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이런 날엔 낮술을.(feat. 송혜교)

다섯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홍보팀 사무실 안)


“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시예요? 몇 시? 당신들, 개민지 매민지, 지금 제정신이야?”

조인성 팀장으로 추측되는 자가 고함을 치며 나왔다.


‘... 이건 좀 심하잖아.... 그 이름. 이름이 잘못한 거냐? 얼굴이 잘못한 거냐? ...’


팀장의 가슴 한복판에 매달린 사원증에는 지금보다 조금은 어려보이고, 조금은 숱이 더 남아있는 머리로 정면을 부담스럽게 쏘아보는 ‘그’가 있었다.

사진 아래엔 ‘조인성’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진짜 ‘조인성’이다!

‘ 성도 왜 하필이면.....‘조’가냐... 시끼... 참.. 적절하네.’


복자는 저도 모르게 “큭”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 아니... 지금 웃음이 나와요?”

이마 위로 툭 튀어나온 핏줄이 점점 진격하더니 꼭대기에 비어 있는 언덕까지 닿아 있었다.


“ 어..죄송합니다. 팀장님.. 오다가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 엘리베이터는 뭔 엘리비에터야?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이예요? 엉?”

‘ 말이 짧다.. 인성아.. 노안이면 아무한테나 막 막말해도 되는 거냐?.. 그리고 엘리비에터가 뭐냐? 대기업 홍보팀장이란 놈.. 수준이.. 아효’


둥그런 언덕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몇 안 남은 모발들이 조인성 팀장이 얼굴을 흔들어 될 때마다 하늘거렸다.

이를 꽉 물고 복자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애써 상냥하게 말했다.

“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다음부턴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조팀장님...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 그럼, 샘플 먼저 보시..”

“ 샘플은 무슨 놈의 샘쁠? 그쪽이랑 앞으로 볼일 없어욧!”

“ 네????”

“ 나가요. 지금 점심시간이야. 비켜요. 비켜.”

조팀장은 복자가 내미는 샘플 더미를 손으로 쳐내고, 어깨로 그녀를 세게 밀치며 나갔다.

무방비 상태로 있던 복자는 바닥에 흩어진 샘플 더미들과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부서 안에 있던 다른 홍보팀 직원들 중 남자 몇 명은 호들갑스럽게 조팀장의 비위를 맞추었다.


“ 아~ 팀장님. 열 내지 마세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랍니다... 오늘 점심 뭐가 좋을까요? ”

“ 아, 어제 팀장님 팀장모임으로 달리셨으니깐, 오늘 해장국 어떻습니까? 시~~~ 원한 콩나물 해장국,,, 얼~큰 한 거. 어떻습니까?”

“ 으흠~ 콩나물 해장국? 속이 좀 허한데~?”

“ 아~ 역시 해장국은 선지죠? 선지! 제가 잘하는 데 압니다. 가시죠!”

“ 흠흠, 선지.. 거 괜찮네. 어디서 보도, 듣도 못한 출판사 나부랭이가... ”

“ 아하하. 팀장님! 팀장님! 스마일! 스- 마- 일”


목에 힘을 주고 뻣뻣하게 걸어 나가는 조 팀장 주변으로 그의 쫄개들이 뒤를 좇아 나갔다.

이 광경을 어이 없이 보고 있다가 주저앉은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와- 하. 최고다. 최고야. 아~ 선지... 이런 선 - 지랄 같은 ....것들이... ”


머리를 쓸어 올리며 일어서는 복자 옆으로 방금 전 엑셀 작업하던 여직원이 다가왔다.

“ 괜찮으세요?”

“ 아하... 네.. 고맙습니다. 제가 늦어서 그런 걸요. 뭐. 샘플 팀장님 책상 위에 놓고 갈 테니깐 말씀 부탁드릴께요..”

“ 아... 네... 그런데 기대는 너무 마시구요.”


복자는 이제 갓 스물 몇 살쯤 되어 보이는 여직원에게 어색하게 청탁 인사 비스무레 한 것을 하고 뒤돌아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회의실 안에서 급하게 울리는 전화소리,,,

여직원 전화를 받는데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떨면서 말한다.


“아..아.. 네.. 홍보팀입...네.. 팀장님 지금 점심 드시러 나가셨..”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내림 버튼을 눌렀는데,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에 직원들이 꽉 타고 있다.

‘ 아.. 점심시간이랬지...’


복자는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양해의 눈빛을 보내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안타요?.... 내려갑니다.”


