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거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데....

열다섯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다.


우성 옆에 나란히 복자가 앉아있다. 그 뒷자석에 앉은 새벽은 부루퉁한 얼굴로 앞에서 깔깔대는 소리에 입을 삐죽인다.


“ 쳇, 뭐하는 거야? 다 큰 어른들이 유치하게...국내선에 뭔 놈의 비즈니스석..”


옆에 앉아있던 백 작가가 뭔가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 오우~ 우리 대리님~ 너무 귀여운 거 아니니?”


통통하게 살이 차오른 주먹을 앙 쥐며, 새벽의 오른쪽 어깨를 툭 친다. “아얏-” 놀란 새벽이 백 작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자기, 너~~~무 티난다. 크. 근데 그르지마~ 그러면 지는 거야. 왜 그랭~ 선수끼리~”

“ 아하~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거 아니니까 백작가님이 오해하지 마십쇼. 정말입니다!! 그냥 저는..... 원래 저희 계획에 차질이 생기니까.....”

“ 에잇~ 너무 쫌스러워 보인다~ 비행기, 그것도 저 신사분께서 다 대준다는 데 얼마나 좋니~ 그리고 자기 다친 거 때문에 비행기 타고 가는 게 훨 낫지~ 안 그래? 자기 차도 직원 시켜서 서울로 보내주고, 나 같으면 입이 찢어지겠구만. 입이 왜 그렇게 튀어나왔데~~~~”


넙대대하게 살이 차오른 얼굴 중앙에 새똥만한 안경알을 걸치고 있는 백 작가가 샐쭉한 미소를 날린다. 괜히 아닌 척, 쿨한 척으로 보이려다가 본심만 더 들켜버린 새벽은 난감하기만 하다.


- 잠시 후, 저희 비행기는 김포공항에 도착합니다. 승객 여러분은 ..


비행기가 김포공항 활주로에 안전히 착륙하고, 일행들 모두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그 특유의 콧소리 가득한 말투로 백 작가가 우성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 아유~ 감사합니당~ 덕분에 비행기로, 그것도 좋은 좌석으로 너무 편하게 잘 왔네용~”


너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말 걸어오는 백 작가의 부담스러움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우성은 유쾌하게 받아들인다.


“ 네. 아닙니다. 별말씀을요.”


“ 어머머머,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깐 정말, 어머나, 너무, 잘 생기셨당~ 핏도 너무 좋으시공~~”


천하장사 소시지 저리 가라, 하는 손가락으로 백 작가님은 연신 새똥 안경을 만지작거리면 우성의 외모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이에 민망한 우성과 그 옆에서 괜히 눈치를 보게 되는 복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백 작가를 진정시킨다. 복자는 백 작가의 팔짱을 끼고, 앞으로 당겨 앞서가며 다른 화제로 돌리려고 한다.


“ 아유~ 백작가님~ 부산에서 일만 하고 바로 올라와서 섭섭하시죠?”


“ 김 대리, 자기 이번엔 제대로 잘 해봐~”


백 작가의 뜻밖의 말에, 복자가 눈을 껌벅거린다. 무슨 말이냐는 얼굴이다.


“ 아유~ 몰라 물어. 자기, 저렇게 멋진 남자가 지금 자기가 좋다잖아? 온몸으로, 온 눈으로 티 내고 있잖어. 모른다고는 안 할거지? 자기, 그렇게 말하면 나, 자기 싫어할 거야. 뻔히 알면서 몰라요, 아니요 하는 내숭 떠는 얘들 딱, 나는 싫어~”

“.... 아. 좀 웃기게 알게 된 사람이긴 한데, 처음부터 워낙 젠틀하고 그랬어요. 근데 그게 다예요.”

“ 어머머머. 약간, 자기 재수없으려고한당~우리끼리 그르지 말자~ 적어도 내 앞에서 그러면 안 되지~ 나 연애심리학박사야~ 그걸로 20년 동안 먹고 산 사람인데~내 눈엔 다 보여~ 연애는 자기를 다 던져야 해! 이것저것 재보지 말라고~ 아직 못 느꼈다면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잘 봐봐! 둔한 것도 자랑 아니야~ 둔한 건지, 자신감 부족인진 몰라도~”


둔한 건지, 자신감 부족인지 몰라도....


백 작가의 그 말이 가슴 속을 따갑게 꼬집었다. 자신감 부족... 나랑 어떻게 해보기엔 저 남자 너무 부담스럽다고 사실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 부담 없이 편하게 대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연예인 보듯, 교생 선생님 보듯, 그렇게 대하자고 은연중에 생각했었던 것 같다. 어차피 연애 운운할 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라고 이미 못 박았기 때문이다.


