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런데 내 상처가 제일 아픈 건 어쩔 수 없어.

열한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싸늘한 공기가 두 사람을 감싼다.


-탁탁타탁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도마 위 칼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 반찬 몇 가지들이 올라가 있고, 그 옆으론 펼쳐진 청첩장이 보였다.


복자는 겉옷으로 입고 있던 두꺼운 가디건을 옆 의자에 걸쳐 둔 후, 큰 인기척을 내며 식탁에 앉았다.


“ 청첩장이네, 우와 이영미 벌써 결혼이야? 서른 하나면 요즘 너무 결혼하기 이르지 않나? 보자, 남편이름이 박상호, 거기다 차남~음~ 무난하네. 뭐하는 사람인가?”

“ ......의사 선생이라드라.”


오이 써는 거 멈추고, 엄마 덤덤한 목소리로 답한다.


“ 오~~ 의사. 좋지. ”

“ 휴~ 이년아. 너는 속도 좋다. 그런 말이 나오냐?”


드디어 시작된 건가.


뒤돌아선 엄마가 복자를 째려보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복자는 어깨 으슥하면서 젓가락으로 앞에 두부조림을 반으로 으깨서 맛본다. 침착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한다. 남의 인생이 잘 풀린다는 일로 지긋지긋하게 엄마와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 음~ 엄마 양념 잘 배였다. 맛있다~”


휙. 엄마가 던진 오이 조각이 복자 앞으로 떨어졌다. 다시, 두 번째는 복자의 얼굴을 피해서 어깨 부위를 스치고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웃어야 하는데 쥐어짜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고비다. 잠시 눈을 감고 “ 엄마, 그만해” 하는 목소리가 낮았다.


“ 그만해? 뭘 그만해? 어떻게 그만해? 어?”


엄마는 선이 없는 사람이다. 특히나 가족 중에 복자한테는 유독 선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해도 되는 말, 해서는 안 되는 말 그런 것들 말이다. 눈으로 보진 않았지만, 엄마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것이 선했다.


“ 이미 지나간 일이야. 5년 전 일이라고. 나 이제 선생 아니야. 엄마도 이제 그만 인정해!”

“ 그걸 어떻게 인정해? 어? 실컷 교대 4년 다니고 졸업해서 선생 됐으면 그냥 선생이나 처하면 되지? 왜 그만뒀어? 안 그만뒀으면 너도 안정적인 직장에, 선 자리도 많을 거고, 우리도 좀 도와줬을 거고. 동생도 도와주고, 좀 좋아?”


복자의 눈가가 벌게지고 턱 끝이 잘게 떨려왔다. 안 돼.


“ 알아. 안다고. 근데 자꾸 이쪽 일이 하고 싶은 걸 어떡하냐? 마음이 자꾸 가는데, 어떻게 해? 열심히 해서 다 도와줄 거야. 엄마도, 복기도. 나 잘 될 자신 있어. 좀 믿어주라. 엄마가 안 믿어주면 누가 나를 믿어주냐?”


앞이 뜨거워지고 시야에 들이찬 엄마가 흐릿하게 보였다. 결국에야 터지고 말았다.


“ 너는 너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년이야. 알어. 아냐고? 니가 집 생각하는 년이면 그 잘 다니는 학교 때려치우고, 출판사 나부랭이나 다니냐.”


‘툭’하고 마지막 경계선이 와르르 무너진다.


“ 왜 내가 이기적이야. 왜.왜. 엄만, 아직도 그 얘기야? 아직도? 대체 언제까지 그 얘기할 건데! 대체 언제까지! 내가 무슨 죄졌어? 내가 죄인이야? 하고 싶은 일 찾아서 그거 좀 하겠다는 데 대체 언제까지 사람 이렇게 쥐 잡듯 잡을 건데. 대체 언제까지!”


