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오늘 하루 참 길다.

세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고팀장의 방 안)


물방울 모양의 원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복자와 남자가 꽤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 김 대리, 인사해. 이쪽은 제이. 제이? 이쪽은 우리 출판사 김.복.자 대립니다.”

“ 풉!! 읍.. 아.. 죄송합니다. 김. 복. 자 대리님.”

‘ 이 얌통머리 없는 어린 노무 시끼.... 그래 웃어라 웃어. 너 같은 놈 웃으라고 내 이름이 있다.. 그래..실컷 웃어라.’


제이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복자는 이 유치한 반응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깔끔하고, 담백하게 인사를 건넸다.

“ 아..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 대립니다.”

“ 정말 반가워요?”

“ 아하하.. 그럼 처음 보는데 반, 갑, 죠.”

‘ 와.. 이 시끼 이거 뭐야.. 진짜.. 아 속에서 열불나..’


복자는 스물스물 올라오는 열을 참고, 이를 앙 다물고 대답했다.

때마침, 고 팀장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입을 열었다.


“ 자자자, 앞으로 잘해 봅시다. 제이가 요구하는 조건이랑 우리가 제시하는 부분,

조정해서 계약서 작성했습니다.

최대한 저희 쪽에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수정되었는데...

이메일로 검토하셨죠?”

“네,, 고 팀장님. 좋습니다.”

“정말입니까? 제이? ”


“ 네. 작업..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제이는 옆에 앉아 물잔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 복자를 매우 흥미롭게 쳐다보며 말했다.


- 쿵


‘ 뭐야? 갑자기 놀라게...’


제이의 시선을 느낀 복자는 당황했지만,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고 팀장은 그런 두 사람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 아무튼... 같이 작업하게 돼서 매우 기쁩니다. 기간은 3개월. 작업 스타일은 작가 위주로. 작업환경도 마찬가지 작가가 원하는 곳으로. 최대한 지원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김 복 자 대리님. 잘 해보자고요. ”


제이는 복자쪽으로 고개를 돌려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


‘ 오웁,, 쉣,,,,, 모하자는 거야? 이 치-즈스틱에 마요네즈 범벅된 표정은..’


복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좋아요! 그럼 전 이만... ”


‘ 신인 작가 주제에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거야? 뭐야 대체... 저 재수탱이는..’

문밖까지 나가는 제이를 배웅해주는 고 팀장을 바라보며, 복자는 지금의 상황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아니, 팀장님..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예요? 도대체 저런 애송일... 왜 그런 파격적인 대우를 해줘야 하는 거예요? 혹시 생긴 것 때문에, 아니..여기가 무슨 연예인 뽑는 기획사도 아니고..”


“ 풋.. 왜 그래? 김 대리? 제이, 잘 생긴 건, 인정하나보네..”


“ 아아아니,,, 팀장님. 그러니깐 제 말은 그게 아니라...”

“ 알아, 알아. 김 대리. 이유는 자기가 말한 것처럼 우리 회사가 어려워서야. 그래서 우리는 제이가 필요해.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제이 작품.. 대박이야. 그리고 제이 자체가 대박이고... 그렇고 그런 소설 나부랭이나, 평범한 작가들이랑은 차원이 달라...”


“ 그게 ... 무슨 말이예요..?”


“ 자기도, 제이 작품 읽어보면 곧 내 말 이해하게 될 거야. 그리고 작품 출간되기 전까진 내용 보안 철저히!! ”


“ 근데.. 팀장님.. 세상 사람들이 전부 알만한 사람이라는 건 무슨 뜻이세요? 나는 얼굴 봐도 모르겠던데....”


“ 흠... 여기서 전부 다 말할 수는 없고... 김 대린 이정도만 알아둬. 좀 피곤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정도만... 평범하게 자라질 못했어. 그래서 보통 세계에 적응하기가 좀 힘들 거야. 김 대리가 좀 도와줘야 돼.”


“ 하,,, 그런 애가 왜 글이나 쓰고 있대요? 참.... 걔 혹시 외계인이래요?”


고 팀장의 오른쪽 눈썹이 뾰족하게 위로 올라가며 표정이 굳어졌다.

“글이나? 자긴, 왜 출판사 다니나? 그런 글이나 쓰는 작가들 빨아먹어야 하는 이런 곳을..