복자는 비상구 계단 문을 열고 13층부터 터덜터덜 내려갔다.

13층,

12층,

11층,

10층,

9층..

잘 참는다 생각했는데 9층에서 ‘툭’하고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다시 ‘투두둑..’

“ 에이씨... 왜 우냐? 너도 참... 참 울 일도 쌨다.”


계단 턱에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았다. 세상 시크하게 앉았는데, 눈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는 건 처량했다.

“ 스읍--습습- 아 콧물 씨... 눈물보다 콧물이 더 나와..짜증나..”


가방을 열어 휴지를 찾아본다...


‘ 꼭 이럴 때 휴지도 없어요... ’


화장 따위야 뭉개지든지 신경쓰지 않고, 그냥 소매를 쭉 뽑아서 눈물, 콧물을 슥슥 비벼버린다.

눈이 빨갛고,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 꼬르르르르윽 , 꼬루루우우우우루룻


잊고 있었던 익숙한 멜로디가 배에서 새어 나왔다. 아, 진짜. “풋”하고 웃으며 자신의 배를 내려다본다.

“와- 넌 눈치 없어서 좋겠다..”

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어버린다.

‘ 그래, 뭐 이런 일 한 두 번이야? 먹자 먹자! 맛있는 걸로.근데, 그 남자.. 우성인가? 거기서 잘 나왔겠지? 오늘 정말 천국갔다 지옥갔다... 피곤하다~ 한 5년은 댕겨서 늙은 거 같네.’

9층,

8층,

7층 .....


(비슷한 시간, 회사 로비)


회사 정문 앞두고, 구내식당 이용하지 않는 직원들 로비 밖으로 나가는데 그 틈에 조인성 팀장과 그 쫄개들 뒤따라 걸어간다.

- 띠리리리링


조 팀장은 무심결에 전화를 받더니 곧바로 얼굴이 굳어버린다.

“ 넷!! 제가 조인성 팀장입니다!! 아~ 네 네 네네”


연신 허리를 굽히는 조 팀장의 광활한 이마 위로 땀방울이 맺혔다.

(포장마차 안)


둥근 포장마차 파란색 테이블.

복자 혼자 앉아 소주를 마시다, 급하게 뛰어오는 쪽 보고 반가워하며 손을 팔랑거린다.


“ 아, 왔어??!! 놀랬지? ”

“ 알고, 가시나... 니 이 시간에 출판사 안 있고 여기 있어도 되나? 와 그라는데- 니? 폰은 또 왜 끄고 다니노 ?? 을그-”

“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폰이 배터리 나갔어.. 암튼 너 장사해야 하는데, 불러서 미안 크크, 미안해잉~”

송혜교는 복자의 오래된 친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부산에서 올라와 지금까지 혜교는 복자의 가장 든든한 소울 메이트다. 처음부터 송혜교란 이름이 예뻐서 한 번에 듣자마자 뇌리에 딱 박혀버렸다.

혜교는 호주머니에서 이동식 충전지를 꺼내서 복자 폰을 연결한다.

신기한 듯 복자는 넋 놓고 이 광경을 바라보다, 혜교 앞에 놓인 잔에 소주를 따른다.


“ 와~ 그건 뭐냐?? 충전하는 거야? 우와”

“ 복자야,,, 니 어느 별에서 왔노? 이 아이티 시대에! 남들 앞에서 그래 묻지 마라.. 쪽팔린다잉...”

“ 혜교야?”

“ 와?”

“ 송혜교!”

“ 와 자꾸 부르는데요... 김복자!”

“ 니가 참 좋다. 나는. 너가 참 좋아....”

“ 알고~ 우리 복자 오늘 많-이 힘들었는 갑네. 복자씨. 한 잔하자, 마.”

“ 그래그래. 마시자 마셔!”


둘 다 소주잔을 부딪치고, 입 안에 한 번에 아낌없이 털어 놓았다. 옆으로 계란말이, 닭똥집, 조개탕 안주를 들고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가 한 마디 거들었다.

“ 알고- 오랜만이네... 이 깻잎 두 장들..”

“ 흐흐 아주머니, 오랜만”


복자가 양손을 큰 반경으로 허우적거리면서 비음을 섞는다.


“ 아줌마, 갈수록 이뻐진데이.... 우리 몰래 연애하는 거 아이가? 써비스 떡볶이 콜~”


옆에선 혜교가 부담스러운 포즈로 사랑의 총알을 쏘며 애교를 떤다. 아주 환상의 바퀴벌레들이다.