버튼을 누르니 눈에서 뜨거운 게 쏟아져 나왔다. 학교를 관두고 출판사로 들어온 것에 대한 엄마의 비난과 조롱은 복자에겐 감당하기 힘든 수치였다. 발가벗은 몸으로 채찍을 맞는 기분이랄까. 아니, 이것도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이 말이 오갈 때마다 복자는 저 자신이 반 미친년이 되어 버린다는 걸 인정한다.

“ 을그 이 미친년아- 이 미친년아- 사람들 하고 싶어 안달하는 그 잘나고 좋은 직업, 왜 그만둔 거야? 응 왜. 왜?”


“ 그거 몰라 물어. 내가 몇 번을 말해. 열 번을 말해. 백번을 말해. 나 수백 번은 말했어. 내가 이게 좋다고! 내 인생이야! 대신 살아 줄 거야? 엄만, 엄마 인생이나 똑바로 살아!”


현관문 열어젖히면서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엄마는 아직 공격이 끝나지 않았다.


“ 을그 을그 저 미친년, 지가 잘난 줄 알지. 그래 너 잘났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돈도 안 되는 일 쫓아다니는 얼빠진 년아.”


걸걸한 목소리에 분노가 가득 차 넘쳤다. 제 자식이 잘 되길 바란다는 말 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는지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마당 한쪽 구석에서 복구를 껴안고 있는 제이와 복자의 눈이 부딪혔다. 콧물, 눈물 이미 다 질질 흐르고 빨개진 얼굴인데 별거 아니라고 사무적인 미소도 짓지 못하겠다. 복자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 서둘려 대문 밖을 나섰다.


에이, 한 집 사니깐 가지가지 별거 다 보여준다. 보여줘. 짜증 나.






자꾸만 흘러내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면서 무작정 동네를 걷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자, 몇 걸음 떨어진 뒤로 제이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왜 따라오는데.


“ 하-” 복자, 입에서 하얀 입김이 새어나온다. 급하게 나온다고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못했다. 하긴, 속에서 폭발해버린 열 덩어리 때문에 처음엔 추운 줄도 몰랐다. 걷다 보니 불이 꺼지고, 눈앞에 무언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한기도 느껴졌다.


그 때, 뒤에서 두꺼운 회색 후드 자켓이 안듯이 복자 뒤로 걸쳐졌다.


‘ 뭐야?’ 잠깐, 복자 움찔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걷던 걸음 계속 걸었다. 아까부터 뒤에서 느껴지던 제이의 인기척도 그냥 모른 척 했다. 그래도 며칠 얼굴 텄다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대강 그렇게만 짐작했다. 싸가지는 없어 보여도 나름 동정심 같은 걸 느꼈나 보다. 그래, 너도 명색에 작가인데. 측은지심 없이 어찌 세상 돌아가는 일을 글로 쓰겠냐.


어둑한 동네길을 몇 바퀴나 돌고 있는지 모르겠다. 혼자서는 모르겠는데, 혹이 하나 붙이니 영 신경이 쓰인다. 뒤돌아보지 않고 복자가 앞을 보며 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목소리도 더는 축축하지 않았다.


“ 추워요. 어서 들어가요. 나 신경 쓰지 말고.”

“ 다 울었어요?”


제이가 덤덤하게 말하며 복자 앞을 가로 막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 있다. 퉁퉁 부은 눈에, 빨갛게 변한 코, 발그스름한 양 볼. 주변의 밤공기는 고요하고 차가웠다.


“ 뭐 하러 따라 나와요? 하긴. 그런 분위기에 들어가는 것도...이래서 같이 사는 거 싫어했던 거예요. 가족끼리도 못 볼 꼴, 아닌 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모습, 가족도 아닌 사람한테 보여준다는 거. 그거 길거리에서 발가벗고 서 있는 기분이라고요. 알아요?”


“ .. 너무 야한 거 아닌가?”


응?

...


순간 할 말이 막혀서 두 눈만 껌벅거리다가 능글맞게 웃는 제이의 얼굴을 보고 복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이씨.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막을 수 없었다. 발가벗고 서 있다고 하면 다 그런 식이냐. 확실히 양아치 맞네. 어리다 어려. 그래 혈기가 참으로 왕성하구나.


