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번째 이야기
“ 석.. 달 비용요? 참... 엄마도.. 근데, 그게 얼만데요?”
“ 음.. 구 백 만원요..”
“ 네에에에예?? 구규. 구백만원? 무슨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그 콧구멍 같은 방이 무슨..”
복자의 눈과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커졌다. 반면, 맞은 편에 있는 제이는 아주 평온해 보인다. 그는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 생활비, 포함인건데??”
“ 생활비?”
“ 네, 생활비. 빨래해주시고 음식해주시고. 당연히 그런 거 다 포함한 금액인데. 적게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한데?...”
“ 허..헛헛.... 이 친구...좀 보게...”
어린 애기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흐느적거리면서 느껴지던 여유가 이유가 있었네 싶다. 한쪽 다리를 삐딱하게 짚고, 허리춤에 두 손을 올린 채 복자는 마른 침을 삼켰다.
“ 이봐요, 제이씨.. 아직 세상 무서운 거, 돈 무서운 거 잘 모르나 본데... 당신, 그 글 좀 쓴다고 해서.. 아직 정식 데뷔한 것도 아닌데... 구백..구백만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기가 무슨 강남 한복판 타워팰리스도 아니고, 그냥 주택가 쪽방 하나 끼여 사는데, 무슨 구백이예요? ”
이젠 좀 알아들어라 싶은 눈으로 바라보는데, 빙그레 입가를 올리더니 제이가 복자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다. 반사적으로 뭐야 하면서 고개를 뒤로 살짝 빼는데 어깨가 잡히고 말았다.
“ 이봐요. 김복자 대리님. 내가 다른 걸 몰라도 돈 무섭다는 건 그 쪽보다 더 잘 알거든요. 그리고, 난 여기가 맘에 들고, 여기서 작업할겁니다. 작업실 비용은 출판사 쪽에서 얼마든지 배려해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금세 까먹으신건가? 그럼, 전 이만!”
제이는 뒤돌아 한 손 위로 올려 까딱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간다.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복자 보란 듯이 말이다.
“ 하. 뭐야. 어린 노무시키가... 뭘 또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해! 아씨 심장 떨려라. 황당하네. 저거. 아니, 그럼 진짜 여기서 지내겠단 말이야. 뭐야?”
“ 왈- ”
이 때, 발밑에서 복구 소리 내서 짖고 뭔가 불만 있는 표정으로 쌔하게 노려본다.
“ 아-씨 뭐!!”
괜한 데 화풀이라는 건 저도 안다. 반은 장난으로 복자가 한 손으로 주먹 쥐고 위로 확 올리는 시늉을 하는데 신경질적으로 현관문이 확 열린다. 엄마다.
“ 야! 이 개년! 너 복구한테 뭐하는 짓이야!”
복구는 이때다 싶어 “에엥엥--” 기어 들어가는 소리를 하고...그 모습을 보고 복자는 어이없어 헛웃음만 터질 뿐이다. 이 놈은 개가 아니고 여우야 여우.
“ 엄마, 나 엄마 딸이고, 얘는 개야. 그냥 개.”
“ 알구. 말이나 못하면... 니가 뭐가 이쁜 게 있어?? 재롱 떠는 우리 복구가 훨 낫지. ”
탁탁 털어내는 빨래감 위로 반짝이는 물기가 떨어져 나갔다. 무심한 표정으로 빨래를 거는 엄마 옆으로 복자가 슬며시 다가갔다.
“ 엄마, 왜 그랬어? 진짜 무슨 정신으로? 진짜 철컹철컹할려고 그래?”
손목 두 개를 나란히 붙여서 복자는 엄마한테 보여준다. 엄마의 눈빛이 살짝 닿았다가 다시 콧방귀를 끼며 빨래 더미로 옮겨갔다.
“ 저 사람한테 구백만원 받았다는 말 사실이야? 대체 뭔 정신이야? 삼 개월 있을 건데 ...아아..왜 구백이래? 받을 거면 한 장 더 붙여서 천 받지?”
“ 그건 좀 심하지. 너는 엄마를 뭘-로 보냐?”
엄마는 툭툭 말하면서 털던 빨래감 한 덩이를 복자 얼굴 위로 휙 던진다.
