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한 지붕 아래서 살자고?

일곱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택시 밖으로 잔뜩 힘주어 짠 치약처럼 복자가 스르륵 쏟아져 나온다.


“ 기사님, 감사합니다.”


제이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5 만원짜리 두 장을 기사한테 건넨다. 그러자 잔뜩 굳어져 있던 기사의 얼굴이 확 풀리더니, 누그러진 목소리로 한 마디를 보탠다.


“ 어휴, 정말 여자 친구 술 안 마시게 하슈. 나 아까 대교 위에서 진짜 차 세우고 싶었어.”


짙은 어둠이 얽혀진 주택가를 노란 택시가 유유히 빠져나갔다. 아주 큰 일을 치르고 나온 사람처럼, 제이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곤 뒤돌아 바닥에 주저앉은 복자를 일으키는데, 갈색 눈엔 웃음이 걸쳐 있다. 장난스러움과 투정이 섞인 목소리가 뒷따랐다.


“ 뭐야? 내가 그쪽 남자친구라는데요.”


초인종 소리에 문이 열린다. 외간 남자 위에 엎어져 있는 딸을 보자, 엄마의 입에서 온갖 욕들이 복화술로 터진다.


미친년. 미친년. 진짜 제대로 미친년. 망신 망신 이런 개망신.


엄마의 욕은 곧바로 등짝 스매싱으로 변할 찰나였다. 두툼한 손바닥이 공기를 갈랐고, 뒤에 서 있던 아빠가 앞으로 곧장 튀어나와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의도된 건지, 실수였는지 복자를 들쳐 맨 제이가 방향을 요리조리 틀어 쏟아지는 매를 다 맞았다.


어어, 남의 귀한 아들내미 때리고 있다니까. 그만해요. 을그 저 썩을 년. 아니 총각 비켜봐봐. 내가 저년을 오늘 그냥 ... 정작 그 손바닥이 향하는 주인공은 난리 통 속에서도 세상 모르게 입을 헤 벌린 채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뱅글뱅글. 별 소득 없이 다들 마당 한가운데서 강강술래를 돌다가 일순간, 복자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제 등 뒤에서 기척을 느낀 제이가 고개를 돌리려 하는 찰나, “우욱- 우욱-” 신호가 들린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불안한 기운을 감지하고,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 안 돼! 안 돼! 안 돼!!!!!!”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엄마는 더할 나위 없이 차분한 얼굴로 복자를 양손으로 떼어 던져버렸다. 그 익숙한 방향의 끝에는 개집이 있는 마당 한쪽 구석이었다.



거기까지도 받아들이기 힘든 얼굴인 제이의 눈이 다음 장면에는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복자가 개집 앞에서 시원하게 속을 비우고 있는 게 아닌가. 제이의 얼굴은 이제 놀랍다 못해 경악에 가깝다는 표정이다. 개 집 안에서 느릿하게 나온 ‘복구’는 뭐 그렇게 놀라냐는 눈빛으로 제이를 스윽 올려다보더니 그 발밑에서 웅크려 눈을 껌벅인다. 복구는 복자 집에서 키우는 열 살짜리 흰색 잡종견이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방구석에서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한 복자가 서서히 눈을 뜬다.


“ 아---- 골아...”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침대 가에서 엎드린 채로 간신히 일어난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에 퉁퉁 부은 눈, 아직 술 냄새가 배여 있는 몸 여기저기엔 흙 자국이 남아있다.

조금씩 찢어진 필름처럼 기억나는 어제의 일들...


혜교랑 기분 좋게 포차에서 낮술을 걸쳤고, 이런저런 일진이 사나운 날이라 연거푸 들이켰다. 그러다 선을 넘은 거 같은데 암흑 속에서 미끈하고 반반한 얼굴이 보였다 사라진다. 제이? 그 제이! 맞네. 화장실 양아치, 아아니 그러니까 출판사에 저벅저벅 들어온 걔. 같이 택시를 기다리고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집까지 그리고 업혀서 ... 그 다음 아... 이제 어떡하냐.


