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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 광년 Aug 29. 2024

24. 친구의 결혼식... 괜히 울적해지는 이유

스물네번째 이야기 

      

 단정한 네이비색 코트를 입은 복자가 안국역 1번 출구 앞에 서 있다저녁 6시가 넘어가면서 사방이 금세 어두워지고 바람도 훨씬 차갑고 강하다단추가 열린 코트 안으로 회색 V넥 니트 원피스가 보이고허전한 목 주변은 하늘과 갈색이 적절히 섞인 실크 스카프가 대충 둘러져 있다     


 “ ... 춥다... 추워...”

 

살색 스타킹만 신은 다리 안으로 12월의 찬바람이 훑고 지나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신호등이 초록불에서 빨간불로 바뀌더니눈에 익은 흰색 i30가 나타났다혜교의 차다     


 “ 알고... 오래 기다렸제...”     

 “ 아니아니... 워커힐... 8시까지 도!! 너 옷이옷이..아하하하     


차에 탄 복자가 벨트를 매다가 웃음을 터뜨렸다하얀색 털이 북슬하고아기 주먹만한 크기의 검정 점무늬가 곳곳에 박혀 있는 굉장히 자연친화적인 코트였다설마북극 어딘가에 피부병이 걸린 북극곰이 있다면....       

  웃지마라이거 혜교처럼’ 메인 제품이었다내가 아끼는 기다이런 날 아니면 언제 이 아이가 호텔 조명 맞아 보겠노내 큰맘 먹고 입고 왔다아이가.”     


꽉 막힌 율곡로를 빠져나가며 혜교는 진지하게 말했다     


 “ 을그... 그 때 대학로에서 좌판 깔아놓고 못 팔고 남은 옷팔던 생각난다그 때 까만 점무늬 노란 털 코트도 있지 않았어그거 판다고 내가 세 시간을 그걸 입고 있었다그 오뉴월에... 파란색이었나보라색이었나끝까지 안 팔렸던 거 있었는데... ”     

 “ 하늘색집에 귤색이랑 두 개 더 남아 있다.” 

 

 “ 그 때 너쇼핑몰 접은 거정말 신의 한수였다.”      


복자의 말 혜교는 코끝을 찡긋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또 결단력 하나는 끝내준다아이가.”      

 “ 네네어련하시겠어요말이나 못하믄암튼 금요일이라 차 좀 막힐 거 같은데... 제 시간에 도착하려나.”     

 “ 뭐 좀 늦으믄 어떻노이 금요일 밤에 남 결혼식 가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해야지...하긴 영미 그 사시나는 늦게 오는지제시간에 오는지 다 기억할끼다워낙 깐깐해서..”     

 “ 그러게... 다들 결혼하고 애 낳고 대단하다그 엄청난 걸 다들 해내네.”    

 

혜교 손톱처럼’ 이란 네일아트 광고 문구가 붙여진 하얀색 i30가 천호대로로 들어왔다왕복 10차선이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고 숨 막히게 막혀 있었다문득 복자는 이 장면을 하늘 위에서 바라본다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헬기와 제주도... 우성이 떠올랐다그리고 카바나 안에서 키스까지.... 얼굴 전체가 뜨거워졌다지난 며칠 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사고입맞춤그리고 또 다른 입맞춤.... 이런 걸 인생의 황금기라고 해야 하는지미친년 발작하는 삼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도 모르게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점 없는 눈으로 창가를 뚫어져라 보는 복자를 혜교가 스윽 바라본다     


 “ 요즘 좀 달라 보인다.”

 “.....”     

 “ 김 복 자!!”     

 “ 어어불렀어다 왔어?”     

 “ 이 가스나가... 와이카노... 니 무슨 일있나사고 난 거 땜에 그르나아직?”     


복자와 혜교는 8시에 간신히 호텔 주차장으로 들어갔고후다닥 비스타 홀로 날아 들어갔다품위와 교양이 넘치는 실내장식에 맞춰 적당한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스물일곱 살이 지나면서부터 복자는 주기적으로 친구의친척의선배의직장 동료의 결혼식을 찾게 되었다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은결혼식 장소와 신부와 신랑의 표정그리고 미묘하게 느껴지는 식의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그 결혼의 등급을 대충 매길 수 있었다.     


 “ 알고 마장난 아니다진짜엄청 번쩍번쩍 하고 럭셔리하다여기영미 가스나 시집 잘 갔네좋겠다.”     


 혜교는 원형 테이블에 세팅된 은색 식기들을 홀린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 뭐든 잘 하잖아...”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주위 조명이 어두워지고전광판 아래에 대기한 단원들의 현악 4중주가 연주되었다그리고 이어서 사람들의 환호 소리휘파람 소리힘 있는 박수소리가 퍼지더니 검정색 턱시도를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신랑이 입장했다그는 서글서글한 눈빛과 두툼한 콧방울 때문인지 선하고 후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긴장된 걸음이었지만힘차고 단단해 보였다     

          

분명 대...일 거야     


난데없이 제이의 말이 생각났다밑도 끝도 없이 걔가 왜 생각났을까미안한데니 예상 틀렸거든복자는 진한 검정색에 풍성한 머리털을 고대기로 말아 웨이브를 준 신랑의 얼굴을 쳐다봤다     

혼자 킬킬거리는 복자를 혜교가 빤히 쳐다본다. ‘?’라고 묻는 눈빛이다  

   

 “ 사람 괜찮아 보이네인상 좋다.”     