“ ... 말을 맙시다.”


짤막하게 한 마디 던지고, 제이 옆으로 지나치는 데 그가 가벼우면서도 덤덤하게 질문을 던진다.


“ 학교, 그만 둔 거 후회 안 하죠?”


이번의 당황은 좀 전의 당황과는 결이 달랐다. 잠시 흔들렸던 복자의 시선이 곧 차분해진다.


“ 다 들린 거 아는데 좀 모른 척 해줄 수 없어요? 5년 전에 그만두지 않았으면, 4년 전에 그만뒀을 거고, 아니었으면 3년 전에, 그게 아니라도 분명히 그만두고 이 일 했을 거예요. 후회 안 해요. 그걸 아직까지, 무기마냥 들먹거리는 엄마가 이해 안 될 뿐이죠. ”


주저리주저리 말하면서도 복자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기생오라비 같이 한없이 가볍게 생긴 이 남자한테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시하고 넘어가도 아무렇지 않은 관계다. 서로는.


“ 당신이 ... 가족에게 상처를 줬기 때문이죠.”

“ 하. 뭐라고요? 나만 줬어요? 상처. 나도 상처 엄청 받았다구요. 얼마나 내 가슴에 난도질했는데.

남도 안 하는 말. 남도 못하는 말. 얼마나 나한테 쏟아 부었는데. 내가 받은 상처가 제일 컸다고!!”

"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죠. 그런데 내 상처가 제일 아픈 건 어쩔 수 없어. 설마 그 당연한 세상의 이치를 몰랐던 건 아니죠? ”


세상 제일 가벼워 보이는 갈색 눈이 묵직한 말을 스스럼없이 조곤조곤 읊고 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실은 묵직한 무언가가 복자의 가슴 안으로 훅 파고들었다. 무시하고 넘길 가벼운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싶어 계속 그의 말을 집중했다.


“ 어머니에게도 시간을 드려요. 당신을 믿고 기대한 만큼 큰 상처를 받으셨을 테니깐. 각자의 상처는 각자가 치료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상처 돌봐주지 않는다고 떼쓰지 마. 당신도. 이제 그만 징징돼.”


밤의 기운에 더욱 창백해 보이는 제이의 얼굴이 복자의 코앞까지 가까이 다가왔다. 그 얼굴이 진중했다. 두 사람 사이로 하얀 입김만 오고 갔다. 뒤로 두 발짝 멀어진 제이가 이내 표정을 풀고 기지개를 켜듯 팔을 뻗어 제 머리 뒤에 받쳤다. 원래의 가벼운 얼굴로 돌아오려는 듯 했다.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는 데 제이는 능숙해 보였다.


찬찬히 살피던 복자가 이를 꽉 깨물었다.


“ 너... 참... 냉정한 새끼구나. 넌, 심장이 없냐?”

“ 따뜻한 위로가 아니어서 미안해. 근데 그게 사실인데. 가짜보다 진짜가 낫지 않아? ”


그런데 순간, 복자의 고개가 갸웃하다.


“ 너... 하... 핫핫하...근데 말이 짧다... 너 지금 잠시 까먹은 거 같은데. 나 너보다 다섯 살 많거든? ”

“ 코나 닦고 말하지? 지금 끈적하게 나오는데... 크... 다섯 살이 뭐가 대수냐? 아까 배추 아저씨도 이름 좋다고 노래를 부르던데 나도 부를게~ 그 이름. 둘이 있을 땐 그렇게 하는 걸로~ 땅땅땅”


지금 이 새끼가, 뭐 하자는 거지.


“ 하핫 하핫... 핫 쟤 지금 뭐래니? 저 새끼.. 아오... 아 혈압.. 아 눈까리 빠질라 그래. 아-”


두 손으로 관자놀이 누르는 복자 앞으로 슬슬 웃으며 제이가 어슬렁거린다.


“ 우동이나 먹으러 가자~ 복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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