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꽃바구니, 그거 먹는 건가요?

아홉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 어- 휴”


벌건 얼굴로 방에서 나온 복자가 손부채질을 하면서 부엌 쪽으로 걸어간다.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안에서 차가운 맥주 한 캔을 꺼내 들었다. 따악. 부르르 거품이 끓어 오르자 자석처럼 입술이 마중을 나간다. 몇 모금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나자 목구멍부터 긴장이 확 풀린다.


픽. 정신을 차리니 웃음부터 나온다. 나, 지금 왜 이러는데. 주책 이다. 김복자. 걔는 얘다. 얘..


( 우성의 집 )


맥주 거품이 보기 좋게 유리잔 위로 걸쳐지고, 그 아래에서 황금색 기포 방울이 퐁퐁 터진다. 길게 뻗은 손가락이 맥주잔을 감싸 쥐고 소파 테이블 옆에 내려놓는다. 우성이다.


주상복합의 스위트층 거실로 드비쉬 ‘달빛’이 잔잔하게 흐른다. 우성의 뒤로 걸쳐진 도시의 화려한 야경이 그림처럼 어울린다. 생각에 잠시 빠져 있는 얼굴에 그윽한 미소가 떠오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조곤조곤 편안하게 말하던 그 모습.

꼬르륵거리는 배를 붙잡고 당황해하던 그 여자가 자꾸만 떠오른다.


생생히 그때의 순간, 그 장면. 우성은 유리창에 비친 웃고 있는 제 얼굴과 마주한다. 아주 생경한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폰이 울리고, 화면 위로 ‘박비서’가 뜬다.


- 전무님, 홍보팀 사보, 말씀하신 곳으로 확정했습니다.

“ 응. 그래.”

- 아. 그리고 내일은 부산 일정이 있으신데..

“ 부산일정. 좀 미루지. 하루 정도만. 가능하지?”

-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의자에서 일어나 남은 맥주를 마저 마셔버린다. 목울대가 크게 울렁거리고 이슬이 맺힌 잔이 텅 비어버렸다.


“ 이거... 위험한데.”

그의 얼굴에 걱정, 설렘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


다시, 전화벨이 울리고 화면에는 재림이라는 이름이 떴다. 화면을 확인한 후, 우성은 폰을 아래쪽으로 뒤집고 연주곡의 볼륨을 높였다.





안국동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복자가 빠른 걸음으로 뛰다시피 걷는다. 11월, 날씨가 꽤 쌀쌀해서 두툼한 카키색 니트 가디건을 여미는 손길이 바쁘다. 회색 벽돌로 둘러싸인 ‘개미출판’ 건물이 바로 눈앞에 보이고, 급하게 입구 쪽으로 쏙 들어가려는데 ‘쿵’ 무언가랑 부딪쳤다. 눈앞에, 검정 가죽 재킷 입은 새벽이 딱 서 있다.


“ 야! 아- 좀. 너는 참”


투덜대면서 새벽이 한 손으로 길바닥에 주저 앉은 복자를 잡아끌어 당긴다.


“ 아~ 씨 놀래라. 뭐야!! ”


복자는 새벽에게 잡힌 두 팔을 빼내며 소리친다.


“ 괜찮냐?”

“ 응, 괜찮아.... 너? 어디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나서 복자는 새벽의 손에 차키가 들려있는 거 보았다.


“ 아, 부산. 좀 늦었네. 백 작가님 북 콘서트 때매. 한시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그럼 간다.”





“ 홍지애씨... 홍지애씨 계신가요.”


퀵 배달원이 거대한 꽃바구니 들고 사무실 안을 기웃거린다. 출판사 사람들 “ 우와~ 뭐야~ ” “ 와~ 홍양~” 하면서 웅성거린다. 구석에서 수줍은 얼굴의 홍양이 삐죽이 손을 들며 고개를 내민다. “ 어머! 전데요”


“ 우올~ 홍양~ 퇴원 기념인거야? 꽃바구니~ 오올~~”


거대한 꽃바구니에는 수국, 장미, 리시안, 카네이션, 스톡이 만발했다. 그 사이로 숨어있는 금빛 카드가 반짝거렸다. 부러움과 호기심에 가득찬 수십개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고 주인공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금빛 카드를 뽑아들었다.