나가봐. 할 말 끝났어...

앗! 그리고 제이 연락 오면 즉각 즉각 받고,

작품 할 때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서포트 해.

영수증은 나한테 청구하고!”


팀장실을 나오면서, 복자는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 이게 말이 돼? 대체 얼마나 대박이길래...

내가 무슨 보모도 아니고... 쳇.’

“ 뭘.. 그렇게 불퉁한 얼굴이야... ”

어느새 새벽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 아니, 뭐 새로 들어가는 작가 때문에 ... 벌써부터 피곤이 밀려오네.”


“ 야야야, 아직 오전 11시도 안 됐다. 퇴근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

“ 그래, 알아 알아. 오늘 하루가 왜 이리 기냐.. 휴 ”

- 띠릭.


<제이: 김 복자대리님, 나 제이.

내가 원하는 작업실은 바다가 보이면 돼요. 섭외되면 알려주세요.>


메시지를 확인한 복자, 어이없어 웃음만 실실 나왔다.

“ 뭐야.. 이 지라ㄹXXX 같은 경우는...

서울 한복판에서 바다는 무슨.. 바다가,,,이거 또라이 아냐?!!”


복자의 손이, 팔이, 얼굴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분노와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

아까와 다르게 얼굴에 땀범벅이 된 홍양이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 홍양? 왜 그래? 얼굴에,, 웬 땀이야?”


“ 아아아니... 아니예요. 김 대리님.. 갑자기 배가 싸하고 아파서요....”


홍양이 아랫배를 두 손으로 감싸며 힘들게 대답했다.

옆에 서 있던 새벽은


“ 홍양, 너도 장트러블이냐? 얼른 가서 똥 싸. ”


라고 툭 던졌다.


그런 새벽을 팔꿈치로 팍 치며 복자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 홍양, 너 정말 괜찮아? 병원가야 하는 거 ... 어어어!! 야!! 정신차려!!”


복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홍양은 그 자리에서 쓰러진 채 말했다.


“... 아,, 안되는데,,, 11시까지 가기로 했는데,,, 안 되면 펑크 ....”


“ 야야,, 홍양! 정신차려.. 안되겠다. 119 불러야겠다.”

땀으로 범벅된 홍양의 몸은 불덩어리였다.


“ 으이그. 119 가지고 되겠냐? 바로 병원가야겠다..”


옆에 서 있던 새벽은 곧바로 홍양을 들쳐 엎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출판사 직원들이 모여들며 “무슨 일이야?”, “심각한 거야?” 하며 웅성거렸다.

그 사이로 분홍색 뿔테 안경을 고쳐 올리며 고 팀장이 얼굴을 들이민다.


“ 큰일이네... 11시까지 이성그룹 홍보팀이랑 미팅 있는데. 안되겠다.

김 대리가 대신 가줘야겠다. 아직 작업 들어가기 전이잖어.”


후-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복자는 “네”라고 답했다.

바닥에 떨어진 홍양의 서류들을 주워 담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 10시 45분.

서초동까지 지하철 타고 가도 30분은 족히 걸릴 텐데..

이성 그룹 홍보 담당팀장에게 전화를 걸며

복자는 벌처럼 잽싸게 출발하려는 지하철 안으로 쏙 들어갔다.


“ 네네,, 홍보팀장님.. 죄송합니다. 담당자가 급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제가 지금 바로 출발하니깐 미팅 약속 15분만 좀 미뤄주시죠... 네네,,죄송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도착하겠습니다.. 네네네”


전화를 끊고 나서 복자는 통화 내내 굽신거렸던 허리를 쭈욱- 폈다.

주변을 둘러보니 지하철 안 사람들이 안쓰럽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애써 민망함을 무릎 쓰고, 애써 아무렇지 않게 빈 의자에 앉았다.


‘ 먹고 사는 게 다 이렇습니다... 정글이지.. 정글... 징글징글하다. 정말.’

- 띠릭.


< 제이: 왜 답이 안와요? 김 대리님? 작업실 알아보고 있어요?>

“ 아 내가 미쳐.... 얘 .. 진짜 뭐니?”


후- 심호흡을 깊게 내뱉고 복자는 문자를 찍기 시작했다.


