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드러난 진실

by 오 광년


1926년 1월 2일

열아홉 살이 된 주리는 거울 속에 하얗게 떠오른 자신의 얼굴을 음미하듯 쳐다본다. 손으로 그림을 따라 그리듯 가지런히 정돈된 눈썹을 쓸어내린다. 탐스럽게 부푼 볼록한 입술을 살짝 깨무니 꽃물이 번진다. 저 혼자 또 미소가 피어나 멈출 줄 모른다.


“주리야. 그렇게 좋으니?”


딸의 흑단같이 검은 머리칼을 빗질하며 겐토의 아내가 물었다.

“그럼요, 어머니. 이제 내일이면 정말로 결혼하게 되는데요.”

주리는 거울 속에 비친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 그래. 니가 기쁘고 행복하다면 나도 좋구나.”


그러나 어머니의 표정은 딸처럼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그녀의 얼굴엔 애달픔이 묻어 있었다. 그제야 주리는 뒤돌아 그녀를 천천히 살핀다.


“ 어머니. 제가 시집가서 섭섭하셔서 그런 거예요? 걱정 마세요. 어머니도 재수를 아들처럼 생각하잖아요? ”

“ 그래. 그렇지 그렇고말고. 다만 나와 아버지가 걱정되는 건…. ”

어머니는 손에 쥐고 있던 빗을 내려놓은 채, 어렵게 말을 이어나갔다.

“ 네 눈 뜨게 하려고 아버지가 고래를 잡으러 나갔던 그 일.”


주리는 두 손으로 강하게 어머니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다급히 말했다.


“ 어머니!! 제발.”

“ 아 아니 주리야.”

“ 어머니, 저도 알아요. 왜 아버지가 고래 눈알이 필요했는지, 그 눈알을 구하기 위해서 결국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고, 거기에 재수의 할아버지도 있었다는 거 알아요. 언제나 재수가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파요... 하지만, 전 너무 걔를 사랑해요. 그 사람을 내 남편으로 모시면서 잘해준다면 모든 걸 용서받지 않을까요. 그러니깐 더 이상 그 이야기 꺼내지 말아 주세요. 재수는 이 일을 몰라야 해요. 제발... 흑흑 ”


어머니는 눈물로 범벅된 딸의 얼굴을 손으로 닦아내며 타일렀다.


“ 괜찮아. 주리야 괜찮아. 정말 아무 일도 없을 거란다.”

“ 맞아요. 분명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주리의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완벽해 보이는 행복의 뒤에는 언제 들킬지 몰라 가슴 졸이는 진실이 있었다. 손발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제 품 안으로 세게 안았다. 그것 말고는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과감없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주리의 방 밖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두 모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년, 재수가 있었다. 재수는 창백해진 얼굴로 집 밖으로 나와 무작정 앞으로 내달렸다. 달리고, 달리다보니 마을 전체를 둘러싼 다이지 바다까지 와 있었다.

“으으으으악악!!!”


그는 안개 짙은 밤바다를 향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지금 끓어 넘치는 분노를 풀 곳이 필요했다.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솟구쳐 나오는 것을 느꼈다. 재수는 곧바로 모래사장 위에서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토악질을 해댔다.


“ 으으억, 으으억,웁,,,”


끔찍한 고통이었다. 뱃 속 내장이 뒤엉키고, 신경 마디마디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 으아악악 -”


재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머리 위로 돌덩어리가 주저앉은 것처럼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지우고 싶지만, 절대 지워지지 않는 그 날의 기억.

바다 위로 올라오던 시퍼런 손이 재수의 앞에 아른거린다.

할아버지의 손이다.


마지막까지 손주를 찾아 고래의 눈알을 건네던 차갑고 축축했던 손.


‘ 나는 어떡해야 하지... 내일은 주리와 혼인날인데... 앞으로 주리를 어찌 본단 말인가? 내 할아버지를 죽게 만든 그 아이를. 그리고 그 부모를.’


분노와 울분, 배신과 연민이 뒤섞여 그의 마음 안에서 회오리쳤다.

세상에 혼자 버려졌던 자신을 거두고 사랑을 주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혼자가 되도록 만든 사람들이기도 했다.

용서할 수 없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럼 이제부터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수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고 꽉 막힌 어둠 속에 홀로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우우우웅웅욱욱---

굵고 낮게 울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바다 끝에서 들려왔다.


“ 뭐지 저건?”


머리를 감싸던 손을 놓고, 재수는 놀란 눈으로 눈앞의 바다를 보았다. 희뿌연 물안개가 주위에 퍼져 있고, 검은 바다 한가운데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 사람인가?”


