얼 하냐. 저렇게 물기 없이 파스락하게 말라가고 있는데....
“이 사람.. 조용히 혀.. 여기 병원이야. 일단 나가서 바람이나 좀 쐬자고.”
아버지는 조용히 엄마를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도 못 이기는 척 몸을 맡긴다. 딸이 안 보이면 덜컥 심장이 떨어졌다가도 괴로워하는 저 모습을 보면 속에서 불이 올라오니, 엄마도 며칠만 더 이렇게 지내면 옆 침대에 누울 기세다.
제이는 연락 한번 없었다.
손으로 입술 주변을 만지다 까칠하게 올라온 껍질을 뜯어냈다. 따끔한 걸 보니 피가 난 모양이다. 손가락으로 만져 보니, 역시 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
이렇게 피가 나도, 아파도, 병원에 실려와도, 위에 구멍이 나도, 그는 몰랐다. 떠났고, 언젠가 돌아올 거란 막연한 기대도 이젠 잘 모르겠다. 그가 돌아온대도 우리의 이야기가 온전히 시작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 그와 나 사이에 얽혀진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덜어낼 용기가 서로에게 있는지.... 결국은 이렇게 헤어지는 건가. 그 흔한 작별 인사도 없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약은 이제 거의 다 들어갔다. 복자는 저절로 눈이 감겼다. 5분만 그렇게 있으려고 했는데, 다시 눈을 떠보니 해가 지고, 붉게 노을 진 창가가 보였다. 오랜만에 잠답게 제대로 자본 것 같다.
“푹 자라고. 안 깨웠다. 괜찮어? 집에 가도 되겠어?”
움푹 꺼진 엄마의 눈을 가까이서 보니, 복자의 목 안으로 뜨겁고 울컥한 것이 훅 올라왔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 침을 입 안으로 두 번 삼킨 후에, 말했다.
“엄마, 나 삼계탕 땡겨.”
“뭐? 어? 삼..삼계탕?? 그래그래. 삼계탕! 여보~ 삼계탕!!삼계탕!!”
살겠다는 신호였다. 살아보겠다. 살아야지.
병원 근처의 가까운 삼계탕 집으로 들어간 세 사람. 엄마는 호들갑스럽게 영양 삼계탕 세 그릇을 주문했다. 잠시 후에, 뽀얀 국물이 용암처럼 부글거리며 복자 앞에 놓였다. 그녀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스푼 뜨고, 젓가락으로 통통하고 하얀 닭살을 발라내어 앞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부담 없는 묵직한 국물이 그녀의 텅 빈 속을 달래며 안으로 내려갔다. 뜨뜻하면서 든든했다. 눈앞에 놓인 삼계탕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는 데에만 몰두했다.
며칠째 제대로 밥도 넘기지 못하던 딸이 앉은 자리에서 삼계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눈빛도 얼추 반짝거리니 그제야 부모님 맘이 놓인다. 맘이 편해지자, 저절로 몸의 긴장도 풀리면서 눈이 스르륵 감긴다.
“엄마, 아빠 이제 들어가 주무셔. 나 좀만 더 보다 들어갈게.”
“아하하함..... 그럴래?”
“그랴그랴. 복자야, 조금만 보다 들어가 자라. 너무 티비 오래 보지 말고.”
“응... 그래요.. 들어가 주무셔.”
“그래.”
“엄마?”
“응?”
“낼 목욕 가. 같이.”
“그래? 그래그래. 좋지. 인천댁한테 미리 예약해놔야겠네. 그 여자가 말은 많아도 때 미는 건 기똥차지.”
엄마의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니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그녀는 다 큰 딸을 데리고 동네 목욕탕 가는 걸 참 좋아라한다. 크다 못해, 이제 늙어가기 시작하는 딸을. 그러고 보니 이제 서른 두 살이구나. 복자는 예전에 즐겨보던 예능 프로의 볼륨을 더 높인다.
기분이 우울해서 웃고 싶어질 땐 꼭 이 프로를 본다. 예전에는 꼬박꼬박 토요일 저녁마다 챙겨보던 건데, 언제부턴가 성실히 챙겨보지 않게 되었다. 브라운관 화면 속 그들도 꽤 나이가 든 모습이다. 오랜만에 본 거지만,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하고 익숙하다. 바보 같은 장난이 그들 사이에 오고 가고, 나름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전개된다. 기계적으로 그들이 웃으면 따라 웃었다. 웃는 얼굴을 흉내 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먹는 거 까진 하겠는데, 아직 웃는 거 까진 못하겠더라.
“어른 둘이요.”
만 구천원을 내고, 엄마 뒤를 따라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그 특유의 후끈하면서 향긋한 냄새가 먼저 코끝을 스쳤다. 길쭉한 옷장들이 같은 너비대로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바닥 가운데엔 어른 세 명 정도는 겹쳐 누울 수 있을 정도의 나무 평상이 놓여 있었다. 서둘러 옷을 벗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알고, 복자엄마 왔네. 복자도 오랜만이다. 10분만 물에서 뿔리고 오니라.”
탕 안에서도 당당히 아래 속옷을 걸치고 있는 인천 댁 아주머니는 언제나 표정이 밝고 힘차다. 어깨를 쫙 펴고, 그녀는 목욕탕 안을 수시로 돌아다니며 동네 사람들의 안부 이것저것을 묻는다. 이 동네 모든 소문이 시작되는 곳은 3평도 안 되는 인천 댁 아주머니의 작업실이다.