<복자: 네.. 지금 알아보고 있어요. 바로 연락드리...>

라고 문자를 찍다가 다시 지우고,


<복자: 네, 그런데 제이씨. 서울에서 바다 보이는 곳 찾으라는 거 농담인거죠? >

라고 쓰고 ‘보내기’버튼을 눌렀다.


- 띠릭.

잠시 후,

답장이 왔고, 복자는 “ 으이 씨.. ㅂ..읍” 하고 터져 나오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

<제이: 바다 맞는데... 찾아줘요. 그리고 이제 누나라고 부를게요.

복자씨보단 낫죠? 참고로 전, 스물다섯 살. 그것보단 많아 보이던데..

저녁 7시까지 구해서 연락줘요. 오늘 잘 데가 없어요. >

“ 스물다섯 살? 뭐 많아 보여??? 이건 뭔 놈의 양아치 시끼야..

지가 거지야? 왜 잘 데가 없어!!”


이글거리는 복자의 두 눈에서 금방이라도 레이져 광선을 쏠 것 같았다.


“흠흠..”


“거 참 젊은 처자가 목소리가...”


다른 승객들의 불평에 복자는 괜한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때마침 도착역에 다다랐고, 도망치듯이 지하철에서 내렸다.


‘ 일단, 홍양 일부터 처리해놓고,, 한강 주변에 작업실 할 만한 데 찾아보자..’

정신 나간 여자처럼 헉헉 거리며 복자는 간신히 회사 로비 안에 들어섰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앞자리를 근 20년째 지키고 있는 이성 그룹.


“ 후.. 엄청나게 크네... 기 죽네..”


높다랗게 솟은 천장에

번쩍거리는 대리석 바닥

정갈한 복장으로 무언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광장처럼 확 트인 로비안으로 들어간 복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 라라라라,,라라라라


전화벨이 울린다. 이성 그룹 홍보팀장이다.

정신없이 전화를 받으며 문이 열린 아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서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틈 사이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 거긴 타시면 안 됩...”


문이 닫히고, 어리둥절해하던 복자는 계속 통화에 집중했다.


“ 네네... 이팀장님.. 죄송합니다. 이제 도착했어요. 지금 엘리베이터 탔어요.

네네.. 죄송해요. 13층이요. 네네..정말 죄... (끊김) 뭐야? 아~ 이 시끼 성질은..”


그리고 “띡” 하는 소리와 함께 30개가 넘는 버튼 중에 13층에 불이 들어왔다.


뒤를 돌아본 복자.

엘리베이터 뒤쪽에 단정한 이목구비와 온화한 미소를 모두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네이비 수트를 빈틈없이 소화한 그는 흑백 영화 속 외국 배우같았다.

그는 온 몸으로 ‘perfect guy' 라는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넋 놓고 그렇게 바라보다 ‘이게 무슨 추태야’ 번뜩 정신을 차린 복자는

“ 고맙습니다..” 라고 쭈그러지는 목소리로 간신히 답했다.


그는 살짝 미소를 보였다.


그 미소에.. 옴마나... ' 쿵 쿵 ’ 복자의 심장이 쿵쿵 거리기 시작했다.


‘ 어머, 나 왜이러니... 정말..주책이다..주책’


라고 스스로 자책하지만, 저도 모르게 자꾸 고개를 틀어 뒤쪽 남자를 훔쳐보게 된다.

살짝, 살짝... 그러다 다시 눈이 마주치고,

수트 간지 작살 이 남자는 눈빛으로


‘ 왜? 무슨 할 말이 있으신지..’ 라는 표정을 보낸다.


엘리베이터는 7층,8층,9층 중간에 문 열릴 틈도 없이 올라간다.

그러다 갑자기


- 쿠쿠쿠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 진동이 양옆 위아래에서 느껴졌다.


“ 엄마야!! 엄마!! 엄마!! 아 씨발 씨발... 오늘 진짜 왜이래!! 이것들아!! ”

공포에 질려 복자는 저도 모르게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잠시 후, 진동이 멈추고 엘리베이터는 멈추어 버렸고,

실성한 듯 발악하던 복자도 소리를 멈추었다.


“ 괜찮아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것 같은데....아마 괜찮을 겁니다.”


“ ???? ”


오우쉣... 맞다. 뒤에 사람 있었지...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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