윤곽만 드러나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사람이 맞았다. 말 등에 올라탄 듯 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그에게 재수는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재수를 바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재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발 다가갈수록 윤곽만 보이던 사람의 형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달빛의 기운이 점점 강해졌다. 발끝에 닿던 땅이 확 깊어지면서 재수의 가슴 부위까지 물에 잠겼다.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어왔고, 남아있는 안개를 모두 쓸어냈다.

그러자 희뿌옇게 보이던 사람의 윤곽이 또렷이 드러났다.

단단한 골격과 다부진 표정, 부라린 눈과 날카로운 콧날.

할아버지였다.

“ 할아버지, 할아버지!!!”


재수는 두 팔을 허우적대며 아이처럼 할아버지를 불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지 재수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재수는 형태가 보이는 곳으로 헤엄쳐 가기로 했다.

잔잔히 밀려오던 파도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지만, 재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팔로 물살을 할퀴듯이 밀어내며 빠른 속도로 할아버지가 보이는 곳으로 다가갔다. 꽤 먼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그는 죽을힘을 다해 헤엄쳤다.

“재수야! 재수 재수야!!!”


분명 할아버지의 소리였다. 너무나 보고 싶고, 그리웠던 할아버지.

재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할아버지는 무언가의 등에 올라타 앉아 있었는데, 반질하고 미끈한 것이 바위덩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불현듯, 재수의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고...고래?”


말 위에 올라타듯 거대한 고래 등에 가볍게 올라타 숨구멍으로 작살을 꽂던 할아버지의 모습들이 빠르게 재수의 기억 속으로 지나갔다.


갑자기 그 주변으로 거대한 물보라가 일더니 양 사방으로 심상찮은 떨림이 느껴졌다.

쏴아아아악-

파도가 강하게 재수의 머리 위로 쏟아지고, 그의 머리가 물 안으로 쑥 들어갔다. 재수는 팔과 다리를 재빠르게 움직이며 간신히 수면 위로 머리를 올렸다. 그리고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장엄한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린 채 감탄했다.


섬 하나를 그대로 들어 바다 위로 옮겨놓은 크기의 고래였다.

바다의 절반을 뚝 잘라 온몸을 휘감은 것처럼 고래는 압도적이었다.

그 위에서 할아버지가 따뜻한 눈으로 재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그의 마음이 평온해졌다.


“ 재수야.”


이것은 꿈이구나. 꿈일 뿐이야….


재수는 스스로도 이 모든 장면이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절망에 빠진 자신에게 어쩌면 하늘이 보낸 위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꿈에서라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던 할아버지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재수는 앞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바닷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축축한 물줄기가 연신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아무리 재수가 헤엄을 쳐서 가까이 다가가도 할아버지에게 제 손이 닿지는 못했다.

할아버지와의 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 그가 한 발치 다가가면, 고래는 한 발치 더 멀어졌다.

다시 재수는 물속으로 들어가 헤엄을 쳤다.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었다.

그는 포기를 몰랐다.


물 위로 “헉”하며 그의 머리가 올라왔을 때, 더 이상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절망으로 무너져 내렸다. 십 년 전, 바다 위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마주치던 그 날의 냄새, 들려온 소리, 몸의 떨림과 찢어지는 가슴의 고통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 안돼! 안돼.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 모든 것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재수는 입을 크게 벌리고 발버둥을 쳤다. 너무 오래 물에 있었던 탓에, 그의 입술은 시퍼렇게 변해 있었고, 발끝으로 느껴지던 감각들이 점점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때, 할아버지가 사라진 자리에서 불꽃처럼 화려한 물줄기가 쒹 새어나오더니 고래는 사방으로 물거품을 일으키며 서서히 그 자태를 드러냈다.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고래는 춤을 추듯이 머리와 꼬리를 번갈아 위로 들어 올리더니 급격히 방향을 틀어 재수가 있는 쪽으로 돌진했다. 고래의 한쪽 눈은 심하게 찢어져 안이 텅 비어 있었다.


“ 고...고래의 눈이 없다.”

이를 발견한 재수는 무언가 대단한 운명 앞에 자신이 맞닥뜨린 것을 느꼈다. 바다가 반으로 갈라지듯이 거대한 파도가 두 갈래로 나누어져 벽을 만들었다. 공포에 휩싸인 재수는 팔과 다리에 힘을 주어 반대 방향으로 헤엄치려 했지만, 어찌된 일이지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 허허허헉.”


재수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곧바로 고래의 머리통이 재수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5화15. 집으로 돌아오다.