복자가 박수를 치며 조그맣게 혜교에게 귓속말을 하자     


 “ 나도 의사에, 5층짜리 건물 두 채 아들이면 인상 좋아보일 걸.”     

 “ 그건 또 어떻게 알았데?”     

 “ 방금 화장실 갔다가영미네 친척 이모들이 하는 말 들었다배 아파 죽으려고 하드라.”     


영미의 말에 복자가 피식 웃으면서 설마~’ 하는 눈빛을 보냈다신랑 입장이 끝이 나고신부 입장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가 흘러나왔다하객들 모두 입구 쪽으로 시선이 몰리고복자의 귓가로 혜교가 말한다.    

 

 “ 그냥 내 느낌으로 그랬다고.”       


어떤 결혼식이든이 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하얀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식장 안으로 들어와 버진로드를 밟는 순간마치 동화책 속에서 가장 행복한 장면을 꺼내 보는 기분이 든다. “ 오호예쁘다.” “ 너무 예뻐요.” 사람들의 환성 소리 터져 나오고오늘의 주인공이 그 모습을 천천히 드러냈다언제나 그랬지만,,,, 영미는 그 날도 예뻤다부드러운 느낌의 크림 화이트 색으로 몸을 감싼 드레스는 잘록한 허리와 몸매 라인을 돋보이게 했다시원시원한 이목구비가 돋보이게 자연스럽게 올린 머리스타일과 세련된 화관반짝이는 피부모자람이 없었다모든 게 완벽했다아니완벽했었다   

  

언제나 그렇듯 아무도 듣지 않는 주례사가 끝이 나고두세 개의 결혼식 순서가 이어졌다.     


그다음은 축가 차례였다남자 3여자 2명이 무대 위로 올라왔고잔잔하고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성시경의 두 사람이었다그들은 신랑신부가 있는 반대편 무대 위에 나란히 섰다신랑의 직장 동료라고 자신들을 소개한 그들은 천천히 화음을 맞추어 조심스럽게 노래를 시작했다     


혜교는 가장 긴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고복자는 주변 몇몇의 사람들처럼 고개를 살짝 옆으로 흔들거리면서 축가를 흥얼거렸다오늘은 주인공인 두 사람도 그들의 축가가 마음에 드는지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지친 하루가 가고 달빛이,,,,’ 잔잔히 시작된 노래는 캄캄한 밤길을 잃고 헤매도...’ 점점 절정으로 향하고 있었다그리고 무대 주변 바깥으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우아한 불꽃이 뿜어져 올라왔다. “ ~” “ 우와~” 사람들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격렬히 스테이크를 씹으면서 혜교도 쥑이네~” 라고 웅얼거렸다그러더니 어멋!!” “!” “어떡해??” 감탄사는 순식간에 걱정과 놀람과 반전으로 변했다.     


두툼하고 짙은 어두운색 벨벳 장막을 배경으로 어디선가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그 연기는 점점 커지고 뚜렷해졌으며 그 시작점이 어디인지 비명소리와 함께 드러났다    

 

 까아악     


찢어질 듯 높은 고음을 지른 사람은 그 날의 주인공신부 영미였다영미는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연한 녹색 빛의 동그란 부케를 신랑의 머리 위로 정신없이 쳐댔다어찌된 영문인지 무대 외곽 쪽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 한 줌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던 것이다반대편 무대에서 축가를 부르던 다섯 명의 독수리 오남매도 더 이상 노래를 이어 부를 수 없었다그 중 가장 키가 큰 대장(?)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무대 위에서 긴 다리로 뛰어내려 가까운 객석의 테이블 위에 있는 물이 가득 찬 저그병을 신랑의 얼굴 위로 쏟아 부었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독수리 오남매의 리더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결단력 장난 아닌 사람 한 명 더 추가요.

하지만 그는 결단력은 뛰어났을지 모르나 눈치는 꽤 없었던 모양이다.     

신부가 자신의 부케로 신랑의 머리를 쳐댈 때얼마나 요령 있게 중요한 부위를 피해 가고 있었다는 걸.... 그도 몰랐고나머지 독수리 4남매를 비롯한이백 명의 하객들도 몰랐다     

느닷없이 쏟아진 폭우가 신랑의 얼굴을 말끔히 씻어냈고힘없이 툭 그의 머리털도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났다바닥으로 툭그 바로 옆으로 부케도 망연자실하게 떨어졌다.

      

모두들 얼음

움직이지 못했고

말하지 못했고

웃을 수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었다     


아직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성시경은 알까자신의 노래가 이렇게 길다는 걸...

잔잔하다 못해 구슬프기까지 한 그 노래의 마지막 멜로디는 독수리 오남매 중 가장 키가 작은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마무리 했다     


 “ 모진 바람 또 다시 불어와도 우리 두 사람 저 거친 세월을 지나가리.”     


복자는 그 가사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빙고니가 맞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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