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찾았다. 김복자.

열 세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센텀 병원 응급실 안)


“ 어머머머... 어떡해... 이렇게 다쳐가지고...”


백발에 빠글빠글 파마한 백 작가가 응급실 침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 작가님, 저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거 아니니깐 안심하세요. 일단 택시 타고 호텔에 가 있으시구요.. 그 쪽으로 김 대리가 갈 겁니다.”


“ 어머어머 그래도... 나 때문에.. 괜히 내가 그 쪽으로 좀 걸어가자고 해 가지고... 그냥 이대리 말 듣고 차로 바로 호텔로 들어갈 걸.... 미안해서 어쩌니...”


“ 하하.. 작가님. 아닙니다. 일단 호텔로 들어가서 좀 쉬고 있으세요. 아직 사인회랑 콘서트 하려면 몇 시간 좀 더 남았으니깐요. 전 수액 다 맞고 그쪽으로 천천히 이동하겠습니다.”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 좌우대칭으로 깁스하고 있는 새벽. 얼른 백작가 좀 보내놓고, 맘 편히 쉬고 싶은 얼굴이 간절해 보인다. 두 사람의 실랑이는 30분간 더 이어지다가 결국 눈치 빠른 간호사의 도움으로 끝이 나고야 말았다. 혼자 남은 새벽은 그제야 편하게 병원 침대 위에 드러눕는다. 환한 형광색 불빛이 눈부시지만, 오른쪽 팔 이마 위에 얹고 눈을 감으며 “ 복자야~ 복자야~ 좀 빨리 와주라” 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ktx에서 뛰어내린 복자가 우르르 인파 속으로 다시 섞여 들어간다. 가장 빠른 기차표를 끊어서 해지기 전에 다행히 부산에 도착했다.


- 징이이잉


폰이 울리고, 화면에 ‘고팀장’ 이름이 뜬다.


“ 네 팀장님, 저 지금 막, 부산 도착했습니다.”


- 응, 그래 갑자기 가게 돼서 정신없지? 일단 필요한 일정 방금 메일로 보냈고, 체크 해서 오늘 북콘서트 일정 문제없이. 호텔부터 갈 거야? 병원부터 갈 거야?


“일단, 백 작가님이랑 전화해보고, 병원 잠깐 들렀다 가려고요.”


-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아까 빽 작가랑 통화했는데, 울고불고 난리치더니 지금은 좀 진정됐더라. 그 분 좀 심하게 애 같잖니? 박살난 이새벽보다 그쪽이 더 놀랬더라고. 암튼. 일단 오늘 이성 미팅은 나랑 홍 양이 간다. 그럼 수고.


“ 네, 그럼”


에스컬레이터 사람들 틈을 비집고 뛰어 올라간 다음 역에서 나와 택시에 급하게 올랐다. 휴, 움직이는 차 안에서 그제야 제대로 한숨을 돌린다. 창밖으로 해안가를 감싸 세워진 이색적인 건물들을 줄지어 보다가 어느덧 도착한 병원 앞. 택시에서 내린 복자는 곧바로 응급실 쪽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간다.


“ 이새벽 환자요. ”


응급실 데스크 앞에 앉은 간호사가 차트를 확인한 후, 무표정한 얼굴로 출입증 목걸이를 건넨다.

일렬로 나란히 놓인 침대 중에 제일 구석에 누워있는 새벽이 보였다. 긴장되어 있던 복자의 얼굴에 그제야 안도가 인다.


“에휴~ 팔하고 다리하고, 골고루 난리났구만”


자고 있는 새벽을 깨우지 않으려고 그래도 혼잣말로 웅얼거렸다. 폰이 다시 울렸다. 백 작가다.


“ 예~ 작가님. 네 저 근처 다 왔습니다. 센텀 병원이에요. 그럼 20분 뒤에, 호텔 로비로 나와서 저랑 같이 행사장으로 가심 됩니다. 네네~ 이따 뵐게요.”


그래도 막상 눈으로 상태 확인하니, 걱정했던 것보다는 마음이 한편 놓였다. 을그, 김 새벽. 너도 삼재냐? 하루만에 이런 대형사고냐. 일단 벌여놓은 일부터 수습해야겠다 싶어 뒤돌아 서는 데 복자의 오른손을 잡아챈다. 새벽의 목소리다.


“왔냐?”


“ 옴마야~!!! 놀래라~ 깼냐?”


새벽이 감은 눈을 천천히 떠올린다. 그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을 한 복자를 한참 올려다보다가 픽 입꼬리를 올렸다.


“ 온다고 고생했겠다. 밥은 먹었냐?”


“ 야~ 너 이 상황에 밥 먹었냐는 소리가 나오냐. 너, 진짜 큰일 날 뻔했어. 너도 악삼재니? 이만한 게 진짜 다행이다. 너 진짜.. 을그.. 암튼 콘서트 끝나고 와서 다시 얘기하자. 일단, 너 좀 여기 누워있고. 야야야야! 왜 일어나.”


멀쩡한 팔을지지 삼아 으짜 침대에서 일어난 새벽이 거의 들어간 수액 바늘을 확인하더니, 바늘을 뽑는다.


“ 어어~ 어쭈, 야~”


침대 옆의 목발을 짚고 일어선 새벽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복자를 내려다본다.


“ 괜찮아. 깁스한 것뿐이야. 여기 누워서 뭐 할 것도 없다고. 그냥 차 안에만 있을게. 필요한 사항 입으로만 말하고! 됐지? 야, 너가 부산까지 달려왔는데 혼자 보낼 순 없지.”


새벽이 뒤뚱거리면서 어색하게 목발을 짚어 앞으로 걸음을 뗀다. 갑자기 웬 요상한 고집인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복자가 그 옆으로 달려간다.


