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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광년 Aug 22. 2024

19. 오늘.

열아홉번째 이야기 

 

내게도 이런 경험이

이런 장면이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복자에게 있어 오늘 밤의 소동은 마냥 꿈만 같다.     


일상은 지루할 정도로 비슷했다순서만 조금씩 바뀌고몇몇 사람만 바뀌는 정도였다한 마디로 그게 그거쳇바퀴무한반복일도 그랬고가뭄에 콩 나듯이 했던 연애도 그랬다    

 

지하철을 타고 혹은 버스를 타고 출판사 안으로 들어가 이런저런 원고들을 읽고글자를 고친다때때로 작가라는 사람들을 만난다회사 사람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누고실없는 농담을 나눈다그러고 나서 밥을 먹는다커피를 마신다타이핑을 한다나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늘 생각뿐이다     


작가     


그런 건 아무나 하나시간이 지나면어쩌면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다음을 기약한다그러고선 다시 지하철을 타거나 혹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는 남의 sns를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나 빼고 바쁘게 잘만 살아가는 친구나 지인들을 보면그날은 무덤 파고 들어가야 해서 되도록 조심한다대체로 넷플릭스에서 볼 것을 훑거나 그마저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은 먹방을 틀어놓고 무표정하게 바라본다.   

  

참 잘 먹네좋겠다맛있는 거 먹고 돈도 벌고     


타인의 삶을 훔쳐보다가 아무 영양가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그렇게 비슷비슷한 매일의 일상을 넘겼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되었을 오늘

죽지 않았다면죽고 싶을 만큼의 나쁜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던 오늘.

그러나 다행히 죽지 않았고끔찍한 일도 피해간 오늘.

그래서 복자는 눈을 감고 있는 지금도... 궁금해진다


제이는 어떻게 됐을까?     


감은 눈 위에 쏟아지는 강렬한 형광등 불빛들과 소독 냄새주사바늘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따끔거림낯선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그리고 익숙한 이들의 목소리엄마 그리고 아버지.

딱딱한 침대에서 어딘가로 옮겨져 푹신하고 편안한 시트가 느껴진다

쾌적하고 조용한 장소.     

눈을 떴다


연한 베이지색 벽에 걸린 동그란 시계

11시 55

오늘보다 더 긴 하루는 자신이 인생에 더는 없을 거라고 복자는 생각했다.    

   

 “ 복자야!! 괜찮냐??”

 “ 알구 우리 딸.... 이제 정신이 들어?”     


.... 

우리 가족.... 


복자는 애써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심장이 멎을 만큼의 일이 벌어졌지만애써 내색하고 싶진 않았다해드린 것도 없는 부모님한테 그런 걱정까지 끼치고 싶진 않았다나보다 더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자꾸 목 주변이 강하게 쪼이는 느낌 때문에 어색하게 웃는 표정이 꽤 어색했다.     


 “ ..엄마..걱정했지?”     

 “ 말하지 마목 더 아프다심각한 거 아니래다행히빨리 발견이 되고 응급처치도 잘 돼서..”     

 “ 이런 씨불할 것들....”     


평소에 욕 비슷한 것도 안 하시는 착한 우리 아부지....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눈가가 뜨끈해졌다.

      

 “ 괜찮아...”     

 “ 그래그래.. 이만하면 다행이야아이고.”     


그렇게 억척스러운 엄마 눈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꺽꺽 울음을 삼키셨다푹 꺼진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여과 없이 밝은 형광등 불빛 아래서 보니 우리 엄마 나이 든 게 다 보였다침 삼키는 게 힘들었지만어쩔 수 없이 굵은 침을 삼켰다병실 뒤쪽 벽에 서 있는 남자우성을 그제서야 발견했다     


 “ 알고내 정신 봐라.”     


복자 곁에 서 있던 아버지가 손짓하며 뒤에 서 있던 우성을 불렀다.     


“ 복자야저분이 너 병원까지.... 우리한테 연락도 바로 해주시고... 감사 인사 백번을 드려야 해,,,, 너 깰 때까지... 기다린다고 ... 거기다 이 넓은 특실을...”     


고마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버지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복자는 우성과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늘 반듯한 느낌을 주던 우성의 얼굴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목 주변의 단추가 몇 개 풀어져 있고 하늘색 셔츠가 구김이 가 있었다헝클어진 머리칼 아래 얼굴도 까칠해 보였다그 덕에 안 그래도 깊은 눈이 더 깊어 보였다 

    

 “ ... 괜찮아요복자씨?...”     

     

이전에도 우성의 목소리는 가볍진 않았지만오늘따라 더 무겁게 들려왔다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여러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뒤에 서 있던 엄마가 요상한 표정과 동작으로 아버지를 불러 끌다시피 병실 밖으로 나가셨다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해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엄마는 아마.... 민우성이 마음에 꽤 들었던 모양이다     


 “ .. 정신 완전히 잃기 전에 우성씨 본 것 같아요.”   

  

복자는 병원으로 실려 오기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엉망이 된 사무실동네 불량배의 팔에 갇혀서 턱 끝을 누르던 칼날그런 자신을 집요하게 바라보던 갈색 눈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정리된 장면 다음에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쓰러진 제이가 있었다제이....   

  

 “ 저 말고 같이 실려 온 남자는요그 사람도 분명 다쳤는데..”     


 “ ... 그 사람도 여기 입원해 있어요칼에 찔렸지만다행히 상처가 깊진 않다고 하네요물론 아무렇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에요나는.”     


우성의 설명에 복자의 얼굴에 비친 걱정스러움이 옅어졌다우성이 복잡한 얼굴로 잠시 바닥을 보다가 팔짱을 낀 두 손을 풀며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흐트러진 머리칼만큼이나 움직임도말투도 평소의 우성과는 차이가 있었다          


 “ 그런데어떻게 아시고거기 오셨어요?”     

 “ ... 전화로 들었어요복자씨 전화가 켜져서그 소릴 듣고..... 미안해요.”     

 “ 뭐가요?”      


자신한테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복자가 우성을 올려다보았다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부모님 설명대로라면 그가 여기 병원 입원까지 도움을 준 거 같은데사과를 할 게 아니라 감사의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었다그런 사람이 아까부터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으로 뜬금없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복자의 침대와 우성과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반듯한 입매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열렸다     


 “ 미안해요내가더 빨리 갔어야 했는데그래서 너무 미안해요.”     


잠시 복자의 눈이 빠르게 깜박였다우성의 말이 병실 공기 중에 흩어져 어지럽게 떠돌아다녔다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거 같았지만복자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모르겠다     

그냥모르겠다     


복자는 같은 말을 계속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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