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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진로를 고민하다

by 오 광년

진로.

앞으로 나아갈 길.


「어른이 되면 무슨 직업을 가질까요?

무엇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요?

평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마치 나인 것처럼 생각했을 때가 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학생 때는 무조건 공부만이 살 길이라 여겼다. 높은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인생이 어느 정도는 보장되리라 믿었다. 그 믿음은 순수하면서도 나태했다. 내 인생을 걸고 도박 같은 건 할 수 없으니까. 남들이 하는 것을 무작정 따르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어슴푸레한 꿈이 있었지만, 가당치 않았다. 없는 살림에 대학 나와서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등록금이 저렴한 교대였지만, 입학 통보를 받자마자 찾아간 곳은 은행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대학을 다니면서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대단히 즐겁진 않아도 소소한 재미와 만족감을 주었다. 대학 4년 내내 임용고시라는 거대한 과업 때문에 교사 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머릿속에서 일단 지웠다.


스물셋.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교사가 되었다. 그제야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바라던 직업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괜찮은 사회인이 된 것 같아 잠시 한숨을 돌렸다. 무엇보다 작가라는 꿈을 천천히 실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물론 시간과 노력을 배로 쏟아부어야겠지만.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갔고, 홀로 나를 키운 엄마에게 생활비도 매달 보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직장 안에서도 삐걱거렸지만 천천히 적응해 나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운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학교라는 조직 생활이었다. 눈에 보이는 상하 구분이 있었고, 보이진 않아도 더 미묘하고 중요한 관계선도 있었다. 공식이든 비공식이든간에 단체 생활, 모임 등에는 되도록 참석해야 했다. 해마다 바뀌는 업무와 학년 분장에도 눈치껏 행동해서 제 살길을 알아서 찾아야 했다. 남들에게 적당히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속내로는 다른 이들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내 편과 네 편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의 평판과 이미지도 동시에 관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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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모든 면에서 대단히 부족한 사람이었다. 바깥에 나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려 한참을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하는 성향인 내게 사람들 간의 부대낌은 엄청난 압박감이었다. 대놓고 반기를 둘 만큼 용기 있는 성격은 아닌지라, 스트레스를 참아가며 꾸역꾸역 싫은 일들을 해나갔다. 억지로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하기 싫다는 비명을 미친 듯이 질러 댔다. 사람들 틈 속에 앉아있으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생각의 꼬리들이 얽히고설켰다. 사람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와 말투가 칼처럼 가슴에 꽂혔다. 그들은 별생각 없이 한 말일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게 별생각 없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걔 중에는 정말 나쁜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직장 인간관계에서 나는 여러모로 서툴렀다.


그때의 나는 나를 탓했다.

사회생활을 잘하는 나,

인간관계에 대해 공부가 필요한 나.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는 나,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서를 읽기도 하고 어떻게든 고치고 노력하고 싶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서글펐다. 안으로 가시를 꽂는 고슴도치 같았다.


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있었다, 삼 십대의 나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체념에 가까웠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인생의 중요한 과업을 하나씩 이루어 나갔다. 휴직과 복직을 오갔다. 인사이동으로 학교를 서너 번 옮겼고, 타시도 전출로 지역도 옮겼다. 소소한 변화가 있었지만, 사회인이 되어 만난 소수의 친구들은 여전히 얼굴을 보고 안부를 전한다. 우루루 몰고 다니는 모임의 일원은 어려워도 마음이 통한 지인들의 연락은 언제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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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마흔 언저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 다시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여전히 작가가 꿈인 교사다. 아침마다 출근하는 직장이 싫고, 내 작업실에서 글만 오로지 쓰고프다.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아직은 다르다. 진로를 고민한다. 모든 게 비슷하다. 그래도 조금 달라진 점을 찾는다면, 나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특히, 인간관계를 대하는 나의 기본자세다. 타인의 반응을 세세히 관찰하는 민감함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필요한 재료지만, 직장에서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직장 생활에 맞게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해서 평가 절하할 필요가 없다는 걸 말이다. 어쩌면 그 결핍이 이십 년 내내 끈질기게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해 준 원동력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이 될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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