“ 진짜. 일 뒤처리하는 것도 모잘라, 이젠 내가 병수발까지 해야 하냐.”


“ 야~ 섭섭하다~ 병수발이라니. 응?”


“ 무거워~ 씨.. 야야야야!! 발발발조심.”


새벽은 더욱 장난스럽게 복자의 어깨에 기댄 팔에 힘주면서 제쪽으로 끌어 당긴다.



(북 콘서트가 있는 백화점 문화센터 안)


무대 위로 올라가다 발이 삐긋한 백작가님이 울상으로 뒤돌아 복자를 쳐다본다. 아고고. 괜찮아요. 괜찮아. 아무도 못 봤어. 복자는 최대한 밝게 웃으면서 두 손가락으로 엄지척을 올려보냈다. 눈치 빠른 사회자가 서둘러 관객석을 향해서 박수를 유도했고, 북콘서트는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 네~ 정말 어렵게 모셨습니다. 우리 백지웅 작가님. 문단계의 연애도사 귀요미 할배로 통하시죠~이번에 3년 만에 내신 신간,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습니다. 책 제목이 아주 특별해서... ‘여자들이여, 남자는 많을수록 좋다.’ 와~ 정말 바람직한 제목이 아닐 수가 없네요~ 그렇죠?”


맛깔스러운 사회자의 멘트에 이어 관객들의 호응과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다행히, 관객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흐뭇하게 무대 뒤에서 지켜보던 복자가 간이벽에 살짝 몸을 기댔다. 후우. 무슨 정신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파왔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은 게 없었다.


그 때,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김새벽이다. 복자는 주변을 슥 살피다가 밖으로 나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어때?

“ 응, 여기 좋아. 빽 작가님, 무대 무사히 올라가셨어. 글은 날라리처럼 쓰는 사람이 실제론 어찌 저리 소심한 지 몰라.”

- 말구, 너 말이야?

“ 나? 왜? ”

- 아침부터 정신없이 기차타고 부산와서 지금까지 혼 쏙 빼놓고,,, 괜찮냐고?


“ 아~ 난 또 뭐라고? 야, 너 차 안 답답하냐? 그냥 병원에 누워있지”

- 거기나 여기나 뭐 비슷하다. 차 안에 갇힌 아기들 심정도 이해도 되고.

“ 카시트 안에라도 앉혀놓을 걸 그랬나. 고놈의 입은 깁스를 안 했구만.”

- .....고맙다. 김복자.

“ 그래, 고마워해야지. 철이 이제 좀 드는구나. 네가.”


새벽의 침묵이 길었다.


“ 끊었나? 여보세요?”


핸드폰 화면 속에 통화 시간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 김복자~ 너랑 나랑, 우린 친구지?

“ 뜬금없이 뭔 소리래? 너 뇌도 다쳤냐. 헛소리 말고 끊어. 바빠.”


전화를 끊은 복자가 베이지색 코트 주머니 안으로 폰을 구겨 넣는다.


“ 아 이~시낀, 꼭 바람둥이 아니랄까봐, 아무 때나 쑤셔봐요. 정말~”


콘서트장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시계를 보고 한 시간 정도 여유를 부려도 좀 괜찮겠다 싶다. 뭐라도 끼니를 좀 때워야 싶다. 복자의 머릿속으로 장기자가 낚아채 간 따끈한 커피 한 잔이 생각났다. 을그. 주변에 도움 되는 인간이 없구만. 혓소리를 끌끌 차며 복자는 7층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 우-와”


저도 모르게 작게 환호성을 내며 입이 쩍 벌어졌다. 엘리베이터 안은 사람들로 꽉 차서 한 사람도 더 추가로 탈 수 없는 지경이었다. 평일 한 낮, 백화점 연말 폭탄 바겐세일로 아줌마들 양손에 쇼핑백에, 유모차에 탄 아기 양옆으로 쇼핑백이 끼어있고, 숨 쉴 틈 없이 빽빽이 차 있다. 탈까, 말까 짧은 순간 복자가 망설이는데,


“ 아유~ 아가씨 타타~ 자리 쪼금 있다.”


열림 버튼을 누르며 어느 인상 좋은 할머니가 복자를 구제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머쓱해하며 복자가 간신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는 층층마다 멈추고 마지막 남은 틈까지 사람들이 또 비집고 들어왔다. 다행히 상품권 할인 판매처가 있는 2층에서 사람들 우르르 쏟아져 나갔다. 물살에 떠밀려 나가듯 복자가 휘청거렸다.


“어어어어---”


그 때, 복자 등 뒤로 무언가 단단한 게 느껴지면서 자신을 일으켜 안는다.


뭐지? 뭔가 살짝 어지럽고, 공중에 붕 떠 있는 기분인데 대단히 곤란하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벌게진 얼굴로 힘들게 자신을 안고 있는 우성이 보였다. 아니, 다시 이 얼굴을 볼 줄이야. 반가운 건 둘째치고 지금 이 상황이 개 황당한데 웃긴 걸 어떡해. 결국엔 참지 못하고 크크큭 복자 입에서 웃음이 터지고, 우성도 어깨를 흔들며 웃고 말았다. 아니, 둘다 무슨 엘리베이터에 원수졌냐고.


“ 무겁죠? 내려줘요...”

“ 무겁진 않은데, 살짝. 너무 급하게 잡아서 중심이 잘~”

“ 무겁지 않긴요. 지금 그쪽 얼굴 터질 거 같은데.”


우성은 당황스럽고, 우습다. 놀라우면서도 자꾸 심장이 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사람이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 찾았다. 김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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