“ 아니, 엄마!!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랑 어떻게 한집에서 살아~ 그건 경우가 아니지. 정말 이건. 당장 받은 돈 주고, 보내!”
“ 놀고 자빠졌네. 미친년. 야! 한 달에 생활비 꼴랑 10만원 내는 너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않냐? 야, 내가 너한테 20만원 줄테니깐 너가 삼 개월 동안 나가 살아라.”
“ 엄마!!!!!”
얼굴이 시뻘개진 복자가 소리를 꽥- 지르고, 엄마는 곧바로 복자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 읍읍읍- 뭐 하는읍-”
“ 조용히 안 해! 이렇게 시끄러우면 저 총각이 어찌 글을 쓰겠냐?? 잉?”
“ 뭘 그렇게 눈치를 봐- "
" 야. 그럼 눈치 안 보냐? 안 그래도 지금 동네 편의점들 때문에 슈퍼 안 되가지고 죽을 똥 싸고 있었는데.. 저런 복덩이가 우리 집에 거저 굴러들어왔는데. 그럼? 눈치 안 봐??!! 엉? 그리고 쟤 눈을 봐라!
얘가 얼마나 괜찮니? 엄마는 딱 보면 알아!”
“ 참- 정말. 답이 없다. 무슨 딱 보면 알아? 딱 봐도 양아치구만....”
툴툴거리면서 복자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홀로 마당에 남은 엄마는 나머지 빨래를 널면서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 저렇게,, 사람 볼 줄 몰라... 을그- 모지란 년...”
- 쾅
“돈돈돈돈... 무슨 돈귀신이 붙었나...”
비 맞은 사람 마냥 복자가 궁시렁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서는 데 복기 방에서 나오는 아버지와 딱 눈이 마주친다.
“ 아-빠?? 거기서 왜..”
아버지 손에 들려 있는 쟁반에 복자의 눈이 부리부리하게 커진다. 아니, 과일 접시라도 주고 오는 거야? 이 집에 상전 납셨네. 상전 납셨어. 숙취 때문인지 골이 띵하게 울리는 게 불편해서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 아아아,,니... 복자야... 그게 아니고,,,”
“ 아빠, 알고 있었지? 엄마. 돈. 그리고 쟤?”
복자 아버지가 겸연쩍은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 아--- 참.. 정말.... 쟤가 뭐 갖다 달래?”
“ 아냐!!아냐!!! 복자야. 아빠가 그냥 커피 갖다 준거야. 진짜다. 짠-하쟎냐.... ”
“ 헐, 짠하긴 뭐가 짠해? 아빠도 참...돈 무서운 줄 모르고 그렇게 큰 돈 턱턱 내는 애를”
“ 저도 사정이 있으니깐 그렇게 큰 돈 주면서도 여기 있으려고 하겠지..안 그러냐?”
복자,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 얼굴 한 번 쳐다보고 “후-” 크게 숨 몰아쉬고 뱉는다. 아, 세상 착한 우리 아부지. 이 상황을 어찌 설명드려야 하나. 명치 끝부터 턱 끝까지 갑갑함이 몰려온다.
“ 복자야- 미안허다...”
“ 뭐가? 아부지?”
“ 엄마한테 너무 떽떽거리지 말어- 엄마 왜 그러는 줄 알잖아? 아빠, 그 사고만 안쳤어도... 엄마 저리 돈돈 안 했을낀데...”
“ 에이, 참 아부지도.. 그게 언제적 얘긴데.. 이제 그만해- 다 잊어. 얼른. 글고, 엄마는 원래 돈돈했어..”
“ 1억이 장난도 아니고.... 어찌 잊냐? 그거를...흑흑”
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그렁거리자, 복자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의 표시를 전했다.
“ 알았어- 알았어. 아부지 그만. 나 이제 엄마랑 안 싸울게. 그니깐 우울한 애기 그만-”
아버지는 눈가에 눈물을 닦으면서, 씨익 웃으신다.
“ 그래그래- 복자야-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혀. 삼 개월 금방 간다. 저 총각 사람도 좋아 보이고..
