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번째 이야기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황금빛으로 물든 올림픽대로 위로 차들이 줄을 이었다.
“ 너 바람 들어가지 마라.”
새벽은 택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의미 없는 말처럼 툭 내뱉었다. 옆에서 가방 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다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 너! 그 민우성이란 사람한테 흔들리지 말라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놈이니깐.”
반대편 창문에서 쏟아진 빛이 새벽의 안경 위에서 반짝였다. 노을빛이 불필요하게 강렬했다.
“ 난, 또... 뭔 소린가 했네.”
말끝을 흐린 복자가 폰에서 비행기 모드를 해제하자마자 메시지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새벽이 한 손으로 복자의 핸드폰을 쥔 손을 아래로 내리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내 말 흘려듣지 마. 너 위험해.”
복자는 귀찮다는 듯이 새벽의 손을 밀쳐냈다.
“ 걱정마라. 나 백마 탄 왕자 같은 건 없다는 거 안다고. 그들만의 리그에 내가 들어갈 수라도 있니? 너나 내일부터 어떻게 출근할지부터 걱정해라. 그 팔이랑 다리.”
들어온 메시지에 답장을 쓰던 중에, 곧바로 새로운 메시지가 겹쳤다. ‘제이’다.
〔 제이: 어디야? 저녁에 미완성 원고 좀 같이 보고 싶은데 〕
“ 와~ 이젠 확실히 반말로 나가시겠다. ”
여섯 살이나 어린 녀석이 툭 치고 들어와 탁하고 반말하는 게 어이없지만, 한편으론 싫지만은 않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설레는 마음도 어느 정도 있다.
〔나: 지금 부산 다녀와서 야근 끝나고 가면 11시 넘거든. 내일 하자. 쏘리. 〕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자, 곧바로 전화가 들어왔다.
화면 위로 ‘홍양’이라고 뜬다.
“ 여보세요. 어~홍양. 우리 서울 왔어. 어? 어... 이 대리. 깁스하고 있긴 한데, 말하는 건 멀쩡하네? 아~ 그랬구나. 전화를 많이 했었구나. 바꿔 줄까? 아... 그래.. 응, 나는 출판사 지금 들어가려고. 할 일이 좀 남아서. 그래. 내일 봐.”
전화를 끊은 복자가 옆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새벽을 노려본다.
“ 야, 너 왜 그러냐! 홍 양이 너한테 오늘 전화랑 메시지 엄청 했다는데. 너 답도 안 해줬다며? 너 다쳤다고 걱정해서 그러는 애 연락 좀 받아주면, 어디 덧나냐?”
“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뭐. 나 괜찮다고 이미 고 팀장이랑도 통화했어. 그리고 내일 출판사 가서 또 볼 건데, 뭐 하러~”
“ 니 인간성 수준도 참... 그러면서 충고는....쳇”
손가락으로 한쪽 귀를 슥슥 돌리던 새벽은 두 눈을 감고 머리를 시트에 기대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에 복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다물었다. 충고도 아까운 시끼한테 가운데 손가락만이 답이다.
“ 걔....너무 진지해. 그런 얘한테 이렇게 대하는 게 최선이야.”
(고 영감의 집)
개미출판사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 북촌 마을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언저리에 전통 한옥 양식의 집이 보인다. 해가 지고 어둑해지자, 사랑방 창문으로 꽤 찬바람이 들이찬다. 제이는 창문을 닫기 전에, 얼굴을 밖으로 내밀고 잘 가꾸어진 정원을 둘러본다. 오래전 그곳에서 진돗개랑 뛰어놀던 열 살짜리 꼬마 아이가 흐릿하게 보였다 사라졌다.
“ 글이 좀 바뀌었더구나....”
굵다란 박달나무를 반으로 잘라 만든 책상 위에서 고영감의 손이 원고를 뒤적거렸다. 목걸이로 연결된 돋보기안경을 벗으며 영감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집중한 탓인지 눈에 피로감이 몰려온 모양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그 대단한 고 영감도 이제는 30분도 원고 읽기는 무리였다.
“ 그런가요? 늘 비슷한 스타일인데요.”
제이가 뒤돌아보며 다기 그릇에 우려낸 녹차를 따르며 말했다.
“ 흠~ 뭐, 여전히 예상 밖의 사건이 생기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그런 이야기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너의 글은 늘 세상을 놀라게 하잖니. 요즘 사람들은 잔인하고 치밀한 걸 좋아하니까. 근데 어딘가 느낌이 좀 달라졌다.”
“ 글쎄요....”
제이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손으로 아래턱을 쓸어 만졌다. 무언가 고민에 빠진 그의 눈빛 안에 오묘한 불빛이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기골은 이미 소년티를 벗어났는데도 얼굴 어딘가에는 아직 순진무구함이 남아 있다. 그 속에 숨겨진 위태로움이 때때로 그 본성을 잃고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 너한테 뭔가 변화가 생긴 것 같은데, 아주 나쁜 변화는 아닌 거 같으니 더는 묻지 않으마.”
제이를 바라보는 고 영감의 눈빛이 애틋하다. 그가 제이를 아들처럼, 손주처럼 돌본 세월은 올해로 17년이 다 되어간다. 일렁이던 눈망울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내던 어린 소년이 벌써 스물다섯 살의 매력적인 청년으로 자랐다. 때로는 자신의 딸인 현정보다도 제이 때문에 더 가슴 시릴 때가 많았다. 세상사 만만치 않다만, 이 어린것에게는 유독 독했다. 제이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 출판사는 어떠냐? 현정이한테 맡기고 나서는 돌아가는 내부 사정은 이제 나도 깜깜해.”
“ 뭐, 비슷하죠. 고 팀장님이 잘 배려해줘요. 뭐, 어차피 필명도 바꾸고, 얼굴도 알려지지 않았으니 별 어려움은 없겠지만.”
