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남자는 ... 많을수록 좋다. 정말?

열두번째 이야기

by 오 광년


“ 우동이나 먹으러 가자~ 복자야~”


두 사람은 포장마차를 찾아 어두운 골목길을 나와 큰 도로가로 나왔다. 터벅터벅 말없이 걷다가 제이의 시선이 복자의 옆얼굴에 닿는다. 강렬한 첫 만남 때문인지, 아니면 한 지붕 아래여서인지 반말은 금세 익숙해졌다.


“ 영미라는 사람, 그렇게 잘났었어?”

“ 참~ 야무지게도 들었네. 그 이름은 또 어떻게 들었대?”

“ 워낙 -내가 좀 눈치가 빨라서. 공기만 딱 맡아도 분위기 파악되지.”

“ 어련하시겠어~ 작가님~ 암튼 뭐 영미... 뭐든 잘난 애지. 공부면 공부, 얼굴이면 얼굴~ 뭐 빠지는 게 없지. 성격도 쿨하고 좋고. 시원시원. 뭐든 꽁하고 띵한 나랑은 달랐지. 완벽했어. 걔는.”


제이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장난기가 걷힌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 분명 대머릴 거야.”


복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깜박거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제이는 복자의 코앞까지 다가와 또박또박하게 한 단어씩 힘주어 말한다.


“ 남.편.머.리.”

“ 뭐어?? 참 참 뭐래~진짜~”


복자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잠시 서 있다가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 갑자기 우울한 기분이 싹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선 채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크게 웃어버린다. 이렇게 졸렬한 인간이다. 내가. 어쩔 수 없지만 상상만으로 명랑해지는 복자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있는 복자 옆으로 제이가 지나가면서 한 마디 툭 던진다.


“ 우동은 그쪽이 사는걸로.”

“ 내가 왜?”


돌아보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대답으로 돌아온다.


“ 울던 사람.. 웃겨 줬으니깐.”






출판사 사무실 안으로 은은하게 커피 향이 퍼져 있다. 탕비실로 들어온 홍 양의 눈길이 자꾸 복자를 살핀다. 출근했을 때부터 줄곧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마렵다.


“ 야야- 왜왜 빨리 말해. 자랑할 거 있음 빨리해. 딱 5분 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을 머그컵 안에 부으면서 복자가 말한다.


“ 음....대리님... 남친 없는 거 맞죠? 지금 사귀는 사람 없죠? 그죠?”

“ 얘가 아침부터 갑자기 뭔 소리야? 왜? 너가 소개팅시켜 주려고?”


복자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홍양은 의뭉스러운 미소를 살살 짓다가 이내 콧소리를 흥얼거렸다. 이야, 얘 봐라. 가진 자의 여유야 뭐야. 아침 댓바람부터 솔로 가슴에 염장을 지르네.


“ 참- 뭐야~ 너~ 나 놀리냐? 이게요~ 꽃바구니 좀 받았다고~ 너 나 무시하냐??”


장난스럽게 복자가 툭툭 손가락으로 홍양의 옆구리를 장난스럽게 찌른다.


“ 아야얏...아니, 아니예요.. 암튼 지금은 말 못해요.”


하고 깔깔거리면서 홍 양이 탕비실 밖으로 도망나갔다. 대단히 기분이 좋구나 우리 홍양이, 쯧 좋을 때다. 그래. 고개를 살랑살랑 저으며 갓 탄 커피잔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 때 탕비실 입구 쪽에 비스듬히 서 있던 장기자가 복자 손에 들고 있는 커피를 자연스럽게 가로채서 마신다.


“ 얏! 뭐야~ 장 기자님! 뜨거 조심해!!”

“ 역쒸~꺼피는 복자 꺼피이~~”


아이 쉣.. 눈으로 신랄하게 씨- 욕을 해주려고 하는 데 주머니 안에 들어있던 폰이 울었다. 장 기자가 사라진 궤적을 노려보면서 폰을 꺼내 받았다.


“우이~ 여보세요..어. 새벽?”


반대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못 들었나 싶어 좀 더 크게 말했다.


“ 부산 콘서트는 잘 돼 가?”


- 어, 뭐.. 대충...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다.


“ 문제. 뭐. 혹시, 빽 작가님 또 잠수탔니?”


- 아니, 그건 아니고 지금 ... 좀... 그런게..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이상한 소리 들리는 데.”


- 아 저기 죄송합니다. 지금 환자분 병원으로 이송 중인데, 혹시 보호자 되십니까?


“ 네?? 병원이요? 어머,,,무슨 일이예요?


-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현재, 팔과 다리에 골절 예상되고, 자세한 상황은 병원 가서 검사 후에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행기의 고도가 낮아지고 창문 밖으로 바다와 녹색, 점점이 박힌 건물과 아파트들이 뒤섞여 있는 아래가 흐리게 보였다. 깔끔한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우성 얼굴 옆으로 약속한 듯이 밝은 빛이 쏟아진다. 어디서나 주인공처럼 보이는 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 아~ 저희 대리님 착각하셨나보다~ 제가 그날 아파서 저 대신 이성, 미팅 가셨거든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눈도 코도 동그랗던 여자의 이름은 홍지애가 아니었다. 손목에 낀 고무줄을 입에 물었다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쓱쓱 빗어 묶으면서도 제 이름은 숨겼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니, 대려 더 궁금해졌다고 하면 이상한 건가.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을 해서 처음부터 사람을 당황하게 하고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근데 본인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긴 했다. 솜털이 보송한 귓바퀴 옆으로 흘러내리던 잔머리처럼. 우성은 제 목 뒤 언저리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게 수줍어 하면서도 할 말은 끝까지 다 하던 그 장면을 곱씹다가 혼자 웃음이 터졌다.


우성 바로 옆에 있던 이 실장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본다. 괜히, 민망해진 우성이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급히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바다를 에워싸고 작은 블록들이 모여 있는 땅이 이젠 제법 커졌다. 부산에 가까워지고 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1화11. 그런데 내 상처가 제일 아픈 건 어쩔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