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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광년 Aug 21. 2024

18.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는 건....(2)

열여덟번째 이야기


 꺄아아악-칼칼!! 뒤 뒤에!!!!!”     


복자가 비명을 질렀다. 제이의 주먹이 화분 위를 지나 남자의 얼굴 중앙을 정확하게 가격하고, 살짝 옆을 비켜 칼날이 스치듯 앞으로 허무하게 뻗어나갔다.      


화분을 옆으로 던져버린 남자는 코 아래로 터져 나오는 피를 손으로 닦으며 ...씨발... 뭐야 저 새끼... 여자만 있다고 한 거 아냐? 개새~” 라며 고함쳤다. 뒤로 물러나는 척하다가 바로 앞에 엎드려 있는 복자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제이의 눈빛이 순간 일그러지더니, 남자의 표정을 빠르게 훑었다. “개새끼...어디 쳐다봐!!!” 먹으로 아래턱을 가격하는데, 그의 옆구리로 칼날이 빠르게 파고들었다.      


이번엔 제대로다.


두꺼운 자켓 안을 뚫고 왼쪽 허리를 스치며 들어온 칼날, 야릿한 통증이 아랫부분에서부터 번지더니 습기가 차올랐다. 제이의 눈이 중학생의 눈을 잡아먹을 듯 뜯어보았다. 아이의 눈이 잠시 떨렸다. 찌른다, 찌른다 했는데, 정말 사람 살을 뚫고 들어가는 칼맛을 본 건 처음이었다. 샐쭉한 눈에 무섬증이 비쳤다. 제이는 재빠르게 칼을 쥐고 있던 손목을 움켜쥐고 반대편 방향으로 꺾어 돌려버렸다.      



 드드득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공포에 범벅된 울부짖음이 따라왔다.     


 아아아앙~ 살려주세요!!”

 

중학생은 눈물을 터뜨렸다. 박혀 있던 칼날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 위로 핏빛이 빠르게 번져 나갔다. 그러나 제이의 고개는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정면만을 응시한다. 허리 어딘가 불이 붙은 듯 뜨거웠지만 그는 눈으로 그것을 확인하지 않으려 했다.      


 -      


홍양 책상 위에 놓인 꽃병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흘러내린 물 아래로 수국, 장미, 리시안, 카네이션이 남자의 흰색 나이키 운동화에 짓밟혔다.      


 어허어허~ 여기여기~~ 이제 영웅놀이 그만!!”     


제이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불안하게 쳐다보는 복자와 마주쳤다. 그녀의 하얀 목에 다인 유리 조각 아래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복자의 뒤에서 그녀를 껴안듯이 팔로 감은 채 유리 조각을 목덜미에 갖다 댔다.     


 알았어. 여자는 놔줘. ”     


제이는 두 손을 펼친 채 들어 올리며 침착하게 말했다.      


  ! 여기서 우리가 드라마를 찍는다. 그지? 심심해서 놀러 온 건데 일이 커지네. 근데....너 이 여자 좋아해?”     


남자의 얼굴에 웃음이 흥건했다. 마주한 눈동자에는 흔들림이 없다. 점점 숨소리가 탁해지는 것을 느끼던 복자가 밭은 숨을 뱉어냈다. 두 눈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것 때문에 제이의 형태가 흐릿해졌다.      


  좋아해? 좋아하냐고 묻잖아! 새끼야!!!”     


남자는 더 깊숙이 유리 조각을 복자의 목 안으로 밀어 넣는다. “끅윽..” 목 아래로 따갑고 뜨거운 느낌이 동시에 몰려왔는데 그것보다 단 몇 초안에 모든 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복자의 목을 졸랐다.

      

땀으로 범벅된 제이의 몸 전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계속 두 팔을 위로 든 채로 남자와 눈을 맞추었다. 찰나의 방심도 허용할 수 없는 본능적인 대처였다.      


 여자는 놔두고, 나를 패. 네가 풀릴 때까지. ”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제이의 목소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래? ”     


흥미롭다는 듯 남자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에, 제이는 재빠르게 바닥에 있는 칼날을 발로 차올려 그대로 남자 쪽으로 향해 던졌다. 그것은 오른쪽 눈 바로 아랫부분을 스치고 벽 쪽으로 부딪혀 떨어졌다. “ 아 씨발 내 눈! 내 눈!!” 라고 남자는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때, 건물 밖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 요란하게 들려오고, 누군가 빠르게 김복자!!”라고 부르며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복자는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반쯤 감긴 눈으로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제이를 살피는데. 그가.... 이상하다.      



  ...... 그래?”

   

제이는 복자의 목 아래로 흘러내리는 피를 멍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새하얗게 질린 복자 얼굴과 시뻘겋게 흐르는 핏물.

여자 얼굴 아래 흐르는 피....여자.. ....     


 피피피.......”     


그는 주문에 걸린 듯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얼굴과 목에서 흐르는 땀이 멈추지 않았다.      

찢겨져 나간 필름을 영사기에 넣고 돌린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 모든 화면이 어그러진다.

윙윙 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든 게 암흑.


제이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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