그 때,

“ 김 대리, 나 좀 봐.”


하고 고 팀장 얼굴 삐죽이 나와 복자를 불렀다. 으 하필 이런 타이밍에, 복자는 아쉬워하면서 홍양에게 눈짓을 하며 이따가 꼭 말해줘 하고 속삭였다. 남의 연애는 참 재밌다. 특히 간질거리면서 시작하는 단계는 더더욱 구경할 맛이 난다.


“ 어이어이, 김 대리~ 그 커피 들고 갈 거야?”


더벅머리를 한 장 기자가 씨익 웃으면서 말을 건다. 을그. 아저씨, 콧털 삐져나왔다, 속으로 맴도는 그 말을 꿀꺽 삼킨 복자가 대답했다.


“ 커피. 장 기자님 마셔~”

“ 땡수~ 캬~ 이리 쎈스 있는 우리 김 대리한테는 왜 꽃바구니가 안 올까?”

“ 꽃바구니? 그거 ,,, 먹는 건가요?”

“푸하하, 알고, 여자가 꽃바구니 하나 못 받고 우야노!”


웃음이 터진 장기자의 얼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온 복자가 복화술로 중얼거린다.


“ 장기자. 코에 개미 다리 세 개 있거등요. 뽑아라.”


라고 나지막이 말하고 팀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 가시나. 솔직하네.”


두 사람을 뒤로하고 카드를 천천히 열어본 홍양의 얼굴은 오히려 더 미궁에 빠져 버린 것처럼 표정이 난해하다.


“ 엘-리이베이터?.... 뭐지??



<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기억하죠? 오늘 저녁 7시 삼청동 안뜨레앙에서 보죠. - 민우성- >



(고 팀장실 안)


“ 들었어. 김 대리. 제이한테서. 김 대리 집으로 들어갔다고.”


와인색 실크 셔츠 입은 고 팀장이 노트에 뭔가를 끼적이며 말했다.


“ 아? 네.”


맞은편에 선 채로 복자는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마지못해 끄덕인다. 거 참, 보고도 빠르구만.


“ 김 대리가 불편하겠지?”


고 팀장은 분홍색 뿔테를 한 손으로 치켜 올리며 말했다. 그래, 이건 정상적인 회로를 가진 직장인이라면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다. 까칠하긴 하지만 고 팀장은 합리적인 유형의 인간이다. 복자는 속으로 ‘아싸~ 말 좀 통하겠는데~’ 하는 기대를 품으면서 서서히 불쌍한 표정을 지으려 준비 자세를 취했다.


“ 아는데.... 좀 참아줬으면 좋겠어. 김 대리.”


‘ 이건 아닌데’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날라오고, 복자는 고개를 아래로 숙일 수밖에 없었다. 고 팀장의 설명은 계속된다.


“ 삼 개월이잖아. 어차피 작품 상태 틈틈이 점검해야 하는데...편하게 생각하자고. 그리고 김 대리 부모님도 집에 같이 계시고. 뭐... 남자 여자 뭐 그런 건 걱정할 필욘 없잖아? 그지?”


‘ 남자, 여자 뭐 그런 건? 그런 게 뭔데?? 참- 어이없구만.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까 웃기네. 걱정할 필요 없다는 뜻은 또 뭐야??’


고 팀장의 조근조근한 설명이 왠지 거슬렸지만 그래도 묵묵히 서서 머릿속을 맑게 비우고 있었다.


“ 앗! 그리고 김 대리. 내가 이성그룹 껀 잘 됐다고 했었지? 뚫기 어려운 자리였는데...엉성한 듯해도 종종 야무진 면이 있어. 자기.”