“미쳤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생각나. 젠장.”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제 머릿속에서 복구 집 앞에서 뭔가를 열심히 하던 선명한 제 뒷모습까지 똑똑히 생각나고야 만다.


“으아아아악!!!”


헝클어진 머리칼을 모두 뽑아버릴 기세로 복자는 새된 비명 소리를 지른다. 차라리 필름이 완전히 끊겨서 암전이 된다면 차라리 낫겠다. 이건 뭐 복구 불가능한 상태가 자꾸만 구간반복으로 떠오른다. 어. 그래. 어제의 사나운 일진이 오늘까지 찾아와 아직 우리 이야기 끝난 거 아니라고 한다.

하루 보고 말 양아치가 아니라, 어찌됐든 프로젝트 기간 동안에는 얼굴 마주쳐야 할 회사 사람이나 마찬가지인데. 남자 화장실에 이어 낮술 먹고 주정에 토하기까지. 뭐 이거는 거의 가족도 절레절레할 상황이니. 복자의 입에서 나오는 한숨이 끝이 없다.


그때, 벌컥 방문 열리면서 싸한 기운이 방 안으로 퍼졌다. 뒷통수가 따가워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엄마의 살기 어린 눈이 있다.


“ 나.와.서. 밥.쳐.먹.어.”


복자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산발한 머리에 퉁퉁 부은 얼굴로 팔다리를 휘젓거리며 나온다. 그리곤 다음 행동을 기계적으로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거실 소파 옆 탁상 테이블에서 티슈 한 장을 뽑아서 코 흥- 한 번 풀고, 반 접어서 눈곱 양쪽에 뗀다. 그 다음으로, 정수기에서 물 한잔 뽑아 마시고 "끄-억” 트름을 한 후, 식탁 의자에 두 발을 올려 양반 다리를 척하고 앉는다.

자, 이제 찬찬히 생각이라는 걸 해보자 하는데 뭔가가 싸늘하다.

복자가 식탁 앞에 마주 앉은 이를 다시 한 번 쳐다본다. 잘못 본 건가. 눈을 감았다 뜬다. 크게 떠본다. 심하게 달린 음주 뒤끝이 시력 장애가 아니라면 저건 제이다. 뭐? 다시 고개를 돌려 보아도 제이다. 복자가 불에 덴 듯 식탁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 으악으악!!!! 뭐야뭐야뭐약!!!”


“ 미친-년, 오늘 생일이냐? 쇼를 해라..쇼를..”


엄마가 김이 올라오는 국그릇을 제이 앞에 올려준다. 그걸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서 숟가락을 드는 남자는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제이가 맞다.


“ 딸아, 앉거라.”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복자를 불쌍히 여기는 아버지, 힝 아부지. 비빌 언덕을 보니 힘이 솟는다. 어쨌든 여기는 우리 집이다. 쫄 필요 없어.


“ 아빠, 뭐야? 왜 이 사람이...?? 야! 아아아니, 제이씨? 뭐예요?”

기껏 힘주어 말했는데 이쪽에서 별로 타격감이 없다. 오히려 실실 웃으면서 밥 한술을 입에 넣는다.


“ 김대리님, 저 여기 석 달 하숙하기로 했어요. 남동생 방에서..”

“ ㅁ 뭐? 하숙?”

“ 복기. 제대하려면 아직 1년 넘게 남았는데... 그럴 수도 있지. 왜? 내 집인데 니 허락 받아야 하냐.

그리고 너희 회사 사람인데 뭐가 의심스러워. 신원 보장도 되는데... 어서.. 앉아.. 그만 까불고..”

“ 엥? 엄마 아니,,, 지금...그래서.. 한 지붕에서 지금 같이 살자고?”