“ 허허, 너는 가짜 행세가 재밌나 보구나. 현정이가 네 덕분에 이번엔 한 몫 단단히 잡을 거라고 큰소리치더구나. 참, 너 담당자가 김 복자양 맞지? 참 괜찮은 사람이지. 그 아가씨.”
김 복자. 라는 이름에 평평하던 제이의 눈썹이 조금 움찔했다. 그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말투로 “ 아... 기억하시나봐요?” 라고 물으며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별일도 아닌데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가슴 한쪽이 두근거렸다.
고 영감이 가늘게 두 눈을 찌푸리며 기억의 구석을 더듬었다.
“ 처음, 출판사에 면접 보러 온 날, 3년 전 일거다. 내가 그땐 사장으로 있었지. 무슨 일 했냐고 물으니깐, 선생님이었다 그러잖니? 놀라서 물었지. 아니 그런데 왜 그만뒀냐고 물으니깐......허허허...눈을 동그랗게 뜨고 꼭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진짜 자기로 살고 싶다고 하더구나. 그 말에 반했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나도 지금부터 당장 일해 달라고 말했단다. 허허허. 아주 겁 없는 아가씨지.”
복자는, 고 영감의 기억에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짓고 있는 고 영감 앞에 앉은 제이의 입가에도 미소가 살짝 비쳤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녹색의 흔적만 남아 있는 찻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제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까 공항에서... 민우성을 본 것 같아요.”
빈 잔에 찻물을 따르던 고 영감의 손이 약하게 흔들렸다.
.
.
출판사 초입으로 들어왔을 때, 이미 땅거미가 내려 사방이 어둑해졌다. 노을빛마저 사라지니 꽤 쌀쌀했다. 으스스한 한기를 느끼며 마당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어디선가 우당탕, 쿵쿵쿵쿵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복자의 눈이 급하게 계단 쪽을 향했다.
“ 이 못된 것들. 너희들 어디서 이렇게 못 되 처먹었냐? 잉?”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건물 외벽 계단에서 건물 경비원 아저씨와 불량해 보이는 교복 입은 남학생들 다섯 명이 우루루 내려왔다.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아저씨보다는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한 편이었다.
“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 어! 김 대리구나. 아니~ 이 어린 것들이 밤마다 여기 계단으로 올라가서 옥상에서 담배 피고, 이런저런 나쁜 짓들을 한 모양이야. 어쩐지 요근래 뭔가 싸하게 기분이 이상하드라고. 직원들 퇴근하고 나서 한 번씩 둘러 볼 때마다 ... 암튼 요 녀석들!”
경비원 아저씨가 걔 중 제일 앞에 있는 학생의 머리를 쥐어박자, 반사적으로 “ 아 ~씨발 뭐야!” 학생의 입에서 센 소리가 튀어나왔다. 키는 제일 작았지만, 눈빛이 매우 날카로웠다.
“ 어허! 이놈 봐라. 너네들 다 따라와. 어여!!! 옥상 통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임마!! 그거 범죄야. 범죄. 무단침입!”
젊은 시절, 잘 나가던 유도선수였던 아저씨의 화려한 과거 이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북한군도 무서워 내려오지 않는다는 중2 앞에서 아저씨는 쫄지 않았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스탠드 불 하나만 켜진 사무실 안은 복자의 타이핑 소리만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 아~ 뭐야. 괜히 찝찝하네. 이거만 얼른 끝내야겠다. 헉! 뭐야!!”
등 뒤에서 스르륵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복자는 화들짝 놀랐다. 뒤돌아보니 뒤 파티션에 붙어있던 포스트잇 메모 두 장이 저절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평소 같으면 들리지도 않을 소린데, 이상하게 예민해진다. 사무실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중학생 소동 때문인지 아무도 없는 불 꺼진 공간이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 이러다가 바퀴벌레 숨 쉬는 소리까지 듣겠네. 바 퀴 벌 레~ 바 퀴 벌 레~ 양파링을 주세요~ 새우깡을 주세요~ 사실은~사실은~ 달달한 짱구가 제일 좋아~~”
혼자 있는데 무서우니까 별짓을 다 해본다. 되지도 않는 노래를 개사해서 혼자 흥얼거려본다. 복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과자 이름을 점점 더 큰 목소리로 불러대기 시작했다. 조금은 무서움증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 쿠웅쿵. 탁탁!! ” 외곽 계단과 연결된 테라스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게 정지.
바람 소리도 아니었고, 종이가 떨어지는 소리도 아니었다. 분명히 무거운 물체(일테면 사람?)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였다. 키보드 위를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복자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테라스 쪽 창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의자에서 반쯤 일어났다.
이번에는 “탁 쨍그랑---” 뭔가 둔탁한 게 유리창에 부딪쳐 깨지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테라스 반대 방향이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가 달달 떨리고, 손이 심하게 덜덜거려서 책상 위 핸드폰도 쥘 수도 없다. 누군가 안으로 들어온 것 같다. 아까 그 학생들일까? 다 잡힌 거 아니었나? 학생들이 아니면 누구지?
- 징이이이잉
책상 가장자리에 비스듬히 놓인 핸드폰이 울렸다. 아, 씨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화 왔다고 심장 마비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 상황에서도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는 스스로가 싫었다. 이건 유머도 뭣도 아니고 진짜 순도 100프로 잡생각이다.
일순간, 테라스 바깥쪽, 그리고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멈칫 하는 기분이 느껴졌다. 정말로 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잡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 다행히 소리는 멈추었는데,
“ 읍!!!!!!!!”
누군가 강하게 뒤에서 복자를 감싸며 입가를 손으로 막아버린다. 단단하고 매끈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