“네에?”


뜻밖의 말에 멍했던 정신이 바뜩 차려졌다. 복자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아니, 그 이성그룹... 그 조인성 그 대머리가? 그렇게 깽판을 치고 가더니 잘 됐다고? 이건 또 뭔 소리래.'


“ 그래서. 자기가 계속 쭉 해줬으면 좋겠어. 원래 잘 되면 이 대리 붙이려고 그랬는데, 그쪽에서 김 대리 맘에 들어 하네. 미팅 잘 하고 왔나봐~여차저차 어쨌든 김 대리도 처음 물꼬를 텄으니깐. 끝까지 가보자고.”


“ 아아니... 팀장님.. 그건 홍양 시키신 거 아니에요??”


“ 홍양, 그 핏댕이를 어떻게 이렇게 큰 걸 다 시키니? 걔는 그냥 서포트 해 줄게. 김 대리도 이번에 큰 거,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어?”


“ 네... 뭐. ”


팀장실 밖으로 나와 손가락으로 머리 양옆을 지그시 눌러본다. 아, 월요일부터 빡친다. 벽에 머리를 잠시 기대고 깊게 복식 호흡을 해보려는 찰나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혜교였다.


< 혜교: 포차에서 너 수거해 간 남자 누구야? 대체?>

< 나: 별거 아니야.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같이 작업하는 작가야.>


< 혜교: 오우~ 요것봐라. 별거 아닌 얼굴이 아니던데...별일 아니면 이제부터 별일로 좀 만들던지.>

혜교가 보낸 문자 읽다가 복자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 별거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그냥 별 거 아닙니다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작업 창을 띄운다. 화면에 비친 복자의 입이 귀까지 걸려있다.





하얀색 워드 화면으로 빠르게 찍히는 활자들. 정오가 지나자 창가로 쏟아지는 햇빛이 꽤 강하다. 아래로 뻗친 기다란 속눈썹이 반짝하고 빛나고, 화면을 응시한 갈색 눈동자 색깔이 더 오묘한 빛을 띤다.


징---


폰 진동음이 다시 울렸지만, 제이는 확인하지 않았다.


징---


전화 끊겼다가 조금 후 다시 울리고, 이쪽에서 일부러 받지 않는다는 걸 상대는 알고 있는 듯했다. 책상을 울리는 진동음에 신경질이 묻어났다.


“ 아이 - 씨...”


결국 작업을 멈춘 제이가 폰을 낚아챘다. 화면 위로 떠오른 ’재림이‘란 이름을 쳐다보는 시선이 싸늘하다.



( 삼청동 안쪽, 안뜨레앙 레스토랑 근처)


“ 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홍 양이 레스토랑 맞은 편 길가에 서 있다. 중요한 것을 다시 체크하듯이 큰 눈을 부라리며 폰을 확인한다. 인터넷에 검색된 이성그룹과 우성에 관한 기사들이다.


“ 맞는지, 아닌지만 확인해보자. 정말.. 이 민우성이 그 민우성이겠어?”


홍 양은 뭔가 결심했다는 듯이 검정색 트렌치코트 벨트를 풀었다가 다시 꼼꼼히 묶는다. 굵게 웨이브 된 긴 머리를 가다듬고 어깨 위로 반씩 나눠서 걸친다.


“ 손님, 예약되셨습니까? 성함이?”


고풍스럽게 꾸며진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자, 유니폼을 입은 매니저가 부드럽게 묻는다.


“ 홍지애거든요.”


“ 아~ 저를 따라와주십쇼.”


매니저는 정원 테라스 쪽과 연결된 공간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서 너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세팅이 되어 있는 곳은 한 곳 뿐이었다.


그곳에 잔잔한 체크무늬 소재의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말없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혼자 앉아있었다.

분명히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꽤 설레어 보인다.


“ 민 우 성 씨?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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