“ 알았어, 알았어. 그래 콜이다 콜! 매일 밤마다 떡볶이 먹으러 온 고등학생들이 언제 자라서 이렇게 낮술도 쳐 먹고... 참, 세월 빠르다. 빨라 ”

“ 역시 짱짱!! 아줌마 알제? 3인분 같은 1인분-!!”


포장마차 아줌마 뒤꽁지에 대고도 혜교의 애교는 멈출 줄 몰랐다. 소주 한 잔을 더 들이킨 후, 혜교가 폰을 꺼내 습관처럼 인터넷 포탈 사이트를 연다.


“ 와 - 이것 봐라. 이것 봐. 또 내가 검색어 1위네.”


혜교는 보던 폰을 뻗어 복자에게 보여줬다.

“ 어? 그르네. 또 드라마 찍는대?”

“ 그른갑네.. 보~까... 옴마옴마,,, 조인성이랑 찍는다. 대박. 옴마~ 나 조인성 너~무우 좋은데...송혜교랑 조인성, 너무 어울리지 않니?”


숟가락으로 ‘조’개탕 국물을 퍼먹고 있던 복자,

갑자기 입맛이 탁 떨어진 듯 숟가락을 테이블 위로 던져버렸다.


“ 야! 스타피! 그만. 거기까지! 앞으로 조-조.. 내 앞에서 그 말 꺼내지 마.”

.

.

.

앉은 자리에서 두 어 시간이 더 흘렀고, 테이블 위에 병들이 어지럽게 세워져 있다. 복자는 머리를 자꾸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흔들거리고 있다. 벌개진 혜교는 추가로 나온 닭발 접시를 보다가 닭발 위에 젓가락으로 쌈장을 찍어 정성스럽게 네일 아트 중이다.


- 라라라라,,라라라라


“ 어? 이거 무슨 소리지?? 앗. 전화왔다. 김복자. 고팀장?! 고팀장!! 야야야!! 김복자 정신 차리고 전화 받아!!”


혜교는 폰을 복자 귀에 갖다 대주고...


“여- 보세요?”

- 어, 김대리! 밖이야?

“ 네.. 밖-이입니다.”

- 전화 왜 이렇게 안 받았어? 연락 엄청 했는데...음, 암튼 너무 수고했어. 대신 간 건데도 잘 처리하고, 이성 쪽 규모 커서 사실 포기하는 마음으로 홍양한테 시킨 건데 차라리 잘 됐네. 오히려 김대리가 간게.. 아무튼 오늘 수고했으니까 거기서 바로 퇴근하고,,,홍양은 위경련이었데.. 괜찮다고 하드라... 김대리.. 김대리?? 듣고 있니?


“ 뉘예...뉘예.....”


- 암튼 주말 푹 쉬고 월요일날 보자고. 앗! 그리고 내가 제이한테 자기 집...

불안하게 흔들리던 고개가 그대로 의자 뒤로 넘어가고야 말았고, 벌개진 얼굴이 찢어질듯 소리쳤다.

“ 복자야!!!!!”


- 김대리? 김대리!!!

혜교와 포장마차 주인아줌마 둘이서 이 악물고, 힘 합쳐 복자를 바로 일으켰다. 그 난리법석 속에도 복자논 홀로 편안하게 눈 감고 숙면에 빠져 버렸다.


- 라라라라,,라라라라

다시 복자의 전화기가 울리고, 얼굴이 시뻘게진 혜교가 전화를 대신 받았다.


“ 여보세요?”


- 야! 김복자... 집에 손님 찾아왔다. 너랑 같이 일하는 작가라는데.


따다다닥.. 속사포 같은 복자 어머니의 말씀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느 타이밍에 끊어야 하는지 고민고민하던 혜교가 큰 결심을 먹은 듯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본다.


“ 어머니.. 저 혜교예요.....”

- 잉? 혜 교? 혜교구나..... 그럼 복자는?

“ 아... 지금 복자가...”

- 알고... 또 꼬알라냐? 또 떡 됐어?? 아효~이놈의 화상..... 같이 마셨구나! 을그~ 증말...이 대낮에.... 정말....

“ 제가 .... 제가 어머니...”

자꾸만 또박또박 말하려고 하는 데도 헤교의 혀가 뒤엉켜 발음이 옆으로 샌다.

- 거기 어디야? .... 아 그래요? 알고~ 고마워요~ 여기 같이 일하시는 작가분이 그리로 가신다고 하니깐, 너네 어디 가지 말고 거기 딱 있어..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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