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밑으로 휴지 전해주는 사이

여섯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 물 좀 마셔라, 을그 요것들아...”

포장마차 주인아줌마는 차가운 물 두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다른 테이블로 주문받으러 뛰어간다.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는 혜교는 이제 거의 술이 깬 상태다.


“ 아~ 정말,, 야 김복자!! 야야, 일나봐라!!”


복자는 입 안에 당근 스틱을 문 채로 테이블에 엎드려 거의 기절한 상태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오른쪽 머리카락 끝은 초장 범벅이다.


“ 김... 복자 ??”




어딘선가 꽃가루를 날리고 조명발을 쏘아 올리는지, 엄청난 아우라를 내뿜으며 제이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뽀얀 얼굴에 짙은 눈썹 아래로 갈색 눈동자를 바삐 누군가를 찾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이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혜교는 귀 뒤로 머리카락을 조신하게 쓸어넘긴다.


“ 어맛!! 누.. 구세요? 혹시 김 복자 찾으러 ”


어쩔 수 없이 사투리가 묻어나지만 혜교는 최대한 애교스럽게 제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 앗! 사장님. 여기 얼마죠?”


순간 혜교의 통통한 얼굴이 빡 찌그지면서 다문 잇새로 힘이 들어간다.


“ 저는 복자 친구덴요. 혜.교. 송혜교.라고 해요.”

“ 아-.”


앞 사람의 얼굴이 무안함으로 붉으락푸르락 변해도 별 상관하지 않는지, 제이는 테이블에 쓰러진 복자의 입에서 당근 스틱을 빼주는 일에만 집중할 뿐이다. 큭, 결국에 웃음이 터져 나온 제이는 이번엔 머리에 묻은 초장도 휴지로 세심히 닦아준다. 지금 당장 지구가 무너져도 반드시 끝내야 하는 마지막 임무처럼 말이다.


‘ 이런 사람이 출판사에 있으면, 분명 이 가시내가 얘기했을텐데...’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혜교의 눈이 가늘어지다가, 갑자기 동그랗게 커졌다. 껌벅껌벅. 지금 제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이 실제인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다. 모델 같은 기럭지를 뽐내던 존잘이 갑자기 한쪽 어깨에 복자를 턱 둘러매는 게 아닌가.


“옴마마마마.. 근데 그 쪽 복자랑 회사서 많이 친하신가봐요?”


제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답한다.


“ 음, 화장실에서 밑으로 휴지 전달해 주는 그 정도요? 그렇게 막 친한 사인 아니죠.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그 한마디 남기고 제이는 한쪽 어깨에 포대 자루 마냥 복자를 대롱대롱 매달고 사라졌다. 유유히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혜교의 눈빛이 부러움으로 드글거린다.


“ 가시내. 인생 참 거칠게 산다. 저런 애한테 휴지 달라 그래? 내 친구지만... 참 너도 기차게 미친년이다.”



&


도시의 밤은 반짝이고 시끄러우면서도 번잡하다. 손님을 태운 택시 서 너대가 지나가 버리고, 그나마 드물게 보이는 빈 택시도 잘 서지 않았다. 도로 턱에 걸터앉은 제이는 한숨을 돌리고 있다. 그 바로 옆에 비스듬히 복자는 전봇대에 기대어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힘이 빠지는 듯 자꾸 스르륵 바닥에 누우려 한다.

“ 야- 너 조인성이라고 아냐? 그 새~퀴,,,, 바퀴 벌레 같은 새퀴. 대가리 반질반질 해가지고.... 지이- 랄 스러븐 새~뀌이...”


“ 어이, 김 복 자 대 리 님... 와 아까 낮엔 누나라고 부르겠다니 문자도 쌩까더만, 이젠 드러누우시네. 속도 너무 빠른 건 아닌가?”


얼굴에 번진 미소가 장난스럽다. 제이는 땅바닥에 제대로 자리를 깔려는 복자를 어깨 위로 다시 둘러맸다. 어림없다는 듯 바로 옆으로 택시 두 대가 쌩하고 지나쳐 버렸다.


“ 아 참, 기사님들. 속 참 좁으시네들.”


“ 그래, 나 쪼맨한 출판사에 다닌다. 왜? 그게 어때서? 여기도 한 때는 잘 나갔다는 말씀이야? 이거 왜 이래? 너네는 백날 천날 잘 나갈 거 같애? 썩어 죽을 것들. 어디서 사람 같잖게 무시해. 못된 놈들. 쪼다시키들.”


술 냄새 잔뜩 풍기는 복자의 넋두리를 등 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는 제이. 말간 소년 같은 얼굴 위로 어른스러운 미소가 걸쳐지고 고개를 끄덕이면 함께 받아쳐 준다.


“ 그래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다 못된 놈들이구만.”


그러던 중에 택시 한 대가 다행히 두 사람 앞에 멈췄다. 한줄기 빛처럼 멈춰선 택시 앞에서 복자가 갑자기 손을 휘저으며 두 발을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 누구랑 싸우기라도 하는지 제이의 얼굴을 때리고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헝클어뜨린다. 자기, 왜이래 정말. 어색한 대사를 읊으며 제이는 기사님의 눈치를 살필 뿐이다. 하얀 티셔츠가 진땀으로 축축이 젖어 들었다.



그때였다.

8차선 도로 위로 신호가 바뀌고 그 뒤로 고급 흰색 세단이 지나치는데 창문 밖으로 우성의 놀란 얼굴이 비친다.


“ 허허, 여자 친구가 술이 많이 취했나 보네요. 남자친구 꽤 고생하네요.”


운전대를 잡은 채 스치듯 말하는 이 실장 뒤로 우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 잠시 차 멈춰봐요. ”


이 실장의 핸들이 급히 오른쪽으로 꺾이고 차는 곧바로 길가에 세워졌다. 차에서 내린 우성은 복자가 탄 택시가 바로 떠나는 모습을 선 채로 바라보았다. 반가움과 서운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에 정우 스스로도 당황스럽기만 하다. 뭐지 이건..


도시의 조명이 우성의 콧날 위로 부서지고,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차에 올라탔다. 때때로 모든 타이밍에 먼저 일 순 없다고 쓴웃음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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