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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광년 Aug 30. 2024

25. 화장실에서 마주친 그녀

스물 다섯번째 이야기 



      

 “ 완전 대박이다.. 어찌 이런 일이 다 있노.”     

 “ 그러게하필이면 불똥이 거기 튀어정말코미디다..”    

 

1층 본관 안쪽의 여자 화장실 문이 열리고 혜교 뒤로 복자가 따라 들어왔다.     


 “ 화장실 쥑이네~”     


은은한 조명 아래 하얀 우유빛깔을 띤 세면대가 반짝이고한가운데 꽃이 핀 난초 화분 여러 개가 일렬로 장식되어 있다그 내부에선 적당한 농도의 장미향이 풍겼고잔잔히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 암튼 그렇게 또 한 명이 시집을 갔구나~”     


복자는 세면대 물을 틀어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고 말했다혜교는 다섯 칸 중 제일 가운데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 야야!! 그래도 나는 한편으로 속이 시원하드라.”     


세면대 앞에 서서 안쪽에 준비된 하얀색 타월로 손을 닦고 있던 복자가 물었다.     


 “ 뭐가 시원해?”     


칸 안에 들어간 혜교의 목소리가 웅웅하고 울리는 소리로 들린다.     


 “ 영미 그 가스나 말이다맨날 잘난 척만 하드만 오늘 딱 당황하는 모습 보니깐 알고억수로 꼬시드라.”          


손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복자도 피식 웃었다가방 안에 핸드폰이 울렸다. “응 엄마.” 전화를 받자마자 소란한 소리와 아득히 기계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 엄마엄마거기 어디야?”      

?? 복자야엄마가 좀 급하다너 지금 김포 공항으로 올 수 있냐?     

 “ 공항나 지금 영미 결혼식오늘이잖아.” 

 아차차그렇지그럼 1시간 만에 오는 건 무리겠지너네 아버지가 지난달에 홈플러스에서 넣은 경품권이 세상에,,, 그게 딱 2등을 했지 뭐야그래서 우리 지금 제주도 가야 돼젠장그 썩을 마트에서 한 팀 취소하는 바람에 오늘 갑자기 알게 됐어~ 3박 4호텔이랑 비행기 티켓이랑 거기 여행비용 싹다 대주고...     

 “ 와 정말?? 대박이네.. 우리 아부지대단하시네.”     

그러게 말이다굼벵이도 구르네어쨌든 넌 못 가서 어쩌냐내가 직원분한테 우리 딸도 꼭 가야 된다고 졸라도 이 썩을 것들이 규정이 딱 2명이라고 우긴다넌 네가 돈 내고 우리랑 가자     

 “ 갑자기 어떻게 그래나 출근도 해야 하는데... 3박 4일이라며... 두 분 재밌게 노시다 오셔나 잘 있을게그래걱정 말고축하해두 분.”      


수화기 밖으로 엄마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흥분과 설렘이 비집고 튀어나왔다경품권 당첨이 우리 집에서도 나오다니! 58년 평생로또 5000원도 된 적 없으신 양반이 ....놀라운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요즘이다그러다순간 복자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뭐야그럼 나랑 그 쓰레기만 집에 있는 거야?          


그 때제일 끝 쪽에 있던 문이 달칵하고 열렸다     

이런화장실에 다른 사람도 있었나 보다가방 안에서 립글로스를 꺼내려다가 복자는 멈칫하고 거울을 바라보았다처음엔 인형이 걸어온다고 생각했다조마막한 얼굴에 큼직한 눈과 오뚝한 코반짝이는 피부그리고 윤이 나는 긴 머리칼과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블랙미니원피스같은 여자인데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같은 여자가 봐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예뻤다근데 이 얼굴을 어디서 봤더라왠지 익숙하다말도 안 되지만분명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복자의 눈이 거울 속 여자를 자꾸 힐끔거린다그러자 거울 속 여자도 복자에게 눈을 돌렸고두 시선이 짧게 마주쳤다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복자는 온몸의 전기가 짜릿하게 퍼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 여자.... ....조재림?

 

동그랗게 커진 두 눈에 지진이 일었다. 그 조 재림이라니세상에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이자얼마 전까지도 그녀가 출연하는 수목드라마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며 보았던가브라운관이 아니라 30cm 떨어진 거리에서그것도 나란히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며 서 있다니 꿈만 같은 상황이었다     


 “ 안녕하세요?”     


조 재림이 복자에게 말을 걸어온다안녕..하세요복자는 자신이 너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재림은 꽤 오랫동안 복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그 눈빛이 꽤 흥...     


 “ ....네 안녕하세요조재림씨실물이 훨씬 더 예쁘세요.”     


로봇이 된 복자가 간신히 말을 끝마쳤다이런 걸 가문의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유명 연예인에게 먼저 인사를 받게 되다니.... 이런 상황에서 사인 요구하는 건 너무 예의가 없는 거겠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그럼.” 짧고 세련된 인사말을 남기고 재림은 갈색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밖으로 나갔다고혹적인 몸매였다복자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납작하고 밋밋한 몸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에이씨...     


 “ 야야야야!! 뭐야뭐야!! 맞지맞지 조 재림와 대박~~ 너 싸인 받았어?”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혜교가 흥분하며 복자를 다그친다     


 “ .. 맞다싸인~”     


두 사람 얼굴에 아쉬움이 잔뜩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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