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말한다.
“ 야, 대충해.”
뭘 그렇게 잘하려고 해, 일단 힘부터 빼.
흑백 사진 속 하루키가 무심히 나를 쳐다본다. 한쪽 무릎을 올린 채 삐딱하게 앉은 자세와 검정 라운드 반팔티, 깔끔한 손목시계가 어울린다.
담백하면서도 세련된 그의 문체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은 꽤 오래된 책인데도 8년째 방안 책장에 꽂혀있다. 한 번씩 책 정리를 하는데도 이 책은 부적처럼 멀리 두지 못하겠다. 이상한 집착이다.
1949년생. 할아버지에 가까운 나이. 그러나 그에겐 왠지 노인이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내 심상 속에 하루키는 설익은 청춘이다.
「 고독한 작업, 이라고 하면 너무나 범속한 표현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실제로 상당히 고독한 작업입니다. 때때로 깊은 우물 밑바닥에 혼자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구해주러 오지 않고 아무도 “오늘 아주 잘했어”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지도 않습니다. 그건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나는 그런 쪽의 작업에 관해서는 상당히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때로는 지긋지긋하고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 또 하루, 마치 기와 직인이 기와를 쌓아가듯이 참을성 있게 꼼꼼히 쌓아가는 것에 의해 이윽고 어느 시점에 ‘그래, 뭐니 뭐니해도 나는 작가야’라는 실감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금주 단체 표어에 ‘One day at a time’ (하루씩 꾸준하게)이라는 게 있는데, 그야말로 바로 그것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
어디 소설뿐이겠는가.
무슨 일이든 매일 꾸준하게 반복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인내심과 체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심플해야 한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을 글자로 풀어낸다. 고이면 썩어버릴 것들을 나름 쓸만한 것들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과정은 지루하지만 하루에 한 장이라도 늘어난 워드 파일은 나름 뿌듯하다. 다음 날 다시 읽어보면 ‘이게 무슨 말이야?’ 기가 차기도 하지만, 괜찮다. 다시 고치고 지우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쉽다.
라고 하루키가 잔소리한다. 맞는 말이다. 새겨듣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