대충 물을 끼얹고, 몸에 비누칠을 했다. 하얗고 보글보글한 비누 거품을 헹군 다음에 그간 감지 못했던 머리에 샴푸를 발랐다. 시원하게 구석구석 손으로 긁었다. 하나씩 해나가자. 하나씩. 뜨거운 탕 안에 노곤하게 몸을 담그고 있는데, 목욕탕 안이 좀 소란스러워졌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그렇게 많았던 건 아니지만 얼추 열 댓 명 정도 되는 손님들이 당황해 한다. 저 멀리서 파도를 치며 그들의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이유를 복자도 알게 되었다.
온탕 근처로 온 목욕탕 사장 아줌마가 복자와 복자 엄마를 향해 난처한 얼굴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검은색 반팔 티에 얼룩무늬 일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알고, 갑자기 일이 터져 부렸네. 습식 사우나 보일러가 새벽에 터졌는데, 수리공 아저씨가 지금 이 시간 밖에 안 된다네... 우짜지? 낼 주말인데, 주말 장사 그러면 날아가. 보일러가 다 연결이 되가지고, 이대로 두면 목욕탕 전체 보일러가 안 되거든. 내가 단단하게 준비를 해 놓고 데리고 올 테니깐, 손님들은 걱정 말고 잠시만 몸 좀 숨기고 있어.”
“잉?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떻게 몸을 숨겨?”
“아, 타월로 가리고, 좀 구석에 잠시만 있어주라. 금방 끝나. 미안해요.”
여탕 한복판에 지금 그러니깐 다 큰 성인 남자가 들어온다는 말??? 황당한 말을 남기고 얼룩무늬 바지를 펄럭이며 사장 아줌마는 뒤돌아섰다. 황당한 눈으로 엄마와 서로 바라보던 복자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인천댁 아줌마의 쩌렁쩌렁한 소리에 정신이 깼다.
“복자야, 들어와!!”
“엄마, 어쩌지?”
“어쩌긴. 일단 넌 그럼 저 때밀이 칸에 들어가 있어.”
“엄마는?”
“금방 끝난다니 뭐 대충 가리고 있지, 모.”
이 상황이 혼란스럽지만, 복자는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급히 때밀이 칸으로 들어갔다. 간이침대에 누울려는 찰나, 입구 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저씨, 1분 후에 들어갑니다!!!”
“복자야, 일단 우리도 좀 여기서 숨어 있자잉.”
인천 댁 아줌마의 제안으로 복자는 때밀이 칸막이에 목만 빼꼼히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
후다다닥..
목욕탕 안에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탕 안으로 쏙쏙 들어오는 사람, 커다란 바가지를 마구 챙기는 사람, 중앙을 터 비어 놓고 목욕탕 구석구석 사람들이 제 자리를 찾았다. 걔 중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수리가 필요한 습식 사우나 옆의 건식 사우나에 당당히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정도 내부가 정리된 걸 꼼꼼히 확인한 사장 아줌마가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제 진짜로 들어갑니다.”
문 쪽으로 수십 개의 눈동자의 시선이 모아졌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사장 아줌마의 손을 붙잡고 뒤이어 조심스레 한 걸음씩을 떼는 회색 티를 입은 아저씨가 나타났다. 굳이 아줌마의 손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는 그의 얼굴이 까만 비닐봉지로 감싸져 있었기 때문이다. 조그맣게 눈구멍 두 개가 뚫려 있었지만, 습하고 후끈한 목욕탕 내부에서 편치가 않을 것이다. 고개도 이리저리 돌릴 수 없는 탓에 아저씨는 목에 깁스를 한 사람 마냥 뻣뻣한 자세로 한 손엔 장비 상자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사장 아줌마의 손을 꼬옥 잡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크크크크”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복자는 몰려오는 웃음끼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상하고 오묘하면서도 자꾸 실실 웃음이 터졌다. 그건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인천 댁 아줌마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별일이야. 별일. 나 참. 20년 만에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여.”
아줌마의 덤덤한 말투에 복자는 이제 눈물까지 올라왔다.
간신히 습식 사우나실 안에 도착한 아저씨는 문을 열어 놓은 채 뭔가 작업에 몰두하셨다. 그 뒤로 사장 아줌마가 팔짱을 낀 채 보초를 섰다. 멀어서 보이진 않았지만, 숨어있는 손님들도 손님들이지만, 수리공 아저씨도 이 상황이 퍽 난감했으리라. 긴장한 탓인지 그의 작업은 꽤 시간이 길어졌다.
그 옆으로 건식 사우나 실에 들어간 몇몇 아주머니들의 손바닥이 창 쪽에 달라붙어 기괴스럽게 보였다. 아, 얼마나 뜨거울까. 걱정스럽고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자꾸만 밑에서부터 스물 스물 올라오는 웃음기를 복자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수건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꺽꺽” 웃어버렸다. 마음껏 웃을 수 없으니 더 미칠 것 같았다. 정신없이 웃다보니 내가 웃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젠. 웃을 수도 있구나.
복자의 얼굴이 다시 편안해지면서 혼자 작게 중얼거린다.
미쳤구나. 김복자. 어떻게 웃음이 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