우리 지금 서로 한국말로 대화하는 거 맞지. 복잡하고 황망한 눈으로 엄마를 올려다보다가 그 젓가락이 계란말이를 집어 제이의 밥 위로 올라가는 걸 목격한다. 이건 무슨 서비스야라고 외치기도 전에 움찔한 제이가 고맙습니다 하면서 덥썩 받아먹는 게 먼저였다. 복자가 술에 쩔어 정신을 잃은 그 몇 시간 동안 저 양아치가 김 애경씨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진 모르겠지만, 대단히 오묘한 상황이 복자네 식탁에서 연출되고 있다.


“ 진짜... 왜 이래. 뭔 일 있었어?”


궁시렁거리며 자리에 앉은 복자가 붓어국을 한 숟가락 뜨려고 하는데 갑자기 국그릇이 홱 사라져 버린다.


“ 갑자기 주기 싫어졌어. 너 그냥 맨 밥 먹어.”


엄마는 일어나 국그릇을 그대로 싱크대에 버려 버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국을 후루룩 입대고 마셔버린다. 아빠, 옆에서 눈치 보면서 동시에 복자를 안타깝게 쳐다본다. 네네, 이래야 김애경씨죠. 복자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한쪽 무릎 다리를 의자 위에 올리고 “알겠어요~ 알겠어요~예예” 하면서 생수를 밥 위에 부어 버린다.


원수. 화상. 을그 저 놈의 딸내미. 물에 만 밥도 꾸역꾸역 맛나게 먹는 복자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 미친년. 너 또 어제처럼 술떡 돼서 들어오면 밥도 없을 줄 알어!!!”


복자 입 안에 밥 가득 물고 “ 알았어~ 알았어. 이제 그만혀~” 웅얼거리자, 식탁 위로 흰색 밥풀들 파바박 튕겨 나온다. 제이, 소세지 반찬 물고 밥 떠먹으면서 재미있다는 표정을 숨기지를 못한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복자 아버지가 민망한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 허허, 작가님... 미안해요... 우리 집이 매일 이런 건 아니야..”


제이 스윽 웃으며 따뜻한 눈으로 복자 아버지께 입모양으로 말한다.

(괜찮아요!)


두 사람 알콩달콩 대화하는 모습을 옆 눈으로 스윽 쳐다보던 복자는 혼자 고개를 저였다.


‘ 일단 밥 먹고 나서 정리하자. 이 양아치가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데??!!’





거실 소파에 앉아 주변 눈치를 살피는 복자.


엄마는 설거지 중이고, 아버지는 제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 tv 예능 프로그램에 집중하고 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복자는 제이 뒤로 슥 다가가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밖으로 나오라고 신호를 준다. 마치 군대에서 제대하고 돌아온 이 집 아들처럼 앉아 있던 제이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따라 나온다. tv장 위에 올려진 가족사진 속 복기의 얼굴이 제이의 얼굴로 겹쳐진다. 기가 찰 노릇이다.


“하- 부모님 계시면 괜히 시끄러울 거 같아서 나와서 얘기하자고 했어요. 미안해요..”


제이는 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기댄 자세로 고개만 끄덕인다.


“ 제이씨... 고실장님한테도 들었겠지만, 우리쪽에서 최대한 원하는 쪽으로 작업실 구해 줄 거예요.


어제는 저랑 연락도 잘 안돼서 그런거니깐... 그렇다치고..오늘 바로 알아볼께요. 어젠 제가 좀..”


“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김대리님. 나 여기 좋아요. 맘에 든다고요. 그리고 어제 바로 석 달 비용 미리 드렸어요.”


“네에에에에?? 누구한테요?”


“ 대리님 어머니한테요.”


복자, 두 눈 질끈 감으면서 오늘 아침 식탁 위에 전해지던 계란말이를 떠올려 본다.


빠직 -

그래도 어림도 없지.

어쨌든 아무렇지 않게 수습하기 위해 복자는 최대한 미소 띤 얼굴로 최대한 상냥하게 물어본다.


“ 석.. 달 비용요? 참. 엄마도.. 근데, 그게 얼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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