복자는 살짝 뒤돌아 걸어오는 우성을 쳐다본다. 우성은 툴툴거리는 새벽의 짐을 대신 밀어주며 오고 있다. 정말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모든 기본 메뉴얼을 빠짐없이 지닌 사람이다. 딱 벌어진 어깨하며, 매너있는 행동과 부드럽지만, 든든하게 느껴지는 침착함, 그리고 어디 내놓으면 불안하기까지 한 외모.


어머, 나 지금 뭐하는 거니. 김복자. 오바하지 마.


혼자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부산발 비행기 도착한 뒤 연이어 제주발 비행기가 착륙했다. 공항 안은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 마중하고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로 정신없이 북적거린다.


“ 아~ 네 영감님... 저 공항 다 도착했어요.”


공항 3번 게이트 입구로 들어온 제이, 짙은 와인색 오버사이즈 코트 안에 아래위로 검정색 상의를 입고, 회색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 무슨 짐이 그렇게 많으시다고~ 네네 알았어요. 어서 나오기나 하세요.”


심드렁하게 공항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고 있다가 제이의 눈빛이 멈칫 한 곳에서 섰다. 그와 3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밖으로 나가는 우성과 그 주변의 무리. 민우성을 쳐다보는 제이의 눈빛이 자못 날카롭다. 눈은 차갑고 입꼬리만 위로 살짝 올라간다.


하, 세상 좁네. 이런 데서 만나네. 뭐야? 근데 저 옆에..


제이의 시야에 우성 옆에서 같이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복자도 함께 들어왔다. 어? 뜻밖의 상황에 놀람도 잠시, 제이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이거... 점점 더 재미있어 지는데...


공항 입구 문이 열리며, 어디선가 굵디굵은 동굴 목소리 울려 퍼진다. 거친 수컷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해골 무늬 스카프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가죽점퍼를 입은 말총머리 아저씨.


“ 허~니~”


그러자, 수산 시장의 한 마리 고등어처럼, 백 작가님 팔딱팔딱 튀어 오른다.


“ 어머머~ 자기 왔어~ 나 혹시나 해서 문자만 보낸 건데~ 어떻게 이렇게 깜~찍 하게 온 거야~”


동글동글한 백 작가님, 거친 수컷 사냥꾼을 향해 달려간다. 수컷 사냥꾼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이리왓~” 라고 부른다. 제발... 다른 사람들 눈도 좀 생각하시길. 160cm를 살짝 넘긴 백 작가님이 고목 나무에 붙은 살찐 매미처럼 달랑달랑 매달려 있다. 괜히 민망해진 새벽과 복자, 그리고 우성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


“ 어머어머~ 미안해~ 홍홍~ 자기들도 거기 있었지?~ 미안~ 그럼, 나 먼저 가껭~ 김대리님, 내가 한 말 잊지 마랑~~”


애인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은 백 작가가 복자에게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보낸다. 귀엽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은 중년의 커플은 그렇게 ‘멋짐을 폭발하며’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빠르게 사라졌다.



“ 야, 택시 왔다. 아! 그쪽, 고마웠습니다. 그럼”


새벽이 우성에게 까딱 눈인사하고 멀쩡한 손으로 택시 문을 열었다. 복자도 따라 타기 전에, 우성과 인사를 나눈다.


“ 고맙습니다. 이번에도. 도움 받았네요. 언제, 기회 되면 밥 한번 먹어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복자 앞으로 우성의 손이 택시 문을 살짝 잡으며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복자와 우성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그 눈빛에 다급한 감정이 묻어있다.


“ 그런, 형식적인 인사는 좀 그렇고요. 이제 전화번호 아니까. 우연 말고, 약속 정해서 제대로 만나요. 어때요? 김 복자씨?”


훅, 밀고 안으로 들어오는 우성의 저돌적인 태도에 잠시 멈추었던 반응이 천천히 돌아왔다. 복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네 그러겠다고 수줍게 대답했다. 반듯한 이목구비 위로 큰 웃음이 출렁였다. 복자가 택시 안에 타고 우성의 팔이 아쉬움을 남기며 문을 닫았다.


멀어져 가는 택시를 바라보면서도 우성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남아 있다. 그런 우성을 묘한 표정으로 차 안에서 바라보는 제이의 손가락이 핸들 위를 두드린다.


“ 뭐하냐? 어서 출발하지 않고. 화장실에 줄이 어찌나 길던지~ 춥다 어서 가자꾸나. 확실히 제주가 따뜻하고 좋아~ ”


뒷문이 열리면서 멋스러운 베이지색 중절모를 쓴 고 영감이 올라탔다. 그는 말없이 한 방향만을 주시하는 제이에게 말을 붙인다.


“ 무슨 생각해? 뭐 떠오른 거 있냐?”


뜻을 알 수 없는 갈색 눈빛이 잠시 백미러를 부딪혔다. 아니요. 아무것도. 시동을 켠 차는 북적거리는 공항 입구를 매끄럽게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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