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말이지만, 한 번 부모가 되면 절대 그 이름을 죽을 때까지 내려 놓을 수 없다. 보송하고 말랑한 아기를 내 품에 안는 건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쁨이다. 세상 만사 모든 일에 양음이 있듯이 내 자식이 주는 기쁨만큼 버거움도 상당하다.
특히, 제 3자 보기에는 그 나이 또래가 가진 비슷한 발랄함과 천진난만함을 가진 것 같은데 정작 그 아이의 부모는 고민이 깊고 육아를 버거워한다.
대게 이런 경우에는 아이와 엄마의 사주타로카드 구성이 비슷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9번이면, 엄마도 9번인 것이다.
심리치료 중에도 거울 치료라는 방법이 있듯이, 눈 앞에서 나의 미니미가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아이가 하는 행동이나 말투가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귀에 거슬릴 수도 있다. 그건 엄마가 가진 고유한 특성 중 하나이다. 기민하게 " 어, 저거 나를 닮았네."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본인이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알아채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편하고 더욱 거북하게 느낄 수도 있다. 부모가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개인 스스로의 모든 심리적 성향을 샅샅이 파악하긴 어렵다.
우리 몸의 DNA를 전부 이으면 지구에서 명왕성 너머로까지 뻗을 수 있다.
빌 브라이슨의 책 <BODY> 중에서...
부모의 DNA를 이어받고 태어난 아이. 서로의 성향과 특색, 가족으로서 서로 공유해야 하는 환경적 특성과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가족이란, 부모와 자식은 그런 독특하고 내밀한 관계다.
부모가 성장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부모 자신만이 가진 내밀한 특성을 알고 스스로를 하나씩 이해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내 아이를 바라보는 눈이 더 넓어짐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