또 복기 또래니깐, 아들같기도 허다. 아부진 좋아.. 집에 사람 하나 더 들어오니 외롭지도 않고...”
아유- 우리 맘 여린 아부지-
복자, 졌다졌다 생각하며 아버지를 뒤에서 꽉 껴안아드린다.
“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울 아부지 어떻게 이겨~”
복자 아버지는 2년 전 퇴직금을 당겨서 기획 부동산 사기에 휘말려 세상의 쓴맛을 제대로 맛보셨다. 원래도 그랬지만 그 사건 이후로, 숨소리 한번 크게 못 내시고 묵언수행으로 남은 여생을 보내실 것만 같다. 엄마의 돈돈돈타령은 더 심해진 건 당연하고.
두 사람 사이에 돈이 오갔고, 한 푼이라도 아쉬운 엄마 입장에서 돈을 물릴 거 같지도 않았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저 방에 단기 입주를 허락한 손님인데. 뭐 거기까지 헤아릴 여유는 이쪽도 없다. 그래, 석 달이 뭔 대수라고.
“ 그래, 뭐 이렇게까지 된 거. 까짓 출판사 다른 사람들 모르게 잘 지나가면 되지, 뭐. 시간 절약되고, 따로 만날 필요 없이, 글 쓰나 안 쓰나 감시하기도 편하고. 그리 나쁘지만은 않네.”
복자가 결심한 듯 복기방 문 앞에서 똑똑. 두 번 노크한다. 그러나 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뭐지?
방문에 가까이 귀를 바짝 대어보아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 노크해본다. 복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슬며시 방문을 열어본다.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니,
- 타닥타닥타닥
타이핑 치는 소리 경쾌하게 들려오고, 방 불은 꺼진 상태에 스탠드 노란 불빛과 컴퓨터 화면 불빛이 환하게 쏟아진다. 뿜어져 나오는 환한 빛 가운데에 열중하며 타이핑하는 그의 윤곽이 보였다. 거기선 날 튀의 가벼움이 느껴지지 않아 한편 새로웠다.
저기요, 다시 부르자 그제야 듀얼 모니터 위로 올라온 시선과 탁 마주쳤다. 어둑한 배경이라 몰랐는데, 서서히 일어나는 그가 살색 옷을 입고 있다? 아니, 옷이 아니고 살이네. 옷이 없다. 옷이 없어!!!
단단한 가슴팍에 쩍쩍 갈라진 가슴 아래 근육까지
복자의 동공이 번쩍 떠지더니, 어버버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 ,,, 미..미안요.. 미안해요. 진짜. 노크 여러 번 했는데...”
저도 모르게 인중에 땀이 차는데, 정작 그 앞에 선 남자 얼굴은 잔잔하기만 하다.
“ 괜찮은데,,, 바지는 입었어요. 막 집중하면 열나서 벗고 써요. 주변 소리도 잘 안 들리고요.”
“ 아- 그렇구나.. 하긴, 집중해야죠. 당연하지. 음, 방해해서 미안, 아 아니. 미안해요. 아까 내가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서. 그 말 하려고 온 거예요. 계속해요- 아. 그리고 어제 일 고마웠어요. 엄청 힘들었을텐데. 험한 꼴 보셨네요. 미안했어요. ”
“ 얼굴 보고 정식으로 인사해요. 삼 개월이지만, 우리 같이 일도 하고 한집에서 살게 됐으니깐 잘 부탁드려요.”
제 쪽으로 슥 다가운 제이의 손을 바라본다. 복자의 속에선 ‘미쳤어- 미쳤어-’라는 소리가 수백개로 떼창을 하지만, 최대한 티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일이다 일!’ 하면서 뒤돌아 드디어 제이와 마주본다. 그 반반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려고 고개 들어 올리지만, 자꾸 제이의 가슴팍으로 눈이 가는 걸 막는다고 발가락에 힘을 꽉 주었다.
결국, 불에 덴 듯 악수만 하고 도망치듯 제이의 방을 빠져 나간다.
“ 하- 뭐야.... 진짜 귀엽게...”
한 손으로 이마 긁적이는 제이, 방문 쪽을 쳐다보면서